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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 외교는 순간적으론 화끈하긴 하다

입력 2006-04-24 08:51 | 수정 2006-04-24 12:28
조선일보 24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정치부 박두식 정당팀장이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1968년 2월 2일 미국 백악관 기자실. 린든 존슨 당시 미국 대통령은 이날 작심하고 마이크를 잡았다. 미국 언론이 전하는 베트남 전쟁에 관한 ‘나쁜 뉴스’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존슨은 “우리의 적은 지난달 구정(舊正) 공세에선 실패했지만, 우리를 향한 심리전에서는 승리를 거둔 것이 분명하다”고 했다. 전쟁에 이기고 있는데, 미국에서는 언론의 비뚤어진 보도 때문에 실상이 왜곡되고 있다는 얘기였다. 반대로 미국 언론은 “존슨이 잘못된 보고를 받고,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는 주장을 폈다.

1960년대 중반 이후 미국 정부와 언론 사이엔 베트남 전쟁을 둘러싼, 이런 유(類)의 논쟁이 이어졌다. 정부는 언론을 “애국심이 없는 집단”이라고 비난했고, 언론은 ‘정보 조작과 언론 통제’의 문제를 들어 정부를 공격했다. 이 논란과 더불어 미국은 혼돈 속으로 빠져들었다. 패배주의와 비관, 혼란이란 말로 압축되는 이른바 ‘베트남 신드롬(증후군)’이 한동안 팽배했던 것이다.

1991년 초, 1차 걸프전쟁에서 승리한 당시 부시(아버지) 미국 대통령은 “신(神)의 도움으로 베트남 신드롬을 물리치게 됐다”고 선언했다. 베트남 신드롬 퇴치법의 첫 항목이 사실상 ‘언론 통제’였다. 언론의 부정적 보도를 막기 위한 부시 행정부의 노력은 가히 ‘신의 경지’에 가까웠다. 백악관, 국방부, 각군 대변인들은 언론 브리핑에 앞서 예상 질문에 대한 사전 리허설까지 했다. 호의적이지 않은 언론에 정보를 주지 않거나, 은밀한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대중 정서에 기대는 외교엔 대안 없고 박수부대만 득실 

이런 일이 미국에서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국익이 충돌하는 외교 현안이 발생하면, 대부분의 나라에서 비슷한 상황이 발생한다. 일종의 여론 줄 세우기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독도 주변 해역에서 무력 대치 가능성까지 거론됐던 한·일 분쟁에서 보여준 노무현 정부의 대응도 크게 다르지 않다. 노 대통령은 청와대로 여야 지도부를 불러 대일(對日) 강경 대응의 필요성을 강조했고, 국가 조찬기도회에서 “이 난관을 극복하고…(중략)…지혜로운 판단을 할 수 있게 기도해달라”고 했다. 열린우리당에선 청와대 모임에 불참한 한나라당을 가리켜 “반(反)민족적”이란 말까지 나왔다. 한나라당이 이번 사태에 정부와 다른 해법을 주장했던 것은 아니다. 박근혜 대표가 나서서 “영토 문제는 외교적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며, 어떤 양보도 없다”고 했다.

적어도 이번 한·일 분쟁에서 대한민국은 완벽한 의견 일치를 본 듯했다. 이번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경우에서도, 독도 문제를 놓고 다른 이야기가 나올 가능성은 없다. ‘독도는 우리 땅’이란 노래를 애국가보다 더 자주 불러온 우리 국민들이기에 더욱 그렇다. 어느 누구도, 홈팀 관중들 틈에서 상대팀에 조금이라도 유리하게 들릴 수 있는 말을 할 배짱도 없고, 그럴 이유도 없는 것이다. 다수 의견이 득세하면서 소수는 입을 다물게 되는 이른바 ‘침묵의 나선형(the spiral of silence)’ 구도가 작동하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상황이 되면, 건전한 비판이나 대안에 대한 토론이 자취를 감춰버린다. 치어리더들만 남게 되는 것이다. 한 외교관은 이를 ‘감성(感性) 외교’라고 했다. 애국주의 같은 대중적 정서를 자극해 외교적 의제를 밀어붙이는 방식이라고 했다. 그러나 감성외교가 순간적 성과를 거둘진 몰라도, 장기적인 성공을 보장하진 않는다. 외교 문제는 ‘뿌리를 뽑겠다’고 달려든다고 해서 뿌리가 뽑힐 만큼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면 감성의 덫에 걸려, 출구조차 없어지곤 한다는 데 그 맹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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