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성들의 속어에서 ‘독사’란 날카롭고 무서운 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나는 노무현 대통령(이하 노씨)이 전형적인 독사 타입이라고 생각한다. 독사란 이름 그대로 독을 품은 무서운 뱀이다. 한번 물리면 죽는다.

    사실 독사는 다리도 없다. 땅을 슬슬 기어다니니 만만하게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짐승들은 독사에게 당한다. 일단 독사와 눈을 마주치면 독사의 먹이는 공포감에 꼼짝도 못하게 된다. 그 다음에는 잡아먹힐 뿐이다.

    이는 남성들 사이의 격투에서도 마찬가지다. 독사는 일단 눈빛과 기로 상대를 제압한다. 일단 독사와 맞붙게 되는 상대는 기가 죽어서 다리부터 후들후들 떤다. 그 다음에는 두들겨 맞는 것이다. 독사는 악바리 근성이 있어서 맞아도 맞아도 또 일어난다. 맷집이 강하고 승부근성이 지독하다. 그리고 나름대로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머리를 쓰고 싸움 자체를 연구한다. 이런 독사들은 하루의 대부분을 싸움 궁리로 보내기 때문에 도저히 보통 학생들은 그들을 당해 낼 도리가 없다.

    노씨에게 또 당한 한나라

    한나라당은 이런 독사같은 무서운 노씨에게 또 당했다. 바로 작통권 이슈 논란에서 당했다는 이야기다. 노씨는 ‘민족자주’라는 이슈를 선점하고 한나라당을 내려다 보고 있다. 한나라당은 국민투표 카드로 맞서고 있지만 이미 국민투표로 간다는 것 자체가 노씨에게 밀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씨 입장에서는 국민투표에서 져 봐야 손해 볼 일이 하나도 없다. 이미 막장에 선 입장이 아닌가. 그런데 반대로 한나라당은 어떠한가. 국민투표에서 지면 그야말로 낭패다. 이겨봐야 본전이고 자칫 잘못하면 상대세력만 결집시키는 빌미를 제공할 뿐이다. 한마디로 한나라당은 노씨의 덫에 말려 든 셈이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은 왜 번번히 노씨에게 당하는 것일까. 우선 한나라당만의 뚜렷한 비전과 목표가 없기 때문이다. 노씨를 비롯한 중도-진보세력은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경제발전이란 이슈를 빼앗겼다. 그리고 해방 직후 좌파세력은 이승만 전 대통령에게 민족자주라는 이슈를 빼앗겨 몰락했다. 해방 직후 전국을 엄청난 빈곤이 내려 누르고 있는 상황에서 우파가 기사회생할 수 있었던 것은 좌파세력이 신탁통치 찬성이란 어처구니없는 자살골을 넣어 준 것이 최대의 원인이었다고 보는 학자들이 많다.

    좌파세력이 신탁통치 찬성이란 엉뚱한 짓을 하는 바람에 이승만 전 대통령과 당시 우파가 민족자주라는 이슈를 장악해 남한에서 좌파세력을 꺾을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이렇게 이승만 전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한번씩 당한 노씨의 주변세력들은 민족화해와 민족자주라는 양대 이슈를 선점하고 과거 권위주의 정권의 악습과 과오의 비판을 통해 문화적 주도권을 보수에게서 빼앗아 갔다. 그 결과 반미-반 보수주의 성향을 강하게 띠고 있는 두 편의 영화가 서울 한복판에서 엄청난 관객을 끌어 모으는 시대가 된 것이다.

    왜 우파는 무너졌나-머리가 없다

    그렇다면 왜 이런 상황이 전개되었을까? 현재의 한국 보수는 크게 세 가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선 머리가 없다. 머리가 없으니 뚜렷한 목표와 의식을 대중들에게 심어주질 못한다. 한나라당 지지율이 43%에 이른다지만 그 지지율이 2007년 대선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믿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어차피 대선은 33%의 우파와 33%의 반/비 우파, 33%의 주류와 주류지지세력, 그 주류를 반대하는 비주류와 비주류지지세력 33%의 대결이다. 각기 기본 33% 지지세력을 갖고 있는 우파와 반 우파, 내지는 비 우파가 5%에서 8% 정도 되는 부동층을 놓고 싸우는 것이 대선이다.

    부동층이 5~8%정도 된다고는 하지만 그 가운데는 무소속 후보나 진보정당에 투표하는 유권자들도 있으므로 실제 부동층은 2%에서 4% 정도 되는 셈이다. 정리하면 그 부동층 2~4% 가운데 한나라당이 더 많이 먹느냐, 반 한나라당이 더 많이 먹느냐 하는 것으로 대권의 승패가 결정된다.

    2007년 대선경쟁에서 한국 사회에 팽배한 반노 정서 때문에 한나라당이 조금 낫게 출발해도 그 차이는 금방 균형을 이룰 가능성이 높다. 앞서 이야기한대로 결국 대선은 33%의 세력을 서로 가진 채 약간의 부동층을 갈라 먹는 싸움이기 때문에 그러하고, 열린우리당을 비롯한 반 한나라 세력의 경우 전반적으로 젊은 유권자나 진보세력의 비중이 크기 때문에 지지세 확산이 용이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그들은 2007 대선 게임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대결구도로 만들거나 기성세대와 젊은이들의 대결구도로 만들어서 쉽게 대선게임을 5:5 구도로 바꿔 놓을 수 있다. 지난 2002 대선을 주의깊게 지켜 본 사람이라면 지금까지 한 말이 무슨 말인지 얼른 이해가 될 것이다.

    결국 부동층을 끌어 모으려면 33%에 이르는 기존 보수 지지층이 매력적이어야 한다. 그런데 미안하게도 기존 보수 지지층은 그다지 부동층에게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지금 43%에 달하는 지지율이 나오는 것은 별 의미없는 숫자다.

    통상적으로 여론조사는 전화를 통해 행해진다. 전화를 통해 행해지는 여론조사는 사실 신뢰성이 떨어진다. 전화를 통해 들어오는 여론조사를 귀찮다고 그냥 끊어 버리는 사람이 대다수 일 것이기 때문이다. 여론조사 회사들의 경우 간혹 전화를 꼬박꼬박 받아서 대꾸를 잘해주는 사람들을 대상으로만 여론조사 전화를 하는 경우도 있을 수도 있는데 그 역시 표본 자체가 문제가 있다. 귀찮다고 전화를 끊어버리는 일반 시민의 정서와는 동떨어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렇다.

    근성없는 보수, 악착같은 마음이 없다 

    그리고 우파의 두 번째 문제는 근성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근성이란 악착같이 이겨 보겠다는 마음이다. 지금도 우리 우파들은 43%의 한나라당 지지율을 믿고 희희낙락하는 중이다. 아마 1년이 지난 다음에는 지금의 포만감이 꿈 같은 시대의 이야기로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노씨와 노씨 주변의 사람들은 승리를 위한 근성이 강하다. 대선에서 이기기 위해 한 사람이 전화를 최소 100통씩 걸어대는 사람도 있었다. 보수진영에서도 간혹 그런 사람이 나오긴 하는데 내가 본 그런 이들은 아무리 봐도 극우적인 이야기를 해서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보수에 대한 부정적 생각을 심어주거나 자기하고 친한 사람, 어차피 한나라당을 찍을 사람한테 전화를 퍼부어 놓고는 자기가 한나라당을 위해 마치 중요한 일을 한 양 느끼는 사람으로 보였다.

    노씨와 노씨 주변의 사람들은 자기가 아는 사람들 가운데 뚜렷한 지지정당이 없는 사람들 중심으로 접근해서 설득한다. 특히 20대 젊은이들이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의 20대 젊은이들은 한 달에 30만~40만원씩 용돈을 주는 아버지가 한나라당을 선택하라고 해도 거부하고 3000~4000원 짜리 식사 한끼를 사주는 친구나 학교 선배의 말에 넘어간다.

    한국의 20대 젊은이들에게 있어 아버지는 명령하는 사람, 협박하는 사람, 가까이 있어도 멀리 있는 사람이지만 친구나 학교 선배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가정에서 아버지를 대하는 시간보다 친구나 학교 선배를 대하는 시간이 더 많다. 아버지가 하는 이야기는 공연히 촌스럽게 느껴지지만 친구나 선배가 하는 이야기는 그럴 듯 하고 합리적으로 느껴진다.

    일부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20대 젊은이들 사이에서 자생적 보수층이 빠른 속도로 형성되고 있는 판에 그게 무슨 소리냐고 큰 소리를 뻥뻥 쳐댄다. 어디 내 말이 맞는지, 그들의 말이 맞는지 두고 보면 알 일이다.

    아무튼 출세하고 싶으면 남다른 근성이 있어야 하듯 선거에서 이기는 데에도 집념과 근성이 필요하다. 일류대학에 진학하는 우등생은 덜 자고 공부 자체를 연구한다. 단 1점이라도 더 받기 위해 문제풀이를 반복하고 문제를 빨리 푸는 방법을 집요하게 연구한다. 그런 자세가 있기에 우등생이 되는 것이다. 일류 기자도 마찬가지다. 특종을 하기 위해 집요하게 연구하고 발로 뛴다. 다른 기자들이 기자실 편안한 쇼파에 누워 잡담을 나눌 때 명함 한 장이라도 더 돌리고 책 한 줄을 더 읽는다. 이런 근성이 없으면 일류 기자가 될 수 없다. 따분한 잔소리 같지만 사실이 그러하다.

    동지애없는 보수- 보수운동이나 보수인터넷 매체에 관심없어

    그리고 한국 보수의 세 번째 문제는 동지애가 없다는 점이다. 한국 보수사회는 보수운동 하는 사람들이나 보수 인터넷 매체 하는 이들에게 별로 관심이 없다. 이는 특히 온건한 보수주의자들이 더 심하다. 차라리 극우파들은 동지애는 비교적 강한 편이다.

    한국 보수인들은 전반적으로 ‘의로움’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로움’부터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보수운동을 열심히 하면 개인의 사익이 극대화되는 시스템이 짜여져 있는 것이 아니라 보수운동을 열심히 하면 할 수록 개인의 사익이 줄어드는 시스템이 짜여져 있다. 이러다 보니 보수운동 진영에 젊은이들이 줄고 대신 극우파들의 목청만 날로 커지고 있다. 이런 현실은 보수운동 자체를 무의미하게 생각하는 시각을 더욱 강화시켜주고 있다. 상식적으로 재벌이 하는 주장들, 기존 대형 보수매체가 하는 주장들을 그대로 반복한다면 보수운동 자체가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느냔 말이다. 한국 재야 보수운동의 맹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 보수사회는 동지애가 없고, 저마다 자기 이해관계를 우선 앞세우다 보니 다들 일을 열심히 하려 들지 않는다. 어차피 일을 열심히 해도 남 좋은 일만 된다고 생각한다. 생존을 위해 악착같이 버둥거리는 노씨와 노씨 주변세력과 정반대인 셈이다. 동지애도 없고 근성도 없는 보수진영에 애써서 머리를 굴려 좋은 아이디어를 짜낼 인력도 안 생기는 것이 당연하다. 공연히 엉뚱한 소리했다가는 괘씸죄로 찍혀서 봉변만 당할 판이다.

    두뇌인력이 보수진영에 잘 공급이 되지 않으니 한국 보수진영은 매번 천편일률적인 이야기만 한다.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안하고 이슈를 주도해 가는 것이 아니라 매번 앉아 노씨나 노씨 주변세력들이 토해내는 주장을 반대만 한다. 보수집회를 하면 어르신들만 나오고, 수해났는데 골프를 즐기는 식으로 국민 감정을 긁는 이들이 계속 나오고, 과거의 권위주의-부패 이미지에서 완전히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으니 한국 보수진영이 제자리 걸음 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얄궂게도 반노정서 덕택에 지지율이 40%를 넘고 있으니 한나라당이나 보수진영으로서는, 특히 보수성향이 강한 이들로서는 도대체 뭘 바꾸라는 건지, 뭘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도통 이해가 잘 안될 법도 하다. 이대로 가만 있으면 대통령 자리 얻는 것은 따 놓은 당상이라고 생각할 법도 하다는 말이다. 그러고는 이제 대통령 자리는 얻은 것이나 진배없으니 이권싸움에 퐁당 뛰어든다. 자신이 지지하는 대선주자 별로 편을 갈라 우당탕 싸움을 해댄다. 그것을 보는 일반 국민들은 슬그머니 한나라당을 포기한다.

    물론 이해관계가 달라 싸움이 벌어지는 것은 할 수 없다고 해도 포지티브 경쟁도 아니고 편 갈라 티격태격 싸움이나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일반 국민들은 역시 ‘한나라당은 배 부른 놈들이나 찍는 정당’이라고 치부할 수 밖에 없다. 솔직히 보수 인터넷 사회에서 주로 돌아다니는 이들은 일반 국민이라기 보다 소위 ‘꾼’들이다. 꾼들이란 뭔가 이해관계를 위해 몰려 다니는 이들을 말한다.

    단순히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비교적 순수한 ‘꾼’들부터 뭔가 노골적으로 이권을 바라고 버둥거리는 ‘꾼’들까지 다양한 꾼들이 보수 인터넷 사회에 있다. 아무튼 보수 인터넷 매체건 보수 운동단체건 제대로 발전을 하고 싶으면 이 ‘꾼’들 보다는 일반 시민들의 입맛을 맞추는 시스템으로 나아가야 한다.

    일일이 꾼들 비위 맞추다 보면 배가 산으로 간다. 이는 한나라당도 마찬가지다. 한나라당은 한나라당 주변에서 매일 왈왈거리는 사람들 말은 좀 적게 듣고 일반 국민들의 말을 많이 들어야 한다. 지금 작통권 환수 논란에서 한나라당이 죽을 쑤고 있는 원인도 한나라당 주변에서 매일 왈왈대는 사람들 말을 듣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제발 한나라당에게 간곡히 조언하건대 곁에서 왈왈대고 아부하는 사람들을 멀리하고 일반 시민들의 눈높이에 맞춰 생각하기 바란다. 제발 20대,30대 일반 젊은이들과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좀 하라. 맨날 한나라당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만 하는 젊은이들만 곁에 두지 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