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립학교법을 놓고 여야가 날카롭게 대립하던 지난 4월 있었던 노무현 대통령과 여야 원내대표의 조찬회동 때 나눴던 이야기가 2개월이나 지난 시점에서 다시 거론되고 있다. 조찬회동 뒷이야기가 나온 진원지가 한나라당 이재오 원내대표측이라는 점이 ‘포스트 박근혜’를 뽑는 7월 전당대회를 앞둔 상황과 맞물려 주목된다.

    동아일보는 17일 이 원내대표 측 이야기를 토대로 지난 4월 조찬회동 당시 노 대통령이 “야당의 사학법 개정 요구를 들어주면 오히려 (5·31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열린당 김한길 원내대표가 “사학법 개정에 대해 당내 반대가 많다”고 부정적이 입장을 드러냈다고 보도했다. 또 이 원내대표는 노 대통령과 김 원내대표 사이의 분위기가 심각해져 잠시 자리를 피했다가 돌아오기도 했으며 김 원내대표가 끝까지 “(사학법 개정 요구를 들어주면) 선거를 못 치른다”고 버텼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 원내대표측이 4월 조찬회동 이야기를 다시 언론에 ‘흘린’ 것을 두고 6월 임시국회에서 사학법 재개정에 실패했을 경우를 대비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학법 재개정 실패는 ‘포스트 박근혜’를 노리는 이 원내대표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이 원내대표가 ‘사학법 재개정을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을 부각시키기 위해 노 대통령으로부터 ‘사학법 양보 발언’을 이끌어 낸 4월 조찬회동을 재차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원내대표가 지난 13일 기자간담회에서 사학법 재개정 실패에 대한 책임론을 일축한 것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그는 “나는 노 대통령과 협상을 통해 여당이 사학법을 양보하라는 말을 끌어냈다. 대통령이 받아들였으면 야당으로서는 최대의 성공을 거둔 것 아니냐”며 “노 대통령이 하라고 했는데 여당이 안한 것은 야당 원내대표의 책임 선을 벗어난 것”이라고 주장했었다. 그는 “노 대통령이 ‘이재오 대표 말이 맞다. 사학법을 재개정하라’고 했으면 나는 내 임무를 다한 것이고 여당이 사학법을 재개정하라고 했는데 대통령이 거부했으면 나는 실패한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 원내대표가 당내 원내대표 경선에서 김무성 의원을 누르고 당선될 수 있었던 것은 ‘사학법 덕’이 크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한나라당의 긴 ‘장외투쟁’ 때문에 의원들의 피로감이 쌓여있는 상황에서 등원해 사학법을 재개정하겠다는 이 원내대표의 ‘전략’이 통한 것이다. 이 원내대표는 이후 열린당 김 원내대표와의 ‘산상회담’을 통해 사학법 재개정을 논의하겠다는 합의에 이르렀지만 지난 4월 임시국회에서 사학법 재개정은 이뤄지지 않았다. 당시 이 원내대표는 사학법 재개정 실패 책임론에 대해 “실패했다고 말은 하겠지만 책임론 흐름으로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라며 “사학법 재개정안 처리는 6월 임시국회로 넘기겠다”고 피해갔다.

    그러나 이 원내대표가 사학법 재개정을 약속한 6월 임시국회가 다가왔지만 상황은 녹록치 않다. 사학법에 대한 열린당과 한나라당의 입장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6월 임시국회에서 사학법이 재개정되기는 어렵다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다. 이 같은 상황은 7월 전당대회에서 당대표에 도전하는 이 원내대표에겐 ‘악재’일 수밖에 없다. 당장 전대 출마를 선언한 이규택 의원은 ‘사학법 재개정 실패’ 책임론을 거론하며 원내대표직 사퇴를 종용했다. 더욱이 ‘사학법 장외투쟁’을 이끌었던 박근혜 전 대표가 당 대표로서 주재한 마지막 회의에서까지 사학법 재개정의 중요성을 역설하며 그 의지를 드러낸 것도 이 원내대표에겐 부담이다.

    '포스트 박근혜'를 위해 자신의 약점으로 지적돼 온 ‘반(反)박근혜, 친(親)이명박’ 이미지를 희석시키려고 부단히 노력한 이 원내대표 앞에 ‘사학법 재개정’이라는 또다른 난관이 놓인 셈이다. ‘사학법’으로 원내대표에 오른 이 원내대표가 당권을 잡으러 가는 과정에서 ‘사학법’이라는 산을 어떻게 넘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