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거 중국에는 이른 아침 대궐로 출근하러 나온 재상과 조정대신들이 대궐 문이 열릴 때까지 대기하는 대루원(待漏院)이라는 관사가 있었다. 북송(北宋)의 왕우칭(王禹偁)은 대루원의 벽에 고관들이 힘써야 할 일을 써 붙였는데 이를 대루원기(待漏院記)라고 한다.
     
    대루(待漏)라는 것은 바로 루각(漏刻)이라는 물시계의 시간을 기다린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요란스런 행렬을 이끌고 출근한 재상과 조정대신들은 대루원에 잠시 대기하면서 그 날의 국정을 생각하게 된다. 왕우칭은 대루원기에서 시공을 초월하여 고위 공직자들의 귀감이 될 재상론(宰相論)을 다음과 같이 설파하고 있다.
     
    “대궐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동안 재상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待漏之際, 相君其有思乎)” 

    “(바른 재상은 생각하기를) 백성들이 편안하지 못하다면 편안하게 하리라. 사방의 오랑캐가 따르지 않는다면 설득하여 귀복(歸復)하게 하리라. 병란이 그치지 않고 일어난다면 어떻게 그치도록 할까 … 현인이 초야에 묻혀 있다면 발탁하리라. 조정에 아첨하는 신하가 있다면 쫓아내리라 … 형벌이 제대로 쓰이지 못하여 사기와 범죄가 계속된다면 도덕정치로 인심을 교화시키리라. (바른 재상은) 이런 걱정 저런 근심에 시름이 그치지 않아 마음이 평온하지 못한 채 시간을 기다려 입궐하게 된다(其或兆民未安, 思所泰之. 四夷未附, 思所來之. 兵革未息, 何以弭之 … 賢人在野, 我將進之. 佞臣入朝, 我將斥之 … 五刑未措, 欺詐日生, 請修德以釐之. 憂心忡忡, 待旦而入)” 

    “(그릇된 재상은 생각하기를) 원한이 있는데 보복하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쫓아내리라. 내게 은혜를 베풀었는데 보답하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부귀영화를 누리게 하리라 … 나를 추종하는 간사한 자들에게는 높은 관직을 주리라. 바른 말을 잘 하는 강직한 사람은 제거하리라 … 관리들이 법을 악용하여 천자가 백성들의 원망소리를 듣게 되면 아첨하는 얼굴로 노여움을 없애리라. (그릇된 재상은) 사리사욕에 온갖 못된 생각만 하면서 졸고 앉아 있을 것이다(其或私讐未復, 思所逐之. 舊恩未報, 思所榮之 … 姦人附勢, 我將陟之. 直士抗言, 我將黜之 … 群吏弄法, 君聞怨言, 進諂容以媚之. 私心慆慆, 假寐而坐)”
     
    “한 나라의 정치와 만백성의 목숨이 재상 한 사람에게 달려 있으니 재상된 자는 어찌 삼가고 조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一國之政, 萬人之命, 懸于宰相, 可不愼歟)”

    몇 개월 동안 계속되는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고위 공직자들의 안하무인격이고 비합리적인 언행들을 보면서 왕우칭의 대루원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지난 3월 이해찬 국무총리는, 200억 원대 주가조작과 가격담합 등의 불법행위를 저질렀고 전 부인 또한 여대생 청부살인 혐의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은 사람과 어울려 ‘내기골프’를 치고도 문제가 불거지자 이를 모두 부인하는 거짓말로 일관하여 지도자의 도덕성과 국정의 안정성에 먹칠을 한 적이 있다.
     
    노 대통령은 헌법의 수호와 헌법의 유권적 해석을 소임으로 하는 헌재소장을 임명하면서 “헌재소장은 재판관 중에서 임명된다”는 헌법과 “대통령이 임명하는 헌법재판관은 국회 법사위 인사청문회를 거쳐야 된다”는 관련법을 심각하게 위반하였다. 노대통령은 자신이 지명한 전효숙 후보의 6년 임기 보장을 위해 그를 헌법재판관에서 사퇴시킨 다음 전효숙 임명 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는 편법적 발상을 동원한 것이다. 이로 인해 국회가 파행되고 헌재 사상 초유의 헌재소장 공백이 나타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러고도 모자라 노 대통령은 전효숙 후보에 대한 경륜과 자질 부족이라는 비판적 여론과 임명 동의안 처리 과정에서 빚어진 국회의 파행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기서 밀리면 심각한 레임덕을 맞을 수 있다는 위기 의식에서 또다시 전효숙 임명 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하였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9월 13일 광주고법에서 “변호사들이 내는 자료라는 게 상대방을 속이려는 문건이 대부분이다”라고 한 데 이어 19일에는 대전고법에서 “검사들이 밀실에서 받은 조서가 공개법정의 진술보다 우위에 설 수 없다”는 법조삼륜(法曹三輪)의 틀을 허무는 발언을 함으로써 파문을 일으켰다. 이에 대해 검찰총장이 공개적으로 유감(有憾)의 뜻을 표명하는 사법(司法) 사상 초유의 일이 일어났고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은 대법원장의 즉각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그동안 노 대통령의 계속되는 부적절하고도 사려깊지 못한 언행에 놀란 국민들의 가슴은 부어터질 지경에 와 있다는 것이 대다수의 하소연이다. 이와 같은 노 대통령의 언행은 국정의 안정성에도 심각한 영향을 주었을 뿐 아니라 국가이익을 크게 손상시켜 왔다. 게다가 한결같이 노 대통령의 ‘코드인사’에 따라 고위직에 오른 사람들의 언행마저도 편법과 사고로 점철된 노 대통령의 언행을 닮아 가는 것 같아 멍들어 있는 국민을 불안케 하고 있다. 

    국가와 국민이 대통령을 비롯한 고위 공작자의 사유물이 아니라면 그들에게 아무리 많은 권한과 권력이 있다고 하여 자신이 원하는 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지도자의 권위라는 것은 언행이 정상적이고 정도를 걷는 경우에야 비로소 생기는 것이다. 비정상과 파격이 관행으로 된다면 부메랑은 반드시 행사자 자신에게 돌아오는 법이다. 헌법을 파괴하고 법률을 위반하는 행위로서는 아무리 고집을 쓴다 한들 정당성이 생길 수 없는 것이다.

    노 대통령과 노무현 정부의 행정, 사법, 헌재 수장들이 모두 좌충우돌하고 있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보면서 왕우칭의 대루원기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이들이 출근하면서 대루원기에 나오는 것과 같은 당연한 내용을 생각해 주기를 바라는 것조차 무리인 것 같다. 그러나 최소한 그 날 자신들이 표출할 언행이 과연 정상적인지 아니면 비정상적인지 만이라도 생각해 주기를 바란다. 그것이 나라의 녹을 받아먹는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양심과 도리가 아니겠는가? 국민들은 대단히 지쳐있다.

    <객원칼럼니스트의 칼럼내용은 뉴데일리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