• 조선일보 30일자 오피니언면 강천석 칼럼란에 쓴 이 신문 강천석주필의 '대통령의 가난'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대통령의 재산은 시간과 국민의 지지다. 이 두 가지를 보면 대통령의 재산 상태를 단박에 알 수 있다. 물론 대통령에겐 헌법과 법률이 부여한 권한이란 또 다른 재산이 있긴 하다. 내 사람을 심고 눈 밖에 난 사람을 내치는 인사권이다.

    인사권은 이제 막 취임선서를 마친 기세등등한 대통령이나 내일모레 청와대를 떠날 이삿짐을 꾸리고 있는 날갯죽지 꺾인 대통령이나 다같이 갖고 있다. 대통령 자리에 딸린 고정자산이라는 것이다. 고정자산이라곤 해도 임기 끝에 다다른 대통령이나 국민 지지가 바닥인 대통령은 이 고유 권한조차 함부로 휘두를 수 없다. 함부로 휘두르다간 국민이 들고 일어나고 국회가 가만 있질 않는다. 결국 부자 대통령과 빈털터리 대통령을 가르는 확실한 기준은 대통령이 가진 시간과 누리고 있는 국민 지지밖에 없다.

    대통령의 시간은 하루하루 줄어들고, 대통령의 지지도는 하루하루 변한다. 그래서 어제의 대통령과 오늘의 대통령이 다르고, 경우에 따라선 작년의 대통령과 올해의 대통령은 처지가 완전히 딴판이다.

    그렇다면 노무현 대통령의 지금 재산은 얼마나 되는 것일까. 우선 재산목록 제1호인 시간이다. 대통령은 2003년 2월 25일 취임했고 오늘은 2006년 9월 30일이다. 1300일 가량을 소비했다. 5년 임기 대통령의 총재산이 1800일 정도이니, 전 재산의 7할 넘게를 이미 써 버린 셈이다. 남은 시간은 500일이다.

    다음은 재산목록 제2호인 국민 지지도다. 노무현 후보는 2002년 12월 17일에 48.9%의 득표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 당선자에서 대통령으로 신분이 바뀐 2003년 2월 28일엔 국민의 92.2%가 노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의 역할을 잘 해주리라 믿는다고 답했다.

    대통령 선거에서 노 후보를 찍지 않았던 45%의 국민도 새 대통령에 대한 기대와 신뢰의 흐름에 합세한 것이다. 그러고 한 달 후인 2003년 3월 29일 대통령 지지도는 71.4%가 됐다. 20% 가까운 국민이 한 달 만에 뭔가 심상치 않은 낌새를 눈치 챘던 모양이다. 2006년 9월 26일 현재의 대통령 지지도는 13.4%다.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 후보에게 표를 던졌던 국민 가운데 75%가 등을 돌렸다. 개인적 호불호를 떠나 훌륭한 대통령이 되어 달라고 성원을 보냈던 국민의 85%도 기대와 신뢰를 접었다.

    지금 노무현 대통령의 총재산은 남은 임기 500일과 남은 국민 13.4%밖에 없다. 가난한 대통령이다. 92.2% 국민의 기대와 성원, 그리고 1826일이라는 창창한 시간을 품에 안고 출발한 부자(富者) 대통령이 1300일 만에 빈털터리 신세가 된 것이다.

    그러나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태는 더 심각하다. 대통령 임기 5년은 해마다 값이 달라진다. 취임 첫해는 금(金), 그 중에서도 취임 후 첫 100일은 다이아몬드다. 이 순간은 뭐든지 안 될 게 없는 무소불위의 대통령이다. 이름 앞에 '위대한'이란 수식어가 붙는 대통령은 이 다이아몬드의 순간을 자기 편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전 국민을 위해 유용하게 사용했던 대통령이다.

    다음해는 은(銀), 그 다음해는 동(銅)으로 차츰 헐값이 돼 간다. 그러다가 대통령 임기 가운데 걸려 있는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통령 당이 패배하는 순간 대통령의 남은 세월은 몽땅 고철(古鐵)로 바뀌고 만다. 이때부턴 아무것도 되는 게 없다.

    대통령 당은 각종 보궐선거에서 연속 영패(零敗)의 신기록을 세웠다. 그걸로 대통령이 손에 쥐고 있는 500일의 남은 시간도 고철이 돼 버리고 말았다. 젊은 날 씀씀이가 헤펐던 월급쟁이의 노후가 그렇듯이, 권력을 헤프게 썼던 대통령의 말년은 고단한 법이다.

    문제는 대통령의 가난이 대통령 개인의 가난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가의 위기로 번져 간다. 대통령에게 위기 탈출용 비상 재산까지 동이 났다는 것은 국가가 위기 탈출용 비상 수단을 잃었다는 말과 한가지다. 그런 대통령에겐 권력의 절제가 절실하다. 부자도 아닐뿐더러 권력의 나이로도 결코 젊은 처지가 아니라는 자각이 필요하다. 절대로 무리를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무리하면 본인은 물론이고 나라가 다친다.

    엊그제 TV의 ‘100분 토론’을 지켜본 국민들은 너나없이 대통령이 여전히 무리를 계속 하고 있다는 걱정에 100분 내내 머리가 아파왔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