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3일자 오피니언면에 강혜련 이화여대 경영학부 교수가 쓴 '과거로 달려가는 한나라당'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국민이 이회창 대세론을 뒤집고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을 선택한 것은 기득권에 대한 염증과 변화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다. 그러나 다음 대선을 불과 1년 반 앞두고 치러진 한나라당 전당대회의 대표경선 과정을 보면서 한나라당이 지난 10년을 허송세월한 것 같아 정말 씁쓸하다.
한나라당의 현 정권에 대한 비판 중 대표적인 것이 ‘시곗바늘을 과거로 되돌린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 경선 과정에서 정말 구태(舊態)와 과거로 되돌아간 쪽은 한나라당인 것으로 나타났으니 한나라당은 이제 더 이상 현 정권을 비판할 자격이 없다. 자기들이 원내대표로까지 뽑았던 사람을 이제 와서 ‘운동권 경력’을 들먹이며 사상 시비 색깔론을 편 것은 이번 경선이 미래를 위한 경쟁이 아닌 과거를 캐는 경쟁임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또한 이번 대표 경선은 영남권의 결집과 세력을 다시금 확인시켜 주었고, 이는 한나라당의 영원한 아킬레스건인 지역주의 정당의 이미지를 더욱 고착화했다. 향후 당을 이끌어갈 최고위원들의 면면에서도 어떤 변화나 미래 지향성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새로운 세대의 등장을 거부한 한나라당은 그 수구적 이미지를 벗는 데 실패하였다. 변화를 바라는 민심은 간데없고 상호 비방과 감정싸움으로 변질됨으로써 진정한 승자는 없고 국민에게 낡은 정치의 이미지만 남겨준 것이다.
전당대회란 모름지기 축제와 같은 것이고 국민들에게 잠재적 수권정당의 역량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이번 전당대회에서 두 패로 갈린 싸움판을 벌였고, 패배한 쪽은 화합의 미소 대신 투쟁을 선언했다.
이번 대표 경선이 한나라당의 미래와 직결된다는 것을 정말 공감했다면 ‘누가’ 대표가 되는가보다는 당의 화합과 시너지 창출을 위해 ‘어떻게’ 경선을 치를 것인가를 위해 모든 사람이 노력했어야 했다. 대표 경선의 절차적 공정성이 담보되었을 때는 패한 자도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국민이 한나라당에서 희망을 찾을 수 없는 것은 바로 투쟁의 대상을 당내에 설정하고 총부리를 자기네 사람들에게 겨누고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이번 전당대회뿐 아니라 5·31 지방선거의 압승 후 자만에 빠진 나머지 원칙도 없이 국민을 우롱하는 짓을 되풀이해 왔다. 지방선거 때 공천헌금 파문을 빚은 김덕룡 의원은 스스로 “당적, 의원직, 정치적 거취를 조속히 정리하겠다”고 말해 놓고 얼마 전에는 “대선 승리를 위해 할 일이 있다”면서 정치 재개 움직임을 강하게 시사했다.
또 맹형규 의원은 어떤가? 맹 전 의원은 서울시장 선거를 4개월 앞두고 당내 경선에서 배수진을 치기 위해 무책임하게 의원직을 내던졌다. 그로 인해 생긴 보궐선거에 한나라당은 그를 다시 공천했다. 이는 정말 국민 무서운 줄 모르는 파렴치한 행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맹 전 의원 역시 “당이 어려울 때 돕지 않을 수 없어서”라며 후보를 수락했다. 정말 웃기는 얘기들이다.
내년 대선을 위해 역할을 하고 당을 위기에서 구할 사람들이 이 정도의 수준이라면 국민이 더 이상 한나라당에 희망을 걸 필요가 없다.
현재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50%에 육박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현 정권이 펼치고 있는 일련의 정책에 대한 비판과 이로 인한 반사이익이므로 곧 그 거품은 꺼질 것이다. 변하지 못하는 유전자를 가진 한나라당에 대해 국민이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다면 실망하거나 분노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제 국민은 더욱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