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9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박두식 정당팀장이 쓴 <여당 ‘108 번뇌’들의 변신>입니다. 네티즌이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한때 열린우리당을 지칭했던 별명 중 하나가 ‘108 번뇌 당(黨)’이었다. 2004년 4월의 17대 총선에서 당선된 열린우리당 의원 152명 중 108명이 초선이고, 이들을 통제할 방법이 없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들의 출생 과정은, 미국의 ‘워터게이트 베이비(baby)’들과 흡사하다. 미국에서 현역 의원의 재선율은 평균 95%를 넘는다. 그러나 1974년 선거는 예외였다. 미국판 권력 오·남용이라고 할 수 있는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공화당 닉슨 대통령이 사임한 지 석 달 뒤에 실시된 선거에서 민주당의 정치신인 75명이 당선됐다. 전체 하원의원의 17%를 넘었다.

    우리 17대 총선에서는 현역 의원의 70%가량이 낙선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 가결로부터 한 달 뒤에 치러진 선거에서 열린우리당 초선 의원 108명이 국회에 입성한 것이다. 총 여당 의원의 71%나 되는 규모다. 이들은 탄핵 역풍에 힘입어 선거에서 큰 어려움을 겪지 않고 국회의원이 됐다. 이른바 ‘탄핵 베이비’들인 것이다.

    워터게이트 베이비들이 반전(反戰) 저항 세대 출신답게 기존 의회의 관행과 전통에 거세게 도전한 것처럼 열린우리당 초선들도 ‘개혁 전사’임을 자처했다. 출발부터 요란했다. 한 초선의원은 당선 직후 “(선배들이)군기 잡겠다면 물어뜯겠다”고 했다. 당 지도부는 이들을 어쩌지 못해 쩔쩔맸고, 당 중진들은 아예 기피했다. 초선들이 당을 쥐락펴락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래서 나온 말이 ‘108 번뇌’였다.

    이들 사이에서 한번 불 붙은, ‘개혁 경쟁’은 브레이크가 없었다. 모든 것을 ‘개혁 대 반(反) 개혁’으로 몰아갔다. 여기에 맞서거나 비판이라도 하면 치도곤을 당하기 십상이었다. 17대 첫해인 2004년 가을, 국가보안법 폐지와 사학법 등 자칭 ‘개혁 입법’을 주도했던 것도 초선들이었다. 국보법 문제를 둘러싼 당내 갈등 끝에 2005년 1월 초 당 의장에서 물러나게 된 이부영 전 의원은 퇴임사에서 이들의 행태를 ‘과격 상업주의’라고 불렀다. ‘튀는 초선’들이야말로 지금 열린우리당에 덧씌워진 ‘말과 행동이 신중치 못하다’ ‘싸가지 없다’ ‘개혁 탈레반’ 같은 이미지를 만든 1등 공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랬던 열린우리당 초선의원들이 요즘 일대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실용주의를 내걸거나, ‘내탓이오’ 하는 반성(反省)을 주도하고 있다. 또 대통령과 당 지도부에 대한 불만과 비판도 쏟아내고 있다. 5·31 지방선거 참패에 따른 방향 전환인 셈이다. 변신의 가장 큰 이유는 이대로 가면 자신들의 정치 경력이 단명으로 끝날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은 지난 2년 동안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공개적인 반성의 자리를 가져왔다. 이미 2년 전인 2004년 7월 의원 워크숍 때 여당의 ‘무능, 오만’을 탓하는 말들이 나왔었다. 청와대에 대한 비판도 등장했었다. 지지율이 급락하거나, 선거에서 지고 나면 열린우리당에선 녹음기를 틀기라도 한 듯 똑같은 얘기가 반복돼 온 것이다. 그리곤 반성 시즌이 끝나면 다시 ‘요란한 초선’으로 원상 복귀하곤 했다. ‘혹시’하는 기대를 갖는 것조차 망설이게 하는 이유다.

    국회는 19일 본회의에서 17대 후반기를 이끌 의장단을 선출한다. 탄핵 베이비들의 임기도 반환점을 돌고 있는 것이다. 이번마저 여당 초선의원들의 반성이 ‘악어의 눈물’ 연기였던 것으로 끝난다면, 2004년 총선은 유권자들이 사상 최악의 선택을 했던 것으로 기록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