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오피니언면 '박두식 칼럼'란에 이 신문 박두식 정당팀장이 17일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올해 개최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나타난 공통된 현상 하나가 ‘소장파의 몰락’이다. 열린우리당은 2월 18일, 한나라당은 7월 11일 전당대회를 통해 똑같이 5명의 지도부를 선출했다. 열린우리당이 60대 1명, 50대 3명, 40대 1명이었고, 한나라당은 60대 3명, 50대 1명, 40대 1명이었다. 두 당 모두 지도부 5명에 40대가 1명씩 포함돼 있는 만큼, 산술적으로는 20%를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 당선된 국회의원 중 40대 이하 연령층의 비율(299명 중 129명, 43.1%)에는 크게 못 미치지만, 전당대회가 당 지도부를 뽑는 내부 선거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리 나쁜 성적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그런데도 소장파의 몰락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우선 지도부에 입성한 40대들을 보자. 40대로 여당 지도부 입성에 성공했던 김두관 전 장관은 노무현 대통령의 직계이고, 한나라당 전여옥 의원은 박근혜 전 대표의 최측근이다. 최고 권력자의 직계 40대들이 당 지도부 입성에 성공한 반면, 40대 기수 내지는 ‘당의 변화와 체질 개선’을 외쳐온 소장파 후보들은 줄줄이 떨어졌다. 열린우리당에선 김부겸 김영춘 임종석 등 40대 재선 의원들이 고배를 들었고, 한나라당의 경우엔 40대 중견·소장파의 단일 후보로 밀었던 권영세 의원이 낙선했다.

    이런 현상은 2004년 초에 실시된 두 당의 전당대회와 뚜렷이 대비된다. 2004년 1월과 3월 전당대회에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각각 정동영 당 의장과 박근혜 당 대표를 선출했다. 당시 정 의장은 51세였고, 박 대표는 52세였다. 언론에서는 두 사람의 등장을, 50년대에 태어나 박정희 대통령 통치 후반기인 70년대에 대학을 다닌 새로운 정치지도자 세대의 등장이라고 했다. 두 사람 등장 이전까지만 해도, 여야 리더십은 60대 후반이었다. 정치권에 본격적인 세대교체가 이뤄지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정동영·박근혜 세대’의 뒤를 이어 이들과 경쟁·협력하는 다음 세대가 곧 등장할 것이라는 예상도 뒤따랐다. 그러나 2년이 지난 지금의 상황은 정반대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이번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소장파 후보를 떨어뜨리기 위해 큰손들이 개입했다는 식의 ‘작전설’이 나도는 것에서 보듯, 내부 견제도 심했다. 소장파들은 “젊은 정치지도자가 나오기에는 우리 정치 현실이 너무 열악하다”고 한다. 어느 정도 이해되는 측면도 있지만, 이들의 실패 원인은 소장파 자신들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 소장파는 종종 “열린우리당 사람들 같다”는 평가를 받는다. 여당 소장파들은 아직도 ‘거리의 투사’ 시절의 미망에서 벗어나지 못한 경우가 많다. 또 ‘대의보다는 자기 이익만 좇는다’는 식의 인상을 주면서 소장파에 대한 정치권의 반감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자신이 속한 정당에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는 데다, 정체성의 혼란까지 드러내고 있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유행을 좇는 데는 능해도 40대에 걸맞은 비전과 패기, 경륜을 보이지 못하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 흔히 ‘386 정권’으로 불리는 노무현 정부의 성적표가 워낙 신통치 않아 40대 정치인들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현재 내년 대선의 유력 후보로 꼽히는 인물 대부분이 60대다. 세대 역류(逆流)라는 말까지 나온다. 이렇게 흘러간다면 지금 정치권의 40대들에게 특별한 기대를 갖는 것 자체가 우스워지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