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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17일 사설 '불량 정책 팔다 퇴짜맞은 여당 의원의 하소연'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열린우리당 초선 의원들이 15일 토론회를 갖고 지방선거 참패 원인과 대책을 논의했다. 얘기가 무성했다고 한다. “정부의 개혁방향이 국민 생각과 달랐다” “친북·반미·언론법·사학법은 진보·개혁이 아니다” “시장 아줌마가 ‘너희는 두 번이나 집권하고도 맨날 IMF 핑계만 대느냐’고 하더라” “제발 대통령과 김병준씨 등이 함부로 말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한다” “국가를 경영할 능력이 없는데 또 집권하면 뭐하겠느냐.” 듣고 보니 시중에서 너나없이 주고받은 말을 그런대로 정확히 옮긴 듯하다.
정권이 하나의 회사라면 대통령은 CEO(경영책임자)이고 집권당 의원들은 정권이 생산한 정치와 정책이란 상품을 소비자인 국민에게 판매하는 현장책임자다. 소비자들은 지방선거 전부터 이미 ‘당신네 회사 제품은 품질 불량이다’는 신호를 계속해서 보냈었다. 제대로 된 회사라면 이런 시장의 반응은 CEO에게 정확하게 전달돼 제품의 불량률을 낮추기 위한 대대적인 내부 구조 개편이 뒤따랐을 것이다. 엉뚱한 아이디어로 소비자의 반감을 불러온 생산 파트 책임자를 교체하고, CEO의 비위만 맞추거나 혐오감을 유발하는 광고와 발언으로 회사 이미지에 먹칠을 한 책임자를 찾아내 문책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정권과 집권당은 이런 시장의 경고를 완전히 무시했다. 회사 안에서 상하간에 정보 교환조차 없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다 5·31 선거를 당해 회사가 도산한 것이다.
희한한 것은 이 회사의 CEO인 대통령의 태도다. 대통령은 지방선거 결과가 나오자 “나라의 수준이 나라의 미래를 결정한다”며 ‘낮은 국민수준 탓’으로 돌려버렸다. 회사 사장이 자기 회사 제품이 팔리지 않자 ‘질 낮은 소비자’ 탓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청와대 참모와 장관들도 “지금 세금정책을 손대면 망한다”며 시장에서 퇴짜 맞은 불량 제품을 회수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시장의 반응보다 CEO의 얼굴빛만 살핀 것이다. 시장에서 이런 회사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가는 보나마나다.
대통령이야 CEO까지 해봤으니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임기를 마치겠다는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은 정권이 실패하면 다음 총선 후엔 실업자 신세가 될 수밖에 없다. 절박한 것이다. 절박하면 진실해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오랜만에 진실한 소리를 내는 현장책임자들의 하소연을 CEO가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