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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피루스 시대때보다 못한 정부와 언론 관계

입력 2006-04-24 09:01 | 수정 2006-04-24 09:48
동아일보 24일자 오피니언면 '동아광장'란에 박성희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 교수가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뉴스는 그 사회의 상식을 거꾸로 비춰 준다. 범죄가 만연하는 사회에서는 범죄율이 줄었다는 것이 뉴스일 것이고, 평화로운 곳에서는 작은 범죄도 큰 뉴스가 된다. 신문이나 방송 뉴스가 사건 사고로 흘러넘치는 것을 보고 말세라고 느끼는 것은 성급하다. 왜냐하면 그런 뉴스들이야말로 나머지 세상은 아직 살 만하다는 메시지를 역으로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언론은 이런 기능을 통해 사회를 통합하고 문화적인 정체성을 찾아 계승하도록 도와준다. 

얼마 전 김명곤 문화관광부 장관이 한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해 “신문의 논조는 정부가 직접적으로 통제할 사안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밝혔고, 그 말이 일부 신문에 제목으로 뽑혀 보도되었다. 언론의 논조를 정부가 통제하지 않는 것은 민주사회의 상식이다. 굳이 발설할 필요가 없는 상식이 뉴스가 된다는 것은 그만큼 언론과 정부의 관계가 비상식적이라는 증거다. 그래서 김 장관의 말은 반갑고도 씁쓸하다.

2월에는 대법원에서 ‘언론의 논설과 해설의 책임이 사실적 주장보다 의견 표명과 비평일 때는 반론보도를 요구할 수 없다’는 요지의 판결을 내놓았다. 어떤 연유에서건 그런 판결을 대법원에서 해야 하는 사회는 목하 언론의 입지가 심상찮은 사회다.

이런 일련의 뉴스 뒤에 웅크린 언론의 실상은 이렇다. 정부에서는 ‘신문법’을 통과시키고, 헌법재판소에서는 일부 언론과 정부 간의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대통령은 ‘신문의 날’ 행사에 대독시킨 메시지에서 “…언론의 영향력이 막대하게 커진 사회에서는 언론 스스로, 횡포가 가능한 우월적인 권력이 되지 않도록 견제 받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면서 “나아가 이 일은 소비자와 시민사회, 그리고 사법기관이 함께할 일이지만 각기 그 역할이 충분하지 못한 현실에서 정부의 역할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했다.

소비자-시민사회-사법기관-정부가 동렬에 서고, 언론이 반대편에 서는 구도는 상식적이지 않다. 시민사회 등장 이래 언론 관련 논의들은 상식적으로 언론 대 권력의 구도에서, 즉 소비자-시민사회-언론이 동렬에 서고, 정부권력이 반대편에 서는 쪽에서 진행되어 왔기 때문이다.

‘횡포가 가능한 우월적 권력’을 휘두르는 언론은 이미 언론이 아니다. 그런 언론을 다스리려면 ‘신문법’으로는 어림없다. ‘정부 전복을 꾀하는 자’를 일벌하는 법이라면 모를까. 마찬가지로 언론의 의견 표명을 문제 삼으며 의견 시장을 통제할 법을 집행하는 정부는 이미 민주정부가 아니다. 언론의 자유는 신장하되, 책임을 강조하는 쪽으로 가는 것이 요즘 민주정부의 방향이요 상식이다.

‘상식’이란 고대 파피루스의 같은 페이지를 뜻하는 ‘같은 장소(locis communis·common place)’라는 말에서 유래했다. 여기서 ‘장소’를 뜻하는 그리스 말은 ‘topos’로서, 훗날 ‘topic’의 어원이 되었다. 고대 그리스에서 학생들은 토론의 논제를 적어 둘둘 말아놓은 파피루스를 펴면서 같은 논제가 적힌 장소를 찾아내어 토론했다고 한다. 같은 페이지의 논제에 대해서만 토론이 가능했고, 그래야 논쟁도 생산적이다.

‘같은 장소’라는 말은 훗날 ‘장소에 대한 믿음’으로 의미가 확장되어 여러 사람의 신념과 상식을 담은 ‘이데올로기’라는 의미로 새로이 자리매김을 한다. 이데올로기에 도전하는 것이 ‘이슈’이며, 상식에 기초해 이를 발굴하고 유통하는 것이 언론 활동이다.

우리나라 언론과 정부는 아직도 파피루스의 다른 페이지를 더듬고 있는 것 같다. 정부가 끊임없이 생산하는 ‘이슈’들과 그에 대한 언론의 대항은 건강한 긴장 관계라고 이름 붙이기에는 어색하기 짝이 없다. 권력이 또 다른 ‘권력’과 대항하는 양상은 영락없는 이데올로기 투쟁인데, 그렇게 볼라치면 민주정부-민주언론의 전제가 허물어지니 그러기도 쉽지 않다. 이도 저도 아니면 그저 지금의 상황이 극심한 ‘의사불통’ 상태라고밖에 볼 수 없다. 그래도 여전히 걱정은 남는다. 최첨단 초고속망 인터넷 시대라지만 의사소통의 수준이 파피루스 시대만도 못하다면 제대로 된 정책이 있다 한들 실현이 될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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