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방선거 참패로 벼랑 끝 위기에까지 몰렸던 열린우리당이 우여곡절 끝에 당 위기 수습을 위한 ‘김근태호(號)’를 공식 출범시켰다. 그러나 당 안팎에서는 김 신임 의장이 그간 고건 전 국무총리 등과의 연대 문제 등을 주장해 온 만큼 ‘김근태호’의 출범 자체가 자칫 정계개편을 위한 ‘준비위원회’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냐며 곱지 않은 시선을 내보이고 있다.
특히 김 의장이 당내 중도·실용파의 ‘좌파성향이 아니냐’는 자신에 대한 불신을 해소한다는 명목으로 “서민경제 회복” “추가 경제성장”등을 내걸면서 실용노선으로 급선회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 점도 향후 고 전 총리와의 연대를 의식한 것 아니냐는 의혹마저 제기되고 있다. 고 전 총리는 이미 지난 2일 중도실용주의 결사체인 ‘희망한국국민연대’를 오는 7월 결성키로 한 바 있다.
12일 현재 열린당 당원게시판에는 ‘김근태호’ 출범 자체를 ‘범민주세력대연합’을 위한 ‘당 바치기’로 규정하면서 우려를 표명하는 시각이 적잖이 제기되고 있다. 기간당원 김종필씨는 “겉으로는 5·31 지방선거 이후 실추된 당 꼬라지를 수습하는 모양새를 만들어 (당을) 수구기득권에 들어 바치기 전략이 지속되는 것 아니냐”면서 우려를 표했다.
일반당원인 임충섭씨는 고 전 총리를 ‘늙은 호랑이’, 김 의장을 ‘재야 고양이’로 비유하면서 “고양이가 호랑이 옆에서 어슬렁거려서는 호랑이의 밥이 되기 쉽다”면서 “고건 옆에서 어슬렁거려서는 고건에게 당을 바칠 것”이라고 했다. 고 전 총리까지 포함하는 김 의장의 ‘범여권 통합론’은 결국 고 전 총리를 중심으로 한 정계개편 논의에 휩쓸려 버릴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는 이어 “호랑이의 밥이 되느니 차라리 호랑이가 사는 숲 근처에는 얼씬거리지 말라”고 김 의장에게 경고했다. 또 다른 당원도 김 의장을 향해 “욕심 먹은 이슬비에 침몰하는 배를 눈으로 보지 않았느냐”며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실제 당내에서도 실용·중도파 의원들을 중심으로 김 의장에 대한 불신이 가시지 않고 있는 데다가 당장 지방선거 참패 원인 분석을 놓고서도 계파간 갈등이 예고되고 있는 만큼 김 의장 체제는 출범부터 일정 부분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관측이다. 따라서 ‘김근태호’는 애초부터 고 전 총리 등과의 연대를 통한 정계개편 문제를 염두에 뒀지 않았겠느냐는 설명이다. 실제 현재 당 위기 상황의 취약한 구조는 정치권의 정치계편 논의시 쉽게 휩쓸려 갈수도 있다고 보는 판단이 대세인 만큼 당내 고건 우호세력과 일부 중도·실용세력의 이탈을 막으면서 향후 정계개편시 제 목소리를 내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이 아니겠느냐는 게 당 안팎의 분석이다.
김 의장도 이런 상황을 의식한 듯 취임 직후인 11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고 전 총리 등과의 연대를 통한 ‘범민주세력대연합’ 문제에 대해 “우선 당이 단합해 위기를 극복한 다음에 (연합얘기가) 있을 수 있다. 지금 제기하는 것은 책임회피”라고 단호하게 말했지만, 언제든지 대연합 문제를 추진할 수 있다는 입장을 한켠으론 열어놓기도 했었다. 지금은 시기상 당 위기 수습이 먼저라서 대연합 문제는 잠시 뒤로 미뤄두겠다는 뉘앙스였다. 실제 김 의장은 올 2월 전당대회 출마 당시 고 전 총리까지 포함하는 ‘범민주양심세력대연합’ 소위 ‘반한나라당’ 전선의 ‘범여권 통합론’을 주장해 왔었다.
김 의장은 또 이날 “서민경제 회복에 총력을 다하겠다”면서 추가경제성장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간 당내 개혁 진영에서 분배를 강조해 오던 입장을 감안하면 사실상 실용노선의 회귀로 비쳐지는 대목이다. 특히 12일 서울 영등포 당사에서 연 첫 회의에서는 ‘민생우선론’의 후속 대책으로 '민경제회복 추진본부'라는 특별기구를 의장 직속 기구로 설치키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일단 당 안팎에서는 고건 전 총리 등과의 연대를 통한 정계개편을 기정사실화하는 모습이다. 시기적으로는 7월 26일 재보궐선거 이후로 내다보고 있는 분위기다. 선거 결과와 무관하게 ‘범여권 통합’ 등 정계개편을 위한 모든 시도가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김근태호’가 실용노선으로 선회하는 움직임 등은 향후 고 전 총리 등과의 연대를 고려한 사전 정지작업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게 당 안팎의 설명이다. 당장 당내에서는 “민주화운동 했다는 훈장을 빼면 김 의장이 고 전 총리와 뭐가 다르냐"는 말도 나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