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5일 사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대통령은 13일 국무회의에서 “소비자가 지배하는 정치, 소비자가 지배하는 시장을 만드는 것이 개혁의 진정한 방향이다. 소비자 주권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언론의 공정한 정보 제공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통령은 지금까지 ‘민심’에 대한 두 가지 태도를 그때그때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사용해 왔다. 하나는 국민의 지지를 받을 때 ‘민심이 천심’이라고 민심을 절대시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국민이 정권을 비판했을 때 “민심이 잘못되면 (이에) 거역하고 직언해야 한다” “민심을 추종하는 게 대통령이 할 일이 아니다”라고 민심을 뿌리치는 것이다.
대통령은 5·31 선거결과에 대해서도 ‘국민의 수준’ 운운하며 그것을 (한때의) ‘민심의 흐름’으로 치부했었다. 그러던 대통령이 갑자기 ‘소비자가 지배하는 정치, 소비자가 지배하는 시장이 개혁의 진정한 방향’이라고 들고 나왔으니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좋을지 어리둥절하다.
소비자가 주인인 ‘시장의 원리’는 간단하다. 소비자가 버린 상품은 시장에서 도태되도록 하는 것이다. 소비자가 주인인 ‘정치의 원리’도 마찬가지다. 소비자가 ‘불량’으로 판정한 정치와 정책을 시장에서 몰아내는 것이다.
이번 5·31 지방선거에서 전체 투표자 1911만명 중 405만명(21%)만이 여당에 표를 던졌고 1506만명(79%)은 야당에 표를 던졌다. 이것을 야당제품이 ‘우량’이란 뜻으로 해석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이론이 있을 수 있으나 집권당의 정치와 정책을 국민이 ‘불량’이라고 판정한 것만은 이론이 있을 수 없다.
설마 대통령이 이런 간단명쾌한 원리를 받아들여 이 정권의 정치와 정책이 정치시장에서 도태됐으니 그런 정치는 바꾸고 정책은 거둬들이겠다는 뜻을 나타내려고 ‘소비자가 지배하는 정치’라는 말을 끌어들였을 리가 없다. 대통령의 진심은 ‘소비자 주권이 실현되기 위해선 언론의 공정한 정보제공이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말하자면 1500만명의 유권자가 언론의 불공정 보도로 해서 여당의 정치와 정책을 버린 것이라는 뜻이다. 결국 ‘그래서 나는 5·31 선거결과에 승복하지 못하겠다’는 뜻을 나타낸 것이다.
대통령의 이런 ‘아전인수’식 시장원리 해석과 유권자 모욕에 대해선 국민들이 판단할 것이니 길게 더 말할 이유도 없다. 하나 묻고 싶은 것은 ‘나는 성격적으로 혁명을 좋아하는 성격’이라고 밝혔던 인터넷 포털사이트 대표 초청 청와대 오찬에 대해서다. 이 정권이 기대고 있는 양대 언론 축이 TV방송과 인터넷 포털사이트라는 사실은 다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인터넷은 ‘정권의 포로가 됐다’는 평을 듣고 있고 ‘공영TV는 군사정권 때보다 더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그런데 대통령이 이런 두 매체를 불러 놓고 ‘나와 우리 정권을 지지해 주는 것은 고맙지만 너무 노골적이라서 조금 민망하다. 국민 눈치도 있으니 겉으로라도 공정보도 흉내를 내다오’라는 얘기를 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다. 그런 대통령이 ‘언론의 불공정’을 들먹이며 선거결과에 승복하지 않겠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 나라의 남은 20개월이 걱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