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은 본관 안으로 들어갔지만 갈 곳이 없었다. 그동안 청와대에 들어와 살면서 갈 곳이 없다고 생각해 보기는 처음이었다. 대통령은 한동안 본관 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다가 세종실로 가기로 했다.

    청와대 세종실은 회의실 및 접견장으로 사용되는 곳이다. 북쪽 벽면에는 일월도, 남쪽 벽면에는 훈민정음이 장식되어 있다. 대통령이 이 곳을 찾은 이유는 뭔가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풀리지 않는 사안들에 대해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래서 대통령은 세종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두컴컴한 세종실에 문을 켜자 빈 의자만이 눈에 들어왔다.

    아!

    대통령은 가슴을 찌르는 듯한 쩌릿한 통증을 느꼈다.

    텅 비어 버린 회의실.

    이것이 바로 기울어 가는 자신의 권력을 드러내 주는 사례였다. 대통령은 회의실 중앙의 테이블 의자에 앉아 회의실을 한번 둘러 보았다. 대통령의 눈에 취임 초기 이 회의실에 앉아 치열하게 토론하던 사람들이 어른거렸다. 그 치열함이 오늘까지 이어졌다면 내 가슴이 더욱 편했을 것을. 대통령의 눈에 그동안 대통령과 생사고락을 같이 했던 사람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 순간 대통령의 눈에 대통령을 떠나간 사람들이 나타났다.

    한때는 그들이 미웠지만 지금은 그런 마음이 사라져 버렸다. 다 지난 일이었을 뿐이었다. 대통령을 떠난 이들이 생각난 다음에는 그의 정적들이 하나 둘 씩 떠 올랐다. 대통령은 담담한 마음으로 그들을 생각했다. 그의 정적들은 그가 퇴임한 후에도 그의 목을 조여 올 것이 분명했다.

    대통령은 울적한 마음이 들었다. 갑자기 대통령은 소주 한잔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대통령은 오징어를 안주 삼아 부산의 바닷바람을 맞으며 소주 마시던 기억이 났다. 대통령은 소주 사러 청와대 밖으로 뛰쳐 나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뭔 놈의 찌라시들이 지랄을 하건!

    그러나 그것도 불가능했다. 한 밤중에 자기 마음대로 소주 한 병 마실 수 없는 곳이 청와대였다.

    권력의 감옥.

    처음에 청와대에 들어 올 때는 좋지만 말년이 가까워 오면 감옥처럼 느껴지는 곳이 청와대가 아닌가. 대통령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아 버렸다. 그런데 그때였다. 갑자기 대통령의 몸에 한기가 느껴졌다. 아무리 잠옷차림이고 밤이라지만 여름철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추위가 느껴질 줄은 몰랐다. 대통령은 아마 청와대를 관리하는 누군가가 실수로 세종실에 냉방을 틀은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세종실로 사람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하나같이 무릎 아래가 없었다. 대통령은 깜짝 놀라서 서둘러 일어나려고 했지만 자리에서 일어나지질 않았다. 대통령은 옴짝달짝 못하고 자리에 붙어 버렸던 것이다. 세종실로 들어오는 정체불명의 존재들이 문제의 한기를 가지고 들어온 것으로 보였다. 대통령은 소리라도 쳐 보려고 했지만 그것도 되지 않았다.

    이게 어쩐 일인가.

    날 잡아가려고 저승에서 귀신들이 온 건가?

    그런데 이상한 것은 대통령을 잡아가려고 귀신들이 왔다면 이렇게 귀신들이 많이 와야 할 이유는 없었다. 세종실 안에는 계속 귀신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어느 새 세종실 안에 귀신 수십여명으로 가득 차 버렸다.

    귀신 가운데 하나가 대통령 곁으로 걸어 나와 대통령에게 가벼운 목례를 했다. 대통령은 황급히 그 인사를 받았다. 마비상태가 풀려 대통령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되었지만 자리에서 일어나지는 못하는 상황이었다.

    ‘자, 유령 여러분. 오늘 우리 대통령 각하를 모시고 토론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여기까지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우리 모두 허심탄회하게 대통령 각하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고 대통령 각하의 말씀을 듣도록 합시다.’

    어느 귀신 하나가 이런 말을 마치고 난 뒤에 갑자기 어느 귀신 하나가 방금 말을 한 귀신 곁으로 다가가 귀뜸을 했다.

    ‘아, 참 제가 실수했습니다. 먼저 우리 귀신들도 국민의례를 하도록 합시다. 우리는 모두 한국을 조국으로 하는 귀신들이므로 국민의례를 하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그리고 애국가는 일 절만 부르겠습니다.’

    귀신들이 일어나자 대통령도 자동으로 일어나게 되었다. 대통령은 두렵기도 하고 어리둥절하기도 했다. 귀신들이 부르는 애국가는 아주 슬픈 곡조의 노래였다. 대통령은 점점 겁이 났다.

    ‘자, 이제 국민의례가 끝났습니다. 이제는 전직 대통령들을 모시고 간단한 인사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세상에.

    대통령의 입이 떡 벌어졌다. 이승만 전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세종실로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귀신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쳤다.

    ‘에에에에에에, 조오온겨여여영하아는 국민 여러부우운.’

    이승만 전 대통령은 특유의 목소리로 연설을 시작했다.

    ‘내가 대한민국을 건국한 이래 수십 년이 흐른동안 대한민국은 크게 번창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가슴 아프게도 이 번창하던 대한민국이 조금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들이 이렇게 모여 현재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모시고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눠 보려 합니다.’

    귀신들은 조용히 앉아 이승만 전 대통령의 연설을 경청했다.

    ‘어쩌면 이 몸도 과오가 커서 현재를 살아가는 한국 국민들이나 이 자리에 앉아 있는 대통령께 충고를 한다는 것이 주제 넘은 일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이 대한민국을 건국하는데 앞장 선 사람으로 너무나 가슴이 아프고 안타까워 오늘 이 자리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긴 말 하지 않겠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많은 지혜가 나와서 이 나라를 현재 이끌어 가는 대통령에게 많은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말을 마치고 단상을 내려갔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천천히 대통령이 있는 자리로 걸어왔다. 대통령은 숨이 막힐 듯 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대통령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대통령은 얼른 일어나 악수를 했다. 따뜻한 손이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만면에 웃음을 띄고 대통령의 등을 어루만지며 격려를 했다. 그런데 무슨 이유였는지 모르겠지만 대통령은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 이번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단상에 올라갔다.

    ‘청중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박정흽니다.’

    박 전 대통령은 특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인사를 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본론만 간단히 말하겠습니다. 우리 이제 와서 이 자리에 와 있는 대통령 타박하지 맙시다. 이제 와서 불평해봐야 뭔 소용입니까? 건설적인 이야기만 합시다. 길게 할 말 없습니다. 여기 오신 분들 말씀 듣고 나중에 조금 말하겠습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넙죽 인사를 하고 단상을 내려갔다. 귀신들이 박수를 쳤다.

    ‘자, 이제 우리 귀신 여러분들의 발언차례가 돌아왔습니다. 이 자리에 대통령 각하가 계시니 대통령 각하에게 하고 싶은 말씀 다 해보시기 바랍니다. 예, 저쪽에 앉아계신 귀신부터 나와 주십시오.’

    귀신 사회자가 지명한 귀신이 단상으로 걸어 나왔다.

    ‘햐, 참 지는 이 나이 먹을 때 꺼정 단상에 나와 셔 가지고 연서얼을 해 본 일이 없는디 요로코롬 나와서 말을 혀 불라니 기분이 쪼까 거시기혀요. 하지만 그려도 지가 할 말을 지대로 해불텡게 잘들 들어보소.’

    지명한 귀신은 단상에 놓여 있는 물을 한 잔 마시고 말을 이었다.

    ‘여그 지금 우리 대통령 각하께서 나와 계시는디요. 지도 실은 우리 대통령 각하를 찍었어라. 지는 일단 고향이 고향인지라 워쩔 수 없어 대통령 각하를 찍은 바도 있고, 그라고 일단 무엇보담도 서어어민 대통령이란 말이 참말로 징허게 이 가심을 우벼파불어서 대통령 각하를 찍었어라. 그랴서 몇 년을 참고 기달렸당께요. 서민을 우해서 정치를 허신다고 허니께. 그란디 지켜봐보니 이건 서민참여정부가 아니고 서민잡는정부였대니께요.’

    귀신이 원통한 지 고개를 푹 숙였다. 대통령은 얼굴이 따끔따끔했다.

    ‘지는요. 고향서 조꼬만 자영업을 했어라. 주택수리업인디요. 아니 참말로 살다살다 이런 불황은 첨 인거라. 그 머시냐. IMF인지 머시깽인지도 이만큼 징허지는 않았당께요. 워째 기냥 사람덜이 지갑을 바늘로 꿰매놓은 양 돈을 한 푼도 안 써부니 이런 놈은 워째 주댕이에 풀 칠을 혈 수가 없는 거라.’

    귀신은 이제는 울먹이기 시작했다.

    ‘사정은 이란디, 예전에 진 빚도 목을 죄고, 요로코롬 고생을 하고 있는디 아니 이 놈의 여편네가 바람이 났어라. 나아아아가 돈도 지대로 못 벌고 하니 워떤 놈하고 바람이 난 거라. 이걸 알고 나니 이 놈의 눈깔이 확 뒤집어지더라고. 그랴서 내가 이 노무 연놈덜을 한 칼에 꿰뿐다고 생각을 혀고 식칼을 거머쥐고 냅다 달려 간 거라. 그란디 모텔에서 이 놈의 여편네허고 그 썩을 넘이 나오는디 눈깔이 팍 디비져가지고 그 칼을 냅다 쥐고 찌르려고 허다 그만 땅바닥에 엎어진 것이 아니겄소! 그라니 이 놈의 여편네가 동네 떠나가라고 소리를 쳐대고…그 내 마누라 따 먹은 눔은 나헌티 달려와 내가 쥔 칼을 뺏으려고 혀고, 아니 마누라 따 먹은 눔이 냅다 튀는 것도 아이고, 내헌티 와서, 이 내가 쥐고 있는 칼을 뺏어 불려고 혀? 칼 뺏으면 워쩌려고? 내 배때기라도 찌르려고? 그려서 이 놈의 연놈들 지랄허는 꼴 못 본다고 내가 냅다 내 가슴을 찔러 불었어라. 그란디 설마 나도 죽을 줄은 몰랐당께! 그란디 워쩌다 잘못 찔러 가지고 심장을 파아아악 쑤셔 뿐거요. 그랴서 이렇게 억울하게 죽었소. 이 보시오. 대통령님. 내 여편네 돌려주시오. 돈 없어서 내 여편네 바람났당께. 외식도 못허고, 새 옷도 못 사주고 혀서 내 여편네 바람났당께. 내 목숨 살려주시오. 대통령님!’

    귀신이 엉엉 울면서 말을 못하자 사회자와 다른 귀신 몇몇이 나서서 그 귀신을 단상 밑으로 끌어 내렸다. 대통령은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자, 다음 귀신 나오세요.’

    ‘지요. 지가 한 말씀 드리겠심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