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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8일자 오피니언면에 실린 정진홍 논설위원의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6일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는 최근 몇 년 사이 순직한 군인 유가족을 대상으로 총리가 주최한 오찬 행사가 있었다. 애초에 초청한 유가족은 모두 25명이었지만 정작 초청에 응한 사람은 21명뿐이었다. 총리 주최 오찬에 빠진 4명은 모두가 4년 전 월드컵 4강전이 있던 날 벌어졌던 서해교전 전사자들의 유가족이었다. 사실 지난 4년 동안 서해교전 전사자 추모 행사에 대통령이나 총리가 얼굴 한번 내비친 적이 없었는데 이제 와서 밥 먹으라고 부른다고 쪼르르 달려갈 마음이 유가족들에게 생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그날의 오찬 행사는 서해교전 전사자 유가족만을 위한 자리는 아니었기에 그들 없이도 외견상 무리 없이 행사는 끝났다. 하지만 이 일은 북한 미사일이 일곱 발이나 발사되었는데도 우리 사회가 넋 놓은 듯 무덤덤한 안보 불감증의 근원이 바로 나라를 지키다 목숨 잃은 서해교전 전사자들을 외면하고 홀대해 그 유가족들마저 섭섭하게 만든 사회적 분위기와 결코 무관하지 않음을 직감하게 했다. 사실 우리 사회의 안보 불감증은 북한 눈치 보며 서해교전 전사자들의 추모식에 단 한번도 얼굴을 내밀지 않은 이 나라 국군 통수권자의 몰염치에서 발원한 것이라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국군 통수권자의 몰염치에서 발원한 안보 불감 바이러스는 안보정책의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 의해 증폭되었다.
그들은 한국과 일본을 사거리에 둔 스커드 미사일과 노동 미사일 정도가 발사되는 것은 대통령 보고사항이 아니라며 미사일 다섯 발이 발사될 때까지 잠자코 있었다. 그러다가, 언제부터 그렇게 미국 생각을 각별히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미국을 사거리에 두었다는 대포동 미사일이 발사되고 나서야 절차에 맞춰 대통령의 새벽잠을 깨워 보고했으니 할 바 다했다고 강변하는 것이 우리의 국가 안보 라인과 시스템의 현주소다.
더구나 괜히 새벽부터 국민을 불안하게 할 것 같아서 정작 독립기념일 휴일에 미국이 서둘러 대책회의를 열고, 일본이 급히 새벽 대책회의를 한 것과는 달리 좀 여유 있게 느지막이 대책회의를 소집한 것이 뭐 그리 잘못됐느냐며 오히려 목청 돋우는 사람들이 외교안보 라인의 핵심 요직에 앉아 있다. 그들이 여기에 한술 더 떠서 국익의 관점에서 보면 미사일 사태가 그리 호들갑 떨 일도 아니라고 태연히 말하는 것을 보노라면 도대체 그 국익은 어느 나라의 국익을 말하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심지어 우리 비행기들이 늘 다니는 길목에 사전통보 한마디 없이 마구 미사일을 쏴댄 것에 대해서조차 아무 소리 못하고 침묵하는 정부와 대통령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더구나 거의 모든 사안에 대해 전방위적으로 토를 달고 댓글 올리던 대통령이 왜 정작 국가의 안위와 국민의 재산과 생명이 달린 중차대한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이렇다 할 언급 없이 침묵하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대통령의 침묵은 국군 최고 통수권자로서 국가의 안위와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할 책무가 있는 위치에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참으로 몰염치한 처신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서해교전 전사자들에 대한 대통령의 처신과 미사일 대응에 대한 대통령의 침묵은 서로 맥이 닿아 있다. 그리고 바로 이런 대통령 덕분에 안보 불감증을 유발하는 바이러스가 죽지 않고 우리 사회 도처에 퍼져 나간 것이다. 정작 미사일보다도 더 심각한 것은 바로 이 안보 불감증이다. 없는 위기를 조장하자는 것이 아니다. 서해교전에서부터 미사일 사태까지 엄연히 실존하는 위험과 위기를 똑바로 보자는 것이다. 누구보다도 국군 최고 통수권자인 대통령부터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