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일보 2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김성호 객원논설위원이 쓴 시론 '민심은 미치지 않았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2006년 5·31 지방선거는 여당인 열린우리당의 참패, 야당인 한나라당의 완승으로 끝났다. 이것은 정부 여당이 민심을 잃었기 때문이라는 게 모든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그런데 이런 결과는 새삼스러운게 아니고 5·18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면서부터 이미 예견됐던 일이다. 도대체 민심은 왜 선거가 실시되기도 전에 이미 승패를 결정지어 버린 것일까. 투표일을 보름 남짓 앞둔 지난 5월14일 손호철 서강대 교수가 한국일보에 쓴 글에서부터 이 의문을 풀어보자.

    “그 많은 문제점들에도 불구하고 민심이 한나라당을 지지하고 있다는 것은 민심이 미치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다른 한편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얼마나 밉고 싫었으면 그 많은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한나라당의 손을 들어주고 있겠는가를, 그리고 국민들이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에 대해 손사래를 치도록 만든 노무현 정부의 그간의 언행과 독선을 생각하면 역시 민심은 무서운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손 교수는 한나라당에 쏠리는 민심을 무섭다고 하면서도 한편 미쳤다고 풍자했지만 그건 지나친 표현일 것이다. 손 교수 지적대로 민심은 정부 여당이 ‘밉고 싫어서’ 그 반대편에 있는 한나라당으로 갔을 뿐이다. 선거일 보름 전쯤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 지지 이유를 묻는 질문에 ‘여당이 더 싫어서’가 37.9%로 으뜸을 차지한 것이 그 사실을 뒷받침한다.

    열린우리당은 선거 패배 이유를 ‘박근혜 대표 피습사건의 후폭풍’으로 돌리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민심이 정권을 떠난 것은 지난 5월20일에 일어난 그 ‘돌출변수’ 이전의 일이다. 유권자들이 정부 여당에 반대표를 찍겠다고 벼르고 있는 중에 박 대표 피습사건이 일어났을 뿐이다. 그 끔찍한 안면 자상(刺傷)이 유권자들의 결심을 더욱 굳힌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말이다.

    민심은 정부 여당의 무엇을 미워했을까. 앞서 인용한 그 여론조사에서 여당이 싫은 이유를 물었더니 무능이 31.5%, 독선이 21.6%를 차지했다. 무능하면 독선에 빠지지 말든가 독선을 부리려면 무능하지 않든가 해야 할 텐데 노무현 정권은 이 둘을 겸비했다. 이러고도 민심의 분노를 사지 않는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정부 여당은 무슨 문제를 해결하는 데 무능했을까. 투표 하루 전인 5월30일 신중섭 강원대 교수가 문화일보에 쓴 글에서 찾아보자. “우리의 삶이 가파르게 나빠지는 것은… 대부분 정치가 만든 재해다. 우리 자식들의 교육 환경이 개선되지 않은 것은 잘못된 교육 정책 때문이다. 우리의 주거환경이 나빠지는 것은 잘못된 주택 정책 때문이다. 경제와 취직이 어려운 것은 잘못된 경제 정책과 노동 정책 때문이다.”

    노 정권의 미숙과 오류는 그동안 수많은 사람이 여러 측면에서 지적해 왔다. 그러나 말하는 사람의 입만 아플 뿐 듣는 사람은 결코 고집을 꺾지 않았다. 무능에 이은 독선의 모습을, 또 그것들이 치를 대가가 어떤 것인지를 선거 당일인 5월31일 송호근 서울대 교수가 중앙일보에 쓴 글에서 찾아본다.

    “모질고 야박한 정책에 주눅든 시민은 따뜻한 위로의 말을 들은 지 오래다… 미래의 정의로운 풍요를 위해 끝없는 인내를 요구하는 이 정권의 말투는 거칠었고 행동은 천박했다… 국민을 안온한 공간으로 안내하지 못하는 민주주의, 시민의 허탈한 마음을 읽지 못하는 민주주의는 쉽게 냉소의 대상으로 변한다.”

    그러나 사상 최저가 되리라던 이번 선거의 투표율은 51.3%로 2002년 선거의 48.9%를 뛰어넘었다. 이로 보아 민심은 미치지도 않았고 냉소에 빠지지도 않았다. 투표일이 오기를 기다리고 기다린 끝에 드디어 그 날이 오자 아침 일찍 투표소에 나가 분노를 폭발시킨 것이다. 민심은 건재했고 앞으로도 건재할 것이다. 만약 심판을 받은 정권이 이런 저런 꼼수로 궁지를 모면하려 하거나 계속 무능과 독선의 길을 가려 한다면 제2, 제3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선거는 과거에 대한 심판이며 동시에 미래에 대한 선택이다. 민심이 무슨 미래를 선택했는지 패자(敗者)는 반성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