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6일자 사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열린우리당은 5·31 지방선거 참패에 따른 대책의 하나로 남·북 관계, 한·미관계 등 외교·안보 정책 노선을 재검토하기로 했다. 무조건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의 지난 3년의 남북관계, 얼굴 붉히며 할 말은 한다는 기분위주로 흘렀던 지난 3년의 한·미관계가 대한민국을 흔들어 왔고 그 속에서 싹튼 현 정권의 정체에 대한 의혹과 불안이 국민이 정권을 등진 원인의 하나라는 뒤늦은 자각이 이 집권세력 안에서도 고개를 든 것이다.

    대북 정책의 일차적 목표는 남북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해서 한반도를 전쟁의 위험으로부터 지켜내는 것이다. 그러자면 남은 북의 행동을, 북은 남의 행동을 서로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서로가 서로를 예측할 수 있게 하는 토대는 상대의 이런 행동에 대해서는 우리가 이렇게 나갈 것이라는 것을 명확히 알게 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남북관계에서 원칙이 중요한 것이다. 이 원칙의 길이 멀리는 통일의 길로 이어지는 것이다.

    대북정책의 또 하나의 목적은 북한동포들을 고난과 불행에서 보호하고 구해내 그들의 삶의 질을 끌어 올리는 것이다. 북한 주민들이 배를 곯거나 질병에 시달리는 것을 막아주며,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기본권을 누릴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이 정부는 출범 때 북핵 해결을 대북정책의 최우선 과제라고 했고, 북핵 해결의 가닥이 잡혀야 대북지원을 비롯한 남북관계의 개선이 가능하다는 원칙도 정했다. 그러나 이런 정부 입장과 원칙은 “북한의 핵 보유는 일리가 있다. 북한 핵무기는 방어용”이라는 발언과 “북한에 대한 제도적, 물질적 지원은 조건 없이 하려 한다”는 대통령의 연속된 발언으로 이미 숨이 끊기고 말았다. 또 통일부 차관이라는 사람이 북한 인권개선에 대해 “피켓 들고, 데모하고, 시위하고 성명서 낭독한다고 인권문제가 해결될 것 같으면 우리도 100만장의 성명서를 낼 수 있다”고 말할 정도로 북한인권문제는 이 정부에게 번거롭기만 한 주제가 돼 버렸다.

    정권 편의에 따른 이 정권의 대북 무원칙은 북한정권에게 남쪽을 대하는 방식으로 국제사회를 상대해도 좋다고 교사하는 꼴이 돼버린 셈이다. 그 결과 북핵은 실타래처럼 꼬이고 국제사회가 그런 북한을 더 외면하게 만드는 결과만을 불러왔다.

    대한민국 외교의 기본축이었던 한·미동맹은 이 정권의 ‘일관되고’ ‘집요하고’ ‘국민의 의사를 철저히 외면한’ 외교노선 추구로 인해 변질·약화·해체의 단계를 밟아가고 있다. “(한국군이) 명실상부한 자주군대로 태어나야 한다”는 이 정권의 자주국방론은 차기 정권 말로 예정한 시간표 위에서 전시작전 통제권 환수를 굴려 가고 있다. 작전통제권 회수라는 이 정권의 목표가 달성되면 한·미 연합사는 해체된다. 한·미동맹 역시 대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이것은 한·미관계가 강화된 미·일동맹의 부속품이 되거나 아니면 한국에게 미·일동맹의 반대편에 서기를 강요하는 불행한 양자택일로 내몰 가능성을 안고 있다.

    물론 동맹은 국익을 위해 맺는 것이다. 국가 이익은 그때 그때 달라지는 유동적인 것이다. 따라서 항구적인 동맹관계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동맹을 지킬 것인가 허물 것인가 하는 판단은 냉철한 국익판단 위에서 이뤄져야 한다. 국가 운명이 좌우되는 동맹정책의 변화를 한 정권의 이념적 편향에 내맡겨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는 부주의한 동맹정책으로 명이 끊긴 나라들의 공동묘지라는 말이 있는 것이다.

    한·미동맹은 지난 50년간 대한민국의 존립과 번영을 가능하게 했던 대들보이고 한·일관계, 한·중관계 같은 다른 대외관계는 그 대들보 위에 얹힌 서까래라고 할 수 있다. 이 정부가 자주국방이니 균형외교니 하는 속빈 말로 한·미동맹이라는 대들보를 흔들면서 우리의 외교, 안보, 경제가 함께 휘청거리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 안보의 현실이다.

    선거를 통해 집권한 대통령이라 해서 나라의 안위와 존립과 번영이 걸린 기본틀에 변화를 줄 수는 있어도 그것을 허물 수는 없는 법이다. 국민은 남북관계나 동맹관계의 근본적 전환까지를 5년 임기의 대통령에게 위임하지 않았다. 더구나 이 정권은 임기의 3분의 2를 지난 정권이다. 이 정권은 남북관계는 원칙에 따라, 동맹관계는 신의에 따라 관리한다는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