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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2일 사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미국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 19일 “부시 대통령과 국무장관, 국가안보보좌관이 10여 개국 정상과 북한 미사일문제를 협의했다”고 밝혔다. 미국이 북한 미사일문제에 대해 가장 먼저, 가장 긴밀하게 협조해야 할 나라는 한국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처음 개발했을 때의 표적이 한국이고 미국과 북한의 핵 또는 미사일 분쟁이 물리적 충돌로 번지게 될 때 그 운동장이 될 수밖에 없는 것도 한국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의 전개 방향에 따라 국가와 4700만 국민, 여기에 더해 2400만 북한 동포의 운명이 달라질 수도 있는 당사자 중의 당사자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한국 대통령과는 통화하지 않았다. 라이스 국무장관과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의 통화가 대통령 간의 대화를 대신했다. 부시 대통령은 항상 전화를 열어놓고 있는 고이즈미 일본 총리와는 물론이고 북한 핵 해결의 지렛대로 이용해온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과도 전화 대화를 나눴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대한민국과 대한민국 국민, 그리고 북한 동포의 운명이 걸린 문제를 다루는 대화 테이블에서 한국은 한쪽 구석으로 밀려나 있는 신세라는 이야기가 된다.
한·미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통화한 것은 6자회담 공동성명이 나온 이튿날이었던 작년 9월 20일이었다. 이후 9개월 동안 한 번도 서로 간에 전화가 없었다.
생각해 보면 이상할 것도 없다. 미국은 ‘북한 미사일’ 문제를 협의하겠다는데 한국은 그것을 ‘미사일’이 아니라 ‘인공위성’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설혹 전화가 열렸다 해도 빈말만 오가고 끝났을 것이다. 그뿐인가. 미국은 “북한의 달러 위조 문제에 대해 타협할 수 없다”고 하는데 한국은 “미국 정부가 북한에 압박을 가하고 붕괴를 바라는 듯한 방법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려 하면 한·미 간에 마찰이 생길 것”이라고 예고하기까지 했다. 미국 대통령은 한국에 있는 탈북자 가족을 미국으로 불러 만나고선 “대통령 재임 중 가장 감동적인 만남”이라는데 한국에 있는 탈북자 8000여명 중 어느 누구도 청와대로 들어오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 이렇듯 한국과 미국이 다른 세계, 다른 차원에서 살아온 것도 벌써 한참이 됐다.
지금 한국은 고립무원의 처지로 내몰렸다. 일본은 한국이 미국에서 멀어지는 속도보다 더 빠른 속도로 미국에 다가섰다. 이 정부가 한때 애타는 눈길을 보내곤 했던 중국도 한국 쪽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다. 1945년 해방 이후,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대한민국이 이렇게 철저하게 세계로부터 고립됐던 전례가 없다.
이 정부라고 뒷짐만 지고 있었겠는가. 북한 가는 길을 뚫어 ‘우리 민족끼리’ 공조로 핵도, 미사일도, 달러 위조도 풀어보겠다고 자기들 나름의 요량은 있었던 모양이다. 대통령이 “(한국이나 한국 대통령은) 미국 등 주변국가와의 관계 때문에 선뜻 할 수 없는 일이 있는데 김대중 전 대통령이 (방북해서) 길을 열어주면 나도 슬그머니 할 수 있겠다”고 말했던 게 바로 그 뜻이다. 그러나 북한은 대통령이 나서 “아무 조건 없이 대북지원을 하겠다”며 선금까지 보여주며 길을 열어 달라고 부탁했던 김 전 대통령의 방북 요청을 듣는 둥 마는 둥 한쪽 귀로 듣고 다른 쪽 귀로 흘려 버렸다. 열차 운행을 하겠다더니 다음날 뒤엎고 갖은 망신을 주더니 결국은 김 전 대통령측이 스스로 방북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자주와 동맹을 동시에 한다는 ‘자주동맹외교’, 미국과 공조를 굳건히 다지면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자 역할도 하겠다는 ‘동북아 균형자론’, 한국이 주도도 하면서 협력도 한다는 ‘협력적 자주국방’에 이르기까지 이 정부 사람들이 만들어낸 허망한 구호들이 결국 3년 만에 이 나라를 세계의 외딴 섬으로 만들고 만 것이다. 이 정권의 높으신 분들은 그런 허망한 구호로 대한민국을 이런 고립무원의 나라로 만들기 위해 국민들에게 수백조원의 세금을 내놓아 자주국방을 뒷받침하라고 해 왔다는 말이다.
세계를 바로 읽어야 한다. 자기가 읽고 싶은 대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세계를 읽으라는 말이다. 한 나라의 지도자가 세계를 있는 그대로 읽지 못하고 자기가 읽고 싶은 대로만 읽으려 하면 그 나라와 국민은 존망의 위기로 내몰리게 된다. 우리 선조와 선배들이 눈물로 되찾고 피로 지키고 땀으로 세웠던 대한민국이 지금 백척간두에 서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