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27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황호택 논설위원이 쓴 '속옷 벗은 언어'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김원기 의원은 기자 출신인데도 기자들에게 기삿거리가 될 만한 말을 잘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김 의원이 최근 ‘정치세력의 연대와 통합’을 주제로 연설하는 것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연설을 시작하기 전에 오프 더 레코드(비보도)를 조건으로 걸어 꽤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나 하는 기대를 갖게 했다. 그러나 오프 더 레코드를 깰 만한 뉴스는 없었다. 정권 상실 위기에 빠진 여당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이해하는 데는 도움이 됐지만. 1시간 동안 정치적으로 민감한 주제를 말하면서 기사 한 줄 쓸 거리를 안 주는 것도 특별한 재주였다.

    2002년 김 의원이 노무현 대통령후보의 ‘정치적 사부’ 역할을 할 때의 이야기다. 노 후보가 실언(失言)을 자주 하면서 인기가 날로 떨어지는 상황이었다. 그는 노 후보가 기자들을 만난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면 후보 비서실에 전화를 걸어 “내가 갈 때까지 지둘러”라고 말하고 현장에 도착해 노 후보의 발언 내용을 사전 감수(監修)했다. ‘지둘러’는 ‘기다려’의 호남 사투리로 김 의원의 닉네임이기도 하다.

    노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고부터는 대통령의 발언을 감히 감수할 사람이 없어졌다. 노 대통령의 지지도는 상당 부분 말로 까먹었다고 해도 틀림없다. 노 대통령을 국내외에서 자주 만나는 80대 인사는 “나이 먹은 사람을 어쩌겠나 싶어 대통령에게 ‘말을 좀 줄이시는 것이 좋겠다’고 충고를 한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나로서는 힘들게 꺼낸 말인데 공연한 말을 한 것 같아요. 아무 효과가 없었어요”라고 덧붙였다.

    노 대통령은 서민적인 표현이 대통령의 권위를 낮추고 국민을 즐겁게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아이들이 배울까 봐 걱정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국회와 청와대에 있는 386들은 비속한 말을 쓰지 않으면 세상의 불의(不義)에 침묵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분위기다. 무릎을 치게 하는 절묘한 표현은 없고, 칼끝으로 생채기를 찌르고 후빈다.

    인터넷 정치기사마다 젊은 누리꾼들이 편을 갈라 험한 댓글을 주고받는다. 청소년들에게 ‘독극물’이나 ‘불량식품’처럼 유해한 언어가 뉴미디어를 타고 확산되고 있다. 막말정치, 편 가르기 정치가 바로 누리꾼 언어의 오염원(源)이다.

    커뮤니케이션 학자들은 공인(公人)의 말은 내용 못지않게 포장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영양가가 있고 정의로운 내용이니까 불쾌감을 주는 포장이라도 괜찮겠지 생각하고 말하다 보면 커뮤니케이션 회로에서 장애를 일으킨다.

    이용훈 대법원장이 ‘말실수’를 사과했다. 민사재판이든 형사재판이든 “검찰조서를 집어던지라”고 한 표현은 사법부 최고의 어른으로서 금도(襟度)를 갖춘 표현은 아니었다. 지금은 그의 표현대로 ‘법정에서 신발 벗어던진 사람들이 정권을 잡고 있는 세상’이지만 법관들은 양말과 신발을 신고 속옷을 입고 법대(法臺)에 올라서야 한다.

    사법부의 수장이 절간의 수도승처럼 외부 접촉을 끊고 사는 것도 옳은 처신은 아니다. 국민 곁으로 다가가려는 노력 자체는 평가받을 만하다. 그러나 그 정도의 공인이면 사법부 식구들과 문 걸어 잠그고 한 이야기일지라도 공표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며 발언했어야 한다. 이 대법원장은 10월 10일 관훈클럽 토론회에 나오는데 사법부 법관 중에는 우려하는 사람도 있다. 한 고위 법관은 “대법원장이 대통령의 어법을 닮을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정치인들은 발언이 언론에 보도돼 파문이 일면 “앞뒤를 잘라 전체 맥락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고 곧잘 변명한다. 지면과 방송시간의 제약을 받는 언론을 상대하는 공인이라면 앞뒤가 잘려도 문제가 되지 않게 말하는 법부터 배워야 할 것이다.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 공직자의 언어는 전파력이 높다. 한국어를 아름답게 가꾸자면 공인의 언어부터 속옷을 입어야 하겠다. 정진석 추기경이 “단 위에 올라가는 사람은 속옷을 입으라”고 참 좋은 말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