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5일자 오피니언면 '태평로'란에 이 신문 신효섭 논설위원이 쓴 칼럼 <'2004 정동영'과 '2006 정동영'>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2003년 12월 열린우리당 지지율은 18.8%(한국갤럽)였다. 한나라당은 20.1%, 민주당은 17.1%였다. 열린우리당은 이듬해 1·11 전당대회에서 당의장으로 정동영을 뽑았다. 상황이 급변했다. 2월 25.8%, 3월 28.5%로 지지율이 솟구쳤다. ‘정동영 신드롬’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호남 출신 정 의장이 민주당 지지표를 열린우리당으로 끌어 모았다”고 보았다.

    지난 2월 18일 정동영은 2년 만에 다시 열린우리당 당권을 잡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도, 당도 뜨지 않고 있다. 전대(全大) 직전 20.3%이던 당 지지도는 전대 직후 18.4%로 떨어졌다. 그 뒤에도 21.7%(3월), 22.6%(지난 11일·KSOI 조사)에 그쳤다. 정 의장 개인 지지도도 지난해 12월 5.3%에서 지난달 7.5%(KSOI 조사)로 조금 올랐지만 20%대 선두주자들에겐 한참 처진다.

    왜 이럴까. 30% 안팎의 저조한 대통령 지지도가 열린우리당과 정 의장의 발목을 잡고 있는 걸까. 그러나 2004년 1월 정 의장이 당을 맡았을 때 대통령 지지도는 22.3%(한국갤럽)로 지금보다 더 낮았다.

    그렇다면 원인은 정 의장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 ‘2004 정동영’은 51세의 젊음, 뛰어난 화술 같은 겉포장만으로도 국민에게 어필했다. 그러나 ‘2006 정동영’은 더 이상 이미지만 갖고도 장사가 되는 신세대 스타가 아니다. 국민은 두 번째로 집권당을 떠맡은 그가 이젠 국가 리더다운 콘텐츠와 실력을 보여주길 기대했다. 이에 대해 정 의장이 내놓은 답은 “못사는 집 아이, 공부 못하는 아이라고 생각하는 실업계 고교생의 응어리를 풀어주는 게 여당이 할 일”이라며 실업고 문제를 ‘양극화’에 끌어다 대고, 당 선거운동에 공무원을 동원하려다 제지당하고, 17조원이나 들어갈 선심공약 100여건을 남발한 것이었다. 이는 모두 이전 집권당 지도부가 선거 때마다 발을 담갔던 정치의 ‘레드오션’이다. 정 의장은 이전에 누구도 가지 않고 선보이지 않았던 자신만의 정책과 공약, 즉 정치적 ‘블루오션’을 보여주는 데 실패한 것이다. 국민들이 열린우리당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정책 추진 능력 부족’(32.6%)과 ‘잘못된 정책 노선’(28.4%·KSOI 4월 조사)을 꼽은 건 이런 분석을 뒷받침해 준다.

    정 의장의 정치력과 포용력도 문제다. 고건 전 총리와의 연대에 실패한 게 대표적인 예이다. 정 의장의 ‘정치적 대부(代父)’ 격인 김대중 전 대통령이 DJP연대를 성사시키기 위해 김종필씨의 청구동 집까지 직접 찾아가 머리를 숙였던 것과 대비된다.

    호남 사람들이 그의 ‘미래’를 확신하지 못하고 있는 점도 정 의장에겐 큰 부담이다. 호남에서 고건 전 총리에게 큰 차이로 뒤지는 게 방증이다. 지난해 12월 ‘55.0%(고 전 총리) 대 11.8%’의 상황이 2월 말에도 ‘55.3% 대 12.2%’(한국갤럽)로 그대로다. 한 호남 지역언론인은 “대통령은 인사(人事)에서 호남을 홀대하고 있다. 호남에 지역구도의 책임이 있는 것처럼 말하기도 한다. 이러니 대통령과 정권 핵심세력이 호남 출신 정 의장에게 과연 기회를 줄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 의장은 과연 정치 입문 10년 만에 맞은 이 슬럼프를 이겨낼 수 있을까.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사람은 정 의장 자신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