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당 3년여만에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는 열린우리당이 위기타개책으로 ‘민주 대 반민주’ ‘개혁 대 반개혁’ ‘평화 대 반평화’라는 카드를 꺼내들고 나왔다. 5일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를 겨냥, 스스로를 ‘민주평화개혁세력’이라고 지칭하면서 이분법적 대결구도를 조성해 지방선거 판세 변화를 시도하겠다는 것인데, 정치권은 물론 언론계 학계 네티즌들 사이에서도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정동영 의장은 25일 소속 의원 및 주요 핵심당직자 13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비상총회를 열고 대국민호소문을 통해 “민주개혁세력 평화세력 미래세력이 와해되지 않도록 (한나라당의) 싹쓸이를 막아달라”고 머리를 조아렸다. 지난 24일에는 전남 지역 지원유세에서는 민주당과의 통합론 등 지방선거 이후 정계개편을 언급하면서 “민주세력 결집을 위한 연대를 만들겠다”며 “민주당은 민주세력 평화세력이라는 점에서 우리와 함께 할 수 있다”고 했다. 물론 그 정계개편의 중심에는 ‘민주평화개혁세력’인 열린당이 구심점이 돼야 한다는 말도 했다. 

    정 의장은 26일에는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 “이대로 가면 10년 만에 다시 수구적 보수 정권이 들어서는 것이다. 이래선 안 된다고 하는 국민들도 더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이른바 수구 3각 세력은 날로 공고해지는 반면에 ‘평화민주미래세력’은 나뉘어져 있기 때문에 연합하고 협력하는 틀이 필요하겠다 하는 점을 강조했다. 원론을 강조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치권은 물론, 학계 언론계와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지방선거 이후 당장 책임론에 직면할 정 의장이 정계개편을 운위한 모습이나, 과거 ‘반개혁세력’이라고 몰아붙이며 당을 깨고 나왔던 민주당을 ‘민주평화세력개력’의 통합 대상으로 주장한 데 대해 상당히 불쾌하다는 반응이다. 당내에서도 “지금 그런 얘기를 할 때가 아니다” “정계개편 운운에 앞서 당장 책임론에 부닥칠 텐데…”라는 말들이 터져나왔었다.

    특히 국민 분열과 갈등이 봉합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통합의 리더십의 요구되는 있는 시대에 또 다시 ‘민주 대 반민주’ ‘개혁 대 반개혁’ ‘평화 대 반평화’라는 이분법적 대결구도를 조성해 정치적 실리만을 따지겠다는 시도에 대해서도 정치권과 언론 학계는 대대적인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집권여당 의장으로서의 ‘정동영’ 자체에 대한 자질 문제도 거론되고 있는 형편이다.

    조선일보는 26일자 ‘누가 이 정권을 ’민주평화개혁세력‘이라 했나’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정 의장이 민주당을 ‘민주평화개혁세력’의 통합 대상으로 언급한 데 대해 “정 의장은 과거 (민주당) 분당을 이끈 핵심인물이었고 얼마전까지 ‘민주당은 과거세력’이라고 했었다”면서 “그러던 열린당이 이제와서 민주당을 ‘개혁세력’이라고 치켜세우고 있으니 그 속계산이 뭔지만 훤히 드러낸 셈”이라고 했다.

    이 신문은 또 “집권당 의원 스스로가 집권 3년을 넘긴 자신들의 자화상을 ‘남이 잘못하면 난도질하고 우리의 잘못에는 관대한 이중적 잣대를 갖고 정치를 해 왔다’ ‘말로만 개혁을 외치고 국민을 우롱하고 무시했다’고 실토했는데, 이런 모습 어디에다 ‘민주’니 ‘개혁’이니를 갖다 붙일 데가 있는가”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 신문은 그러면서 “국민들이 이 정권을 정말 ‘민주평화개혁세력’이라고 보고 있다면 그런 당에 10%대의 지지밖에 보내지 않고 있겠느냐”면서 정곡을 찌르는 비판을 가했다. 이 신문은 이어 “지방선거가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정 의장의 절박한 심정은 이해가 간다”면서 "그렇다 해도 (정 의장의) 발언은 아무래도 잘못된 과녁을 향해 날아간 말 화살과 다를 바가 없다“고 했다.

    아울러 연세대 사회학과 유석춘 교수는 이날 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열린당이 스스로를 ‘민주평화개혁세력’이라고 지칭하면서 이분법적 대결구도를 조장하고 있는 데 대해 “자기만 대통령이라고 주장한다면 어느 누가 알아 주겠느냐”면서 발끈했다. 열린당의 ‘민주평화개혁세력’ 운운은 국민들로부터 정당성을 받지 못한, 말도 안되는 주장으로 언급의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유 교수는 그러면서 “과거에 재미를 봤기 때문에 이미 약효가 다 떨어진 ‘민주 대 반민주’ 등의 구도를 또 다시 들고 나온 것 같은데, 왜 국민들의 진정한 뜻을 이해하지 못하느냐”면서 매우 안타까워했다. “자신들의 뜻이 곧 국민의 뜻으로 착각하고 있는 점이 열린당의 가장 큰 문제”라고 유 교수는 지적했다.

    이와 함께 인터넷 네티즌을 중심으로도 열린당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쇄도하고 있다. 한 네티즌은 유명 인터넷 포탈 댓글을 통해 “국민말 무시할 때는 언제고 아쉬우니까 이제와서 민주화 퇴보, 어쩌고 저쩌고 애기를 하느냐”면서 “그런 말 하면 쑥스럽지 않느냐”고 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민주당을 ‘민주평화개혁세력’의 통합 대상으로 언급한 것을 놓고 “이제와 안되니까 다시 민주당과 합친다고, 정말 쇼를 하네”라면서 “정치의 기본은 국민을 위하는 것이지 당과 권력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쏘아붙였다. 

    아이디 ‘chlrhs123’는 “마치 자신들이 깨끗하고 도덕적이며 가장 개혁적이라고 하는데 그동안 자가당착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오늘에 이르러 한탄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면서 “열린당은 없어져야 할 당이다. 버스는 이미 지나갔다. 다음 버스 기다려 봐야 별볼일 없을 것“이라고 분노를 표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