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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목청껏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조기 환수 반대’를 외치고 있는 한나라당. 전작권 2009년 이양 입장이 담긴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 서신 공개 이후 전작권 환수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지만 한나라당은 오히려 우왕좌왕하며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전작권 2009년 이양 입장이 알려진 후 한나라당은 다급해졌다. 강재섭 대표가 긴급기자회견을 통해 영수회담 제안과 여야특별위원회 구성 등을 제안하며 노무현 정부에 대한 공세 수위를 높인 것에 이어 29일에는 전작권 조기 환수 논의 중단을 요구하는 결의안 채택을 위해 긴급의원총회를 열었다.
그러나 이날 국회에서 열린 의총에 모인 의원들의 표정에는 전작권 환수 반대를 위한 결의나 긴장감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참석한 의원은 정원 126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으며 회의도 예정된 시각에서 30분가량이나 지난 11시에야 겨우 시작됐다. ‘긴급’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였다.
전작권 단독행사가 가져올 문제점에 대한 설명은 ‘장황’했다. 국회 국방위원회 한나라당측 간사인 김학송 의원은 10분 동안 ‘시기상조, 안보불안, 국방비 부담, 정치적 저의’ 등 그동안 한나라당에서 누누이 지적해 왔던 전작권 조기 환수가 불러올 문제점들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는 지난 22일 국방위 소속 한나라당 의원들과 을지 훈련장을 방문해 느꼈던 점까지 이야기하면서 전작권 조기 환수가 가져올 안보불안을 우려했다.
하지만 정작 전작권 문제를 풀 방법을 논의하는 시간은 ‘뜨뜨미지근’했다. 그동안 꾸준히 이 문제에 관심을 보였던 몇몇 의원들만 열변을 토했을 뿐 한나라당의 대응 방법에 대한 열띤 토론은 진행되지도 못했다. 오히려 전작권 문제에 대처하는 지도부에 대한 불만만 터져 나왔다.
국방 전문가 송영선 의원은 “노 대통령이 전작권 환수 발언을 한 뒤 곧바로 윤광웅 국방장관이 아닌 노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이상 치밀한 정치계산임으로 국방위 차원에서 이 문제를 다루면 우리는 아류다, 노 대통령과 붙어야 한다고 주장했다”며 “당에 즉각 특위를 만들고 한나라당 의원 전원을 소집해 ‘전작권 환수는 자주의 문제가 아닌 국민 경제 부담 문제’라는 내용의 플래카드를 들고 외치자고 했지만 어느 것도 채택되지 못했다”고 분개했다.
송 의원은 이어 “한나라당은 왜 이렇게 늑장 대처하느냐. 생각을 너무 많이 하는 것 아니냐. 계산할 문제가 아니다”며 “저쪽에서 ‘자주’라는 용어를 쓰는 순간 우리는 ‘마이너스’에서 시작한 것이다. 더 이상 깎일 것도 없다. 치밀하게 준비하고 똘똘 뭉쳐 공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한나라당이 얄팍한 ‘자주’라는 개념에 물러서서는 안된다”며 “경제라는 개념과 세계화 시대에 북한처럼 고립되지 않기 위해서는 장기전으로 나가야 한다”고 소속 의원들을 독려하기도 했다.
당 ‘국제통’ 박진 의원은 “전작권 문제는 우리끼리 세미나하고 끝날 사안이 아니다”며 “결의안을 내고 논의 중단이나 시기 연장 문제가 나올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미국을 상대로 한나라당의 입장을 분명히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과 미국의 손뼉이 맞아서 부시 대통령이 한국 원하는 대로 해줘야 한다고 하는 와중에 미국에서 무슨 말을 하느냐고 하는데 그것이야 말로 잘못된 패배주의 발상”이라며 “수권정당이라면 미국에 분명한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하고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 결의안이 나오기까지 닷새나 걸렸다”며 “사립학교법, 수도이전 문제 등과 같이 이번에도 시간을 지체하면서 뒷북치는 행위를 반복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한나라당 소속 의원 전원이 서명한 전작권 조기 환수 반대 서한을 미국 정부 실무진이 아닌 부시 대통령과 럼즈펠드 국방장관에게 직접 전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 지도부의 ‘안이한 자세’를 질타하는 목소리가 이어졌지만 이날 의총을 연 목적은 김형오 원내대표의 마무리 발언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김 원내대표는 곧 “결의문을 갖고 ‘세레모니’를 하려고 했는데 의원들이 별로 모이지 않았으니 오늘은 채택하는 것으로 하고 다음에 특별히 의원들이 많이 모였을 때 하자”고 했다.
한나라당은 당초 의총직후 국회 본청 앞 계단에 모여 결의문을 낭독할 예정이었지만 모인 의원들의 숫자가 적어 ‘모양새’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강재섭 대표는 이미 자리를 비운 후였으며 의총장에는 “긴급할 때도 안 모이는데 언제 또 모이느냐” “오늘 해야 한다” “결의문 때문에 지금까지 남아 있었더니…” 등 의원들의 불만이 쏟아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