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27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이철호 논설위원이 쓴 '노 대통령의 신세 타령'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국민의 희망 수준이 너무 높아 내 인기가 떨어져 있다." "우리 사회 변화 속도가 아주 빠른데 국민은 계속 불만이다. 열심히 뛰고 있는데 더 뛰라고 채찍질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얼마 전 루마니아 교민간담회에서 절절하게 털어놓은 괴로운 심정들이 가슴에 와닿는다. 정말 정곡을 찔렀다. 사실이지 요즘 기자들도 두렵고 고단하다. 독자의 눈높이가 예사롭지 않고 입맛까지 까다로워졌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이나 언론은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셈이다.

    올 들어 7월까지 한국의 서비스수지 적자 규모가 러시아에 이어 세계 2위라고 한다. 그동안 경상수지 적자가 6억3000만 달러인 데 비해 서비스수지 적자만 106억 달러를 기록했다. 이 가운데 여행수지의 비중이 절반을 넘었다. 여행수지란 해외여행.유학.연수 등을 위해 쓴 돈과 외국인들이 같은 목적으로 지출한 금액 간의 차이를 말한다. 간단히 말해 너나없이 외국으로 나돌아 다니는 바람에 반도체나 자동차를 수출해도 그 구멍을 메우기가 힘든 지경이 됐다.

    그렇다고 돈을 펑펑 쓴 것일까. 그런 것은 아니다. 2000년에는 525만 명이 밖으로 나가 1인당 133만원을 쓴 반면 지난해에는 964만 명이 해외에서 127만원씩 지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환율 하락까지 감안해도 헤픈 씀씀이보다는 해외여행객 규모 자체가 급증한 것이 적자의 가장 큰 원인이다. "국민소득 1만 달러가 넘으면 해외여행이 자유화되고, 1만5000달러를 넘으면 해외여행이 대중화된다"는 이야기가 빈말이 아니다.

    함부로 여행수지 적자를 나무랄 수는 없다. 전통적으로 교역을 일종의 전쟁으로 간주해온 근거 없는 오해 때문이다. 해외여행이나 유학은 그만큼 그 나라에서 지식을 배우거나 서비스를 받게 된다. 양쪽 모두 남는 장사가 아니라면 거래 자체가 성립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여행수지가 늘수록 그 사회의 수준은 높아지기 마련이다. 잘사는 선진국이나 못사는 후진국을 돌아다니며 우리 사회와 자연스럽게 비교하게 된다. 여행수지 적자 규모만큼 국민의 눈높이가 올라가는 셈이다.

    이웃나라 일본의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1985년 일본 여행수지 적자는 36억 달러. 그러나 플라자 합의로 엔화 가치가 두 배로 오르면서 93년에는 232억 달러로 치솟았다. 미국.유럽의 여유로운 교육 풍토를 접하면서 조기 유학이 기승을 부린 것도 우리와 닮은꼴이다. 그해 7월 선거에서 자민당 단독 정권이 38년 만에 붕괴됐다. 이른바 '55년 체제'가 무너진 배경에는 소비세(부가가치세) 도입이란 패착도 작용했지만, 무엇보다 국내 정치에만 매몰된 자민당이 새로운 세계에 눈뜬 유권자들의 수준을 외면한 것이 최대의 패인으로 꼽힌다.

    한번 올라간 국민의 기대 수준을 낮추기는 어렵다. 현실과 괴리를 좁힌다고 문을 닫아 걸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앞으로 경제 규모가 커지고 원화 가치가 오르면 해외여행은 더 늘어나기 마련이다. 국민 눈높이에 맞추려면 사회 전체적인 수준을 높이는 게 유일한 방도다. 어느 분야에서나 세계 최고를 향한 무한 경쟁에 돌입할 수밖에 없다. 힘겹고 고단한 삶이다. 이런 점에서 노 대통령의 루마니아 신세타령은 충분히 공감이 간다. 나름대로 열심히 하는데 지지율은 바닥이다.

    지금은 20년 전 골방에서 읽은 '해방전후사의 인식'이나 '전환시대의 논리' 따위로는 나라를 이끌 수 없는 세상이다. 세계 2위 여행수지 적자 대국의 국민 눈높이부터 헤아릴 필요가 있다. 이런 현실을 살폈다면, "노 대통령은 21세기를 가고 있는데 국민은 20세기에 살고 있다"며 국민 수준을 싸잡아 비하하는 발언이 나왔을 리 만무하다. 노 대통령은 외국을 돌고 올 때마다 사람이 달라지는 느낌이다. 좀 더 자주 나가 눈높이를 높였으면 한다. 루마니아 발언처럼 우리 사회의 변화 속도는 엄청 빠르다. 미국에 안 간 것이 자랑이던 시대는 지났다. 이불 속에서 "할 말 하겠다"며 떼쓰는 지도자를 이해해 줄 국민도 줄어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