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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3월 23일 쓰러져 가는 한나라당의 구원투수로 등장한 박근혜 대표가 자신을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 반열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며 2년 3개월간의 당 대표직에 마침표를 찍었다.
16일 박 대표는 당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당권-대권 분리라는 당헌·당규로 인해 당초 임기보다 한달여 빨리 대표직에서 물러나는 것인 만큼 박 대표의 대표직 사임은 대권선언으로 볼 수 있다.
27개월이란 긴 시간동안 제1야당을 이끌어 온 박 대표는 탄핵역풍이라는 가장 어려운 상황 속에서 구원투수로 등장해 4·15총선에서 121석을 얻으며 개헌저지선을 확보했고 이어진 4번의 재·보궐선거와 5·31지방선거까지 압승을 일궈내며 당의 '대표선수'로 화려하게 마무리했다. 총선전 7%였던 당 지지율은 무려 50%까지 끌어올렸다.
1965년 박순천 여사가 통합야당인 민중당 당수로 선출된 이후 처음 주요 정당의 여성대표로 데뷔한 박 대표는 누구도 쉽게 넘볼 수 없는 '화려한 기록'을 만들었다. 무엇보다 '최초의 여성대통령'탄생 가능성을 만들어 놓은 점은 변혁이라 할 수 있다.
박 대표가 받은 성적표는 매우 화려하지만 확실한 대선주자가 되기 위해선 아직 풀어야 할 과제도 많이 남아있다는 게 일반적인 견해다. 실제 박 대표의 지난 27개월을 돌이켜 보면 그리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노무현-이회창과 차별화된 개혁적 이미지로 초고속 정치승진
취임 초 '상생의 정치'를 표방하며 대여 강경투쟁 노선과 선을 긋고 '차떼기 정당' '부패정당'이란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누구보다 '정치개혁'을 주장해 온 박 대표는 남경필 원희룡 의원 등 소장파와 손발을 맞추며 '개혁적 보수'라는 당의 노선을 선택했다.
이로인해 박 대표는 권위적인 이미지를 지녀온 이회창-최병렬 체제와, 권위주의는 탈피했지만 지도자로서 무게감이 떨어진다는 비판을 받아온 노무현 대통령과도 차별화된 이미지를 선보이며 대선주자 반열에 올라서는 초고속 '정치승진'을 했다.
박 대표를 '독재자의 딸'이라 비판하던 이재오 김문수 의원 등 당내 반(反)박근혜 그룹의 비판도 기존의 정치인과 차별화된 이미지와 높은 대중성과 국민적 지지를 받은 박 대표를 흔들기엔 역부족이었다.
여권의 박정희 공세에 강경보수로 급선회, 소장파와도 결별
그러나 04년 8월 정수장학회 의혹, 국가보안법 폐지, 과거사청산 등 박정희 전 대통령을 겨냥한 여권의 공세 이후 박 대표는 급격히 보수화되기 시작했다. 박 대표는 '국가정체성'카드를 꺼내들며 여권과의 전면전을 선포했고 이로인해 당내 개혁세력과 중도세력과의 마찰을 빚었다.
박 대표는 여권의 이념공세에 강경하게 맞섰고 국가보안법 폐지 주장엔 "노무현 정권이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훼손하고 근간을 무너뜨리고 있다"며 자신의 정치생명까지 걸고 막겠다는 입장을 나타내기도 했다. 결국 당내에선 차기대선주자로서 '박정희의 딸'이란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졌다.
결국 박 대표는 소장파와 결별하고 당내 강경보수성향 의원들과 가까워졌고 박 대표의 '리더십 논란'도 이때부터 시작됐다. 특히 박 대표는 영남보수파와 유승민 전 대표비서실장, 전여옥 대변인 등 몇몇 한정된 의원그룹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며 '스킨십 부족'이란 비판까지 받았고 당내 지지기반 확보에도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리더십 부재 스킨십 부족 지적 받으며 지지율 하락하자 중도로 노선 선회
박 대표는 '리더십 부재'라는 비판에 '민주적 리더십'이라 반박하고 '박정희의 딸'이란 지적에 "내가 누구의 딸이란 것을 잊어달라"고 맞섰지만 결국 꼬리를 내리고 정수장학회 이사장직을 사퇴하며 논란을 잠재웠다.
박 대표는 자신의 당내 지지기반이 흔들리고 당 지지율과 자신의 지지율마저 하락하자 다시 발걸음을 좌측으로 한 발짝 옮기며 중도로 변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당내 비판세력에 대한 충분한 설득없이 행정복합도시법 처리를 강행하며 다시 '리더십'에 상처를 입었고 당 대표로서의 프리미엄을 챙기지 못한 채 당내 상당한 지분을 청계천 복원으로 훌쩍 큰 이명박 서울시장에게 내주는 결과를 초래했다.
박 대표가 취임 이후 개혁-보수-중도 등으로 노선을 자주 바꾸고 한정된 몇몇 인물들에 대한 의존도가 커지자 당내에선 '박근혜식 정치' '박근혜식 리더십'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퍼졌고 이에 대한 극복이 박 대표의 최우선 과제로 지적됐다.
노 대통령과 영수회담 판정승으로 리더십 논란 잠재워
수첩공주 이미지 버리며 '콘텐츠 부족' 비판도 불식박 대표는 이 같은 난관을 지난해 9월 7일 대연정을 제안한 노무현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으로 극복했다. 박 대표는 당시 노 대통령과의 회담을 통해 야당 지도자로서 이미지 메이킹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고 '콘텐츠 부족'이란 비판도 불식시키는 성과를 거뒀다.
또 회담에서 일부 측근들이 적어준 수첩에만 의존한다는 지적을 받으며 '수첩공주'라는 비난을 받아온 박 대표는 당시 일체의 자료없이 회담에 임하고 민생문제에 대해선 오히려 구체적인 수치까지 제시하고 노 대통령을 코너로 몰아가는 등의 모습으로 그 같은 지적을 털어버렸다.
사학법 장외투쟁으로 연약한 여성 이미지 버리고 '박근혜 리더십' 제조
수동적이고 완곡했던 박 대표의 발언이 다소 선동적이고 적극적이며 전투적으로 변한 점도 '리더십 비판'을 불식시킨 이유로 꼽힌다. 박 대표의 이런 변화는 사학법 장외투쟁 때부터 시작됐다. 늘 절제되고 완곡한 표현으로 정부·여당을 비판하던 박 대표는 장외투쟁 이후 확연히 바뀌었다.
장외투쟁 당시 박 대표는 "잘못가고 있는 정권을 바로잡기 위해 다 같이 일어나자" "피땀으로 일군 나라를 노무현 정권의 음모로부터 지키자" 등의 발언으로 노 정권에 대한 공세수위를 높였고 2005년 12월 27일 대구집회에선 "노무현 정권이 하려는 일에 내가 방해된다면 나를 이 정권이 끝날 때까지 구속하라"는 극단적인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물론 장외투쟁에 대한 소장파와 중도그룹의 비판도 있었지만 장외투쟁을 통해 박 대표는 기존의 '연약한 이미지'와 여성으로서 가질 수 있는 한계를 극복했다는 평을 받았다.
4번의 재보선, 5·31선거 압승으로 이명박에 빼앗긴 당내 지분 되찾고 지지율 역전
DJ와 화애로 불모지 호남서 두자리수 지지율, 부패이미지도 불식박 대표가 비판세력의 끊임없는 공세를 견뎌내고 당내 입지를 굳힐 수 있었던 가장 큰 계기는 대표임기내 있었던 4번의 재보궐선거와 5·31지방선거 결과가 가장 크다고 볼 수 있다. '선거리더십'이란 새로운 용어까지 만들어낸 박 대표는 5·31 압승으로 일부 반박 의원들까지 흡수하는 결과를 이끌어냈고 청계천 복원으로 이 시장에게 빼앗겼던 대선후보선호도 지지율 역시 재탈환하며 유력한 차기 대선후보로 우뚝 섰다.
물론 선거 뿐 아니라 천막당사 이전과 시가 1000억원이 넘는 천안연수원을 반납하며 불법대선자금으로 씌워진 당의 부패이미지를 청산하고 비리에 연루된 자당 소속의 중진 의원들까지 과감히 출당조치하는 강단을 보여주며 '한나라당=부정부패정당'이란 이미지를 상당부분 불식시켰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박 대표는 또 한나라당의 불모지라 불리는 호남지역에 끊임없는 관심을 통해 호남의 한나라당 지지율을 두자리수까지 끌어올리는 등 호남의 반한나라당 감정을 일정부분 불식시킨 점에도 높은 점수를 받았다. 박 대표 스스로도 재임중 가장 자주 찾은 곳이 호남이라고 말할 정도로 호남에 대한 강한 애착을 나타냈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찾아 아버지를 대신해 사과한 점도 호남민심을 돌리는데 큰 역할을 했다.
대중성은 검증, 박근혜가 그리는 대한민국 모습 제시해야 국가지도자로 발돋움
화려하게 대표직을 마무리 한 박 대표는 이제 대선주자로서 더 험난한 검증과정을 거쳐야할 과제를 남겨두고 있다. 원희룡 의원은 뉴데일리와의 인터뷰를 통해 피습사건에 침착하게 대응한 점, 병상에서도 선거를 진두지휘하며 5·31지방선거 승리로 이끈 점과 국가지도자로서의 평가는 다르다고 주장했다. 또 이제 국민들에게 '박근혜가 그리고 있는 대한민국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그런 부분으로 실제 우리 국가의 현안들, 당이 나아가야 할 노선이 대체되는 것은 아니며 잘 정제되고 전형적인 국민을 걱정하는 박 대표의 행보와 노선엔 찬성을 하고 힘을 싣겠지만 과거 경직된 이념에 사로잡혀있다든지 실제 우리사회에 여러 갈등이나 문제에 대한 해법이나 내용에 충실하지 못한 것에 대해선 비판해야 한다"고 했다.
유력한 대권주자의 이미지는 갖췄지만 그 이미지에 국가운영에 대한 비전과 콘텐츠를 채워야 하는 큰 숙제가 남았다는 것이다. 또 '스킨십이 부족하다'고 지적받을 만큼 소속 의원들과의 관계 재정립도 필요하다. 당 대표로 있는 동안은 "계파를 두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냉혹한 당내경선을 통과하기 위해선 지지세력 확충이 시급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지적이다. 이임 후 "국회의원으로 해야할 일을 열심히 할 생각"이라고 밝힌 박 대표가 앞으로 어떤 모습을 국민앞에 선보이고 지금의 국민적 지지를 유지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