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6일자 오피니언면 '아침논단'란에 이두아 변호사가 쓴 '대기업 소유주 여러분들께'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가대하며 소개합니다.

    현대자동차의 대규모 비자금 조성 혐의로 인한 정몽구 회장의 구속과 재판, 삼성 그룹의 편법 상속과 관련한 이건희 회장의 소환 임박 등 기업가의 사회적 역할과 책무에 대해 관심이 쏠려있는 때입니다. 더구나 지난 새벽 북한의 미사일 발사로 우리 사회는 체제 논쟁에서 자유롭지 못한 분단국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한 사회의 경제엘리트는 그 사회를 부강하게 만드는 주인공으로서, 또 그 사회에 진정한 의미의 자유와 평등이 이룩되도록 만드는 데 가장 크게 공헌하는 집단으로서 참으로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관여하는 대기업들은 경제의 꽃입니다. 우리 사회의 경제 체제가 크게 바뀌지 않는 한, 거대기업들은 계속 번창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세계적 맥락에서 보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대기업의 진화형태인 다국적 기업은 지금 이 순간에도 그 규모와 사업 영역을 꾸준히 늘려가고 있습니다. 이런 까닭에, 세계시장이라는 경기장에 당당히 명함을 내밀 수 있는 우리 기업들이 건재한다는 사실이 다행스럽고 자랑스럽습니다. 문제는, 경제 전쟁의 선봉장 역할을 하고 있는 우리 대기업에 대한 일반의 인식이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사회는 겨우 한 세기 동안에 중세적 봉건 사회로부터 현대적 자본주의 사회로 바뀌었습니다.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고도성장·압축성장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무리가 없었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겠지요. 개개인의 자기 이익추구가 부패로 이어졌던 경우도 있고, 높은 지위에 오른 사회 지도층이 그에 걸맞은 윤리적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우리 체제에 적대적인 사람들은 우리 체제를 부패와 부정으로 가득 찬 사회라고 목소리를 높이며, 아예 경제 구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기업을 이끄는 분들께 보다 윤리적으로 행동하시라고 권해드립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따지고 보면, 기업인들의 궁극적 이익을 보장해 주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의 지배적 경제 조직인 대기업은, 경제 체제가 크게 바뀌면 맨 먼저 그리고 가장 크게 피해를 볼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대기업은 우리 경제 체제가 크게 바뀌지 않도록 노력해야 마땅합니다. 경제학자들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추구하는 방법으로 시장의 역할을 늘리되 그 단점들을 정부의 적절한 개입으로 보완한다는 자유주의적 방책이 최선임을 역설합니다. 안타깝게도, 우리 대기업들은 그런 방향으로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대기업은 자신의 유기적 일부인 종업원들과 협력기업을, 그리고 자신의 궁극적 존재 이유인 소비자들을 망각하고 경시하는 행동을 합니다.

    ‘정경 유착’, ‘병역 기피’, ‘원정 출산’, 또는 ‘상속세 탈세’와 같은 말들이 당신들과 연관되어 거론되는 한, 우리 체제는 그것을 반대하고 허물려는 사람들의 위협을 효과적으로 막아낼 수 없습니다. 전세계적으로 노동가치설과 그것에 바탕을 둔 마르크스주의 경제 이론은 논파되었지만, 재산에 대한 권리는 그것의 형성에 공헌한 사람들에게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회주의의 근본적 가정은 지금도 자본주의의 정의로움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정의는 인간의 가치체계에서 가장 근본적 요소로서 우리 사회의 근본 원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본주의에 적대적인 세력이 정의를 내세워 자본주의를 비판할 때, 명분이 아니라 실리만을 내세우는 것은 ‘도덕적 고지’에서 스스로 물러나는 일이며, 그렇게 ‘도덕적 고지’를 비판자들에게 내어주고선, 결코 자본주의를 제대로 변호할 수 없습니다.

    “상업은 문명의 벽돌을 쌓는 일이다. 그리고 우리 경제학자들은 문명의 가능성을 연구한다.” 케인스의 얘기입니다. 기업가들은 사회의 벽돌을 쌓는 사람들입니다. 1조원, 8000억원이라는 막대한 기부금은 그래서 사회의 벽돌을 쌓는 일 혹은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을 위해 쓰여야 합니다. 자본주의에 적대적인 세력은 어떤 경우에도 대기업에 고마운 마음을 품지 않습니다.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헌법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만이 우리 사회와 우리 체제에 애정을 가지고 있을 따름입니다. 나아가 당신들이 기업가로서 ‘떠안은 위대함’이 아니라 ‘이룬 위대함’을 이루며 건승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