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2일 데일리서프는 고은광순 칼럼 ‘지구가 멸망한다면 미국 때문일 것이다’를 게재했다. 이 칼럼에 답하기에 앞서 고은씨의 칼럼 내용을 좀 살펴보도록 하겠다.

    고은씨는 이 칼럼에서 전쟁이 지구멸망을 가져 올 가장 유력한 사안이라고 주장하고 미국의 국방비 증액과 군수업체 번창을 지적하고 있다. 간단히 말하면 미 군수산업의 발전과 재고품 처리, 고용안정, 미국 보수층의 이권을 위해 계속 전쟁을 벌인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군수업체들이 전직 고위 관료들을 고용해 전쟁을 일으키라고 계속 부시 행정부에 요구한다는 말도 있다.

    한나라당 정부 들어서면 MD참여?

    재미있는 것은 고은씨가 그녀의 칼럼에 파란 글씨로 강조해 둔 부분이다. 럼즈펠드가 MD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사실을 소개하며 ‘한국에서 정권교체가 일어나고 새로운 정권이 북한에 보다 적대적일 경우 MD에 열성적으로 참여할 것’이라고 미국의 전략국제문제연구소가 전망했다는 내용이다.

    고은씨의 속내는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MD에 참여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미 군수산업체에 엄청난 돈을 집어줄 것이란 예측을 슬쩍 제기하고 있는 거다. 그러니까 미국이 싫으면 한나라당 후보를 선택하지 말란 말로 보인다.

    고은씨는 미국이 인도나 파키스탄, 이스라엘의 핵개발과 미사일 개발에 대해서는 비판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인도-파키스탄-이스라엘은 핵확산금지조약에도 가입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한편 고은씨는 군수기업들에게서 정치자금을 얻어쓰는 미국 정치인들이 증오와 분노를 부추겨 전쟁을 계속 일으킬 것이라고 강조하고 미국 군수산업체에게 돈을 집어주기 위해 동족의 가슴에 총알을 날릴 수 없다며 칼럼을 마치고 있다.

    고은광순 식 논리의 허와 실

    미 군수회사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전쟁을 일으키려 시도한다는 식의 논리는 지난 수십 년간 반미주의자들이 읊어 온 논리다. 지금까지 우리 보수우익들은 이런 논리에 대해 무조건 ‘반미는 안된다’고 으름장을 놓거나 세상 다 그런 것이니 참으라고 말해왔다.

    그런데 인간의 심리란 것이 하지 말란 일은 더 하고 싶듯 기성세대들이 꺼려하는 고은광순 식 논리는 어느새 한국 사회 전체에 널리 퍼지고 말았다. 미국에 대한 불만심리는 한국 보수사회 전체에 대한 혐오감을 낳았고 한국 보수사회를 몽땅 친미사대주의 세력으로 규정하는 정치세력들이 한국 사회의 문화적 주도권을 장악하게 하는 하나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여기서 지만원 씨의 96년작 저서 ‘통일의 지름길은 영구분단이다’에 나온 내용을 같이 생각해보자. 지씨의 저서 일부 내용을 소개한다.

    ‘15개 사단이 10개 사단으로 축소되고 28개 비행단이 20개로 축소되었다. 세계적인 군축 추세 때문에 이제는 새로운 무기를 개발하지 못하고 기존 장비의 성능개량에만 의존하고 있다. 이로 인해 미국의 방위산업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지난 3년 동안 매일 3천 명의 방위산업 종사자들이 해고됐다.’

    그렇다. 미국 사회에서는 냉전이 끝난 이후 엄청난 숫자의 군수산업 종사자들이 직장을 잃었다. 당연히 많은 군수기업들도 도산하거나 다른 기업들과 통폐합되었다. 고은광순 식 논리가 설득력을 얻으려면 이렇게 사라진 군수기업들이 또 다른 전쟁을 계속 만들어 계속 생존했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고 미국 사회 전체도 그것을 원치 않았다.

    물론 고은씨는 클린턴 행정부 때의 유고공습이나 부시 행정부 시대의 아프간 전쟁, 이라크 전쟁을 예로 들 것이다. 그렇게 망해가는 군수산업체 종사자들이 아프칸 전쟁이나 이라크 전쟁을 선동하고 있다고 말이다.

    군수 산업과 일반 산업의 차이는?

    사실 고은씨의 논리가 전혀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오버’에 있다. 너무 지나친 주장이란 이야기다. 고은씨 식 논리대로 하면 이렇다.

    ① 초-중-고교에서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열심히 공부하라고 한다
    → 이는 곧 학습참고서 등 사교육 시장을 더 활성화하기 위한 음모다

    ② 한의원에서 환자에게 한의사가 비싼 약과 치료를 처방한다
    → 이는 곧 한의사가 돈 벌어먹기 위해 저지르는 음모다

    ③ 어느 청년이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아가씨에게 선물을 사줬다
    → 이는 곧 청년이 아가씨를 유혹해서 음흉한 짓을 하려는 음모다

    군수사업체들도 벌어먹고 살기 위해서 로비를 한다. 그것이야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전쟁이 없다고 해서 무조건 군수사업체들이 모두 망하는 것은 아니다. 앞서 지씨의 책에서 언급한대로 냉전 이후 군수사업체들이 크게 위축되기는 했지만 그것은 냉전 시대에 워낙 군수사업체들의 규모가 컸기 때문이기도 했다.

    군수사업체들 입장에서는 전쟁이 줄어들면 몸집을 줄이고 민수사업으로 전환을 모색하면 될 일이다. 이미 러시아의 경우 군수사업체나 군수사업체에 납품하던 회사들이 활발하게 민수산업으로 전환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또한 군수산업과 민수산업의 경계도 애매모호하다.

    당장 한국산 K1탱크는 미 크라이슬러와 군수업체인 제너럴다이내믹스가 공동 설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현대의 군수물자에는 반도체와 같은 첨단 전자부품들이 많이 쓰이는데 이런 첨단 전자부품들은 한국산도 적지 않다. 한때 한국산 군복이 세계 1등이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고은씨는 미 보수파와 군수기업들을 비난하며 그들의 주머니를 채워줘서는 안된다고 말하지만 역설적으로 우리들도 이미 미 군수기업들과 ‘한 패’인 셈이다.

    전쟁이 그렇게 쉽게 할 수 있는 일인가

    마치 고은씨는 미 군수업체의 로비에 따라 잦은 전쟁이 벌어지는 것처럼 쓰고 있지만 전쟁은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일단 전쟁이 한번 벌어지면 엄청난 인적 피해와 물적 피해가 생긴다. 그래서 미국인들도 가급적이면 전쟁이 없기를 바란다. 그런데 고은광순 식 논리는 이런 식이다.

    미 군수기업이 전쟁을 선동한다 → 군수기업으로부터 돈 받은 정치인들이 전쟁을 선동한다 → 미국인들에 그것에 동조한다 → 전쟁이 벌어지고 군수업체들은 돈 벌고 정치인들은 그들에게 또 돈을 받는다

    하지만 실제 전쟁은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

    세계 각국은 미국과 이해관계가 다를 수 있다 → 그래서 원래 미국의 적들이 존재하고 있다 → 이들과 미국 간 마찰이 발생한다 → 미국은 대화로 해결이 안되면 전쟁의 명분, 합당한 전쟁 이유를 찾는다 → 미국 사회에서 적들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어 반전 여론을 전쟁 여론이 압도해 간다 → 전쟁이 벌어지고 군수업체들은 새로운 산업에 재투자한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뒤집어 생각하면 세계는 미국의 힘 때문에 전쟁을 많이 벌이지 못하고 있다. 만일 미국과 같은 거대강국이 없었다고 생각해보자. 전세계 국가들은 저마다 이해관계가 다르다. 당연히 수시로 전쟁이 벌어질 것이다. 지금 미국이 벌였던 이라크 전쟁이나 아프간 전쟁, 월남전, 그레나다 침공, 리비아 공습 등의 전쟁을 모두 합친 것보다 적어도 100배 이상 세계에서 전쟁이 있었을 것이다. 전세계가 너도 나도 핵을 보유해 진작에 지구가 망했을 수도 있다.

    당장 우리 사회를 보라.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폭행사건,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이것은 국가와 국가 간 관계도 그러하다. 전세계에 손을 뻗치는 미국과 같은 거대강국의 존재 때문에 제대로 전쟁이 일어나지 못하거나 전쟁이 일어나도 무한정 전쟁이 지속되지 않고 종결되는 것이다. 이는 물론 미국이 선량해서라기 보다는 미국 자체의 이익과 세계 여론의 압박에 따라 하는 행동이긴 하다.

    전쟁을 막는 군수업체

    여기서 참 희한한 논리가 등장하는데 역설적으로 미 군수업체들이 전쟁을 막는다는 논리다. 미 군수업체들은 전세계 국가에 엄청난 무기를 팔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그런지 공교롭게도 선진산업국가들은 어지간해서는 서로 전쟁을 벌이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세계 현대사를 돌이켜보면 선진산업국가들은 별로 전쟁을 벌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기껏 예외를 생각해봐야 영국과 아르헨티나 간 포클랜드 전쟁 정도가 고작이다. 이것도 엄밀히 말하면 아르헨티나는 산업국가라기 보다는 농업국가이므로 아예 예외로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

    어쨌든 현대무기의 파괴력이 커지고 특히 주요국가들이 미국산 강력무기로 무장하게 되니 역설적으로 전쟁이 벌어지지 않고 있다. 서로가 피해가 크기 때문에 전쟁을 자제하는 것이다. 어이없는 일이긴 하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군수업체들은 전쟁이 안 일어나도 평상시에 돈을 벌어들인다. 각국이 어차피 강력한 군사력을 유지하려 들기 때문이다. 각종 첨단 군사무기들의 가격이 높은 것은 군수업체들이 전쟁을 마음대로 일으켜 대목장사를 할 수 없으므로 평상시에 생존하기 위해 높은 가격을 부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점을 냉정히 생각해 보면 고은광순 식 논리는 너무 지나친 생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역설적으로 생각해 보면 한국 역시 엄청난 군수산업 국가이다. 전세계 첨단 군수품에 한국산 반도체가 다 들어가고 있다. 한국이 만들어 낸 T-50 초음속 훈련기는 MBC 방송국이 나서서 소개할 정도다. 한국에는 그 외에도 많은 방위산업체(군수산업체)들이 존재하며 이들은 막대한 수출고를 올리며 한국 경제에 기여하고 있다.

    고은광순 식 논리대로 하면 한국은 방위산업 투자를 중단하거나 크게 줄여야 한다. 고은씨의 주장대로 동족과 다른 인류의 가슴에 총알을 날리기 위해 사업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논리가 현실성없다는 사실은 누구나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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