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金)의 전쟁이 시작됐다’

    지방선거 참패로 만신창이가 된 열린우리당을 떠안은 김근태 의장을 두고 하는 말이다. 지방선거 민심을 들어 당 위기 수습에 나선 김 의장이 그간의 참여정부 정책 기조에 제동을 거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자, 당내에서는 ‘김 의장의 전쟁이 시작됐다’고 수군거리고 있다. 전쟁 첫 상대는 노무현 대통령이라는 것.   

    상대가 상대인 만큼 김 의장의 의지도 ‘절박’(?)하다. 당장 머리부터 짧게 깎았다. 김 의장은 지난 2월 18일 전당대회 당권도전을 앞두고도 머리를 짧게 깎은 바 있었다. 당시 김 의장은 “절박해서 그렇다”고 했다. 이번에는 “여성들만 (결심할 때)머리를 자르는 게 아니라 남자도 자른다”고 했었다. 뭔가 결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유독 신중한 행보 탓에 ‘햄릿’이란 별명이 붙은 김 의장이 최종 목적지를 향해 드디어 꿈틀거리기 시작한 셈인데, 명분도 좋다. 위기 수습을 위해서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민심을 이번 기회에 정책에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여권 내 대권주자로 평가받으면서도 '만년 2인자'에 머물러왔던 김 의장이 이제는 ‘한판 세게 붙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 모양새다.

    당장 오는 21일로 예정됐던 노 대통령 국회 연설이 갑작스레 취소된 것을 놓고 당 안팎에서는 ‘김의 전쟁’ 전주곡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중단없는 지속적인 개혁’을 주장할 게 뻔한 노 대통령의 국회 연설을 또다시 듣고 있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 여당이 극구 말렸다는 후문이다. 김 의장은 지난 13일 이병완 대통령 비서실장의 예방을 받은 자리에서 노 대통령 국회 연설 일정을 언급하면서 “의원들도, 국민들도 관심이 많다. 청와대에서 보좌하시는 분들이 각별히 신경을 좀 써야 할 것 같다”고 말했었다. 민심과 동떨어진 참여정부의 개혁 정책이 선거 참패의 주요 원인이 됐다는 점을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는 의중을 비서실장에게 확실히 못박았다는 것이 당 안팎의 관측이다.

    당 안팎에서는 김 의장의 본격적인 전쟁이 이뤄질 시기로, 당의 정책 노선 수정 여부와 향후 당의 진로에 대한 논의가 대체로 마무리는 되는 7월 초 이후로 내다보고 있다. 이때쯤이면 9월 정기국회를 앞두고, 원성을 사고 있는 부동산·세제 정책 등 현 정책 기조에 대한 수정 여부를 놓고 당·청간 갈등이 전면에 등장하며 폭발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노 대통령과의 전선이 형성되면서 노 대통령의 탈당은 불가피하게 되고 이후 자연스럽게 정치권의 정계개편 논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열린당이 14일 비상대책위원회 지도부 워크숍에서 정계개편 논의시기를 정기국회 이후로 미루자고 합의한 것도 이런 관측에 무게가 실린 모습이다. 사실상 노 대통령과의 전쟁에 나선 김 의장의 입장에서는 정계개편 논의에 따른 변수 발생시 전력을 한 곳에 집중할 수 없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또 다른 당내 일각에서는 ‘김의 전쟁’은 둘 중 하나가 백기를 들어야만 승부가 갈리는 전쟁으로 보고 있는 분위기다. '휴전' 등과 같은 함께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승부가 갈리는 전쟁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두 사람간의 감정적 요소가 섞여 있다는 이유에서다. 당 안팎에서는 김 의장과 노 대통령과의 과거 관계를 언급하면서 ‘서로 간 껄끄럽게 여기는 관계’라는 말도 나온다.

    이들 두 사람은 지난 2002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때 서로 경쟁했던 사이인데다가, 대선 후엔 대선 경선 비용 공개 여부를 놓고서도 적잖은 신경전을 벌인바 있었다. 당시 김 의장의 대선 경선 비용 공개에, 노 대통령은 ‘김 의원이 웃음거리가 됐다’고 하자 김 의장은 ‘내 고백을 웃음거리라고 한 노 대통령이 웃음거리’라고 치받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었다. 또 김 의장은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재직하던 2004년에 국민연금·기금의 주식 시장 투입 여부를 놓고 공개적으로 마찰을 빚기도 했었다.

    그러나 또 다른 당내 시각은 김 의장의 행보가 노 대통령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당의 안정을 찾기 위한 고육책에 가깝다는 설명을 내놓고 있다. 당내 개혁파 성향의 한 관계자는 “김 의장은 현재 ▲당이 절대 분당되는 일은 없을 것 ▲향후 대선에서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주기 위한 당 안정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최근 일련의 과정을 놓고 ‘대통령과 각 세우기’ ‘우향우로 급선회’ 등으로 보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말했다. 당 안정작업을 이룬 뒤 본격적인 개혁작업에 나설 것이라는 공감대가 당내 개혁 진영 의원들 사이에 이미 형성돼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