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21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김순덕 논설위원이 쓴 칼럼 <'좌파 FTA'는 정치쇼인가>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이제 금기를 깨고 사회주의라는 말을 쓸 때가 됐다…평등과 민주주의, 시장으로부터의 자유를 강조하는 것을 사회주의 말고 뭐라 부를 것인가.’

    우리나라에서 나온 양심선언이 아니다. ‘마르크스주의 이후’라는 책을 낸 미국 웨인주립대 로널드 애론슨 교수가 진보적 잡지 ‘네이션’에 쓴 글이다. 개인의 자유보다 사회적 책임이 중요하다는 건 여기서도 많이 듣는 소리다.

    마침 노무현 대통령이 색깔론의 오랜 금기를 깨고 자신의 노선을 ‘좌파 신자유주의’라고 규정했다. 진작 밝히지 않은 게 아쉽지만 우리나라엔 사상의 자유가 있다. 좌파면 어떻고 우파면 또 어떤가. 애론슨 교수의 글대로 사회주의라고 한들 별로 놀랍지도 않을 것 같다. 시장(市場)은 부와 권력을 공평하게 배분하지 못하므로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이념을 유럽에서는 사회민주주의, 요즘 남미에서는 참여민주주의라고 부른다.

    지난달 열린 한 세미나에서 이주선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참여정부의 규제개혁이 양극화 해소, 사회정의 실현, 분배적 평등 등 이데올로기적 가치판단에 입각해 개인 및 기업이 동반 성장하는 데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쉽게 말해 세계와 역행한 사회주의적 개혁이 안 먹혔다는 얘기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는 것도 이제까지의 정책이 실패한 때문이라고 본다. 일각에선 좌파 신자유주의가 말이 되느냐고 하는데 김창호 국정홍보처장은 ‘더 높은 수준의 개방과 그에 따른 양극화의 해소를 동시에 추구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FTA로 경쟁력을 키우고, 여기서 나온 ‘이익을 독점하지 말고 보상해 전 국민이 이득을 보는’(2월 16일 노 대통령) 체제를 꾀하는 모양이다.

    안타깝게도 지금 같은 사회주의적 정책으로는 FTA보다 더 큰 것을 해도 경쟁력은 커지기 힘들다.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통해 미국과의 교역과 미국인 투자가 폭증했는데도 더는 경쟁력이 없어 고전하는 멕시코가 그 예다. 강성노조에 꼼짝 못하는 노동시장, 에너지까지 독점한 정부 주도의 규제위주 정책, 우수한 인재를 못 기르는 교육 탓이 크다. 우리 사정과 기분 나쁠 만큼 비슷하다.

    노 대통령이 진정 FTA로 효과를 보려면 ‘충격요법’을 통해 일거에 경쟁력을 높일 게 아니다. 이제라도 국내시장을 자유롭게 풀어 줘 미국과 동등하게 맞설 능력을 키우도록 해야 상식에 맞는다. 재계에서도 더 나빠졌다는 비정규직법을 만들고, 출자총액제한제와 서비스업 진입 제한 등 규제를 고집하고, 대학까지 짓눌러 인재양성을 방해하면서 덜렁 FTA만 체결하는 건 무책임하거나 무서운 일이다. 국내 산업을 벌주려는 의도인가, 아니면 시장간섭을 계속할 작정인가. 혹시 FTA가 안 될 수도 있으니 괜히 시장 먼저 놔줄 수 없다는 정치적 계산은 없는가.

    멕시코는 건전한 재정 통화정책, 민영화와 규제 철폐 등의 신자유주의 개혁 없이 개방만 했다. 좌파의 발목잡기로 경쟁력을 못 키운 채 싼 임금으로 먹고살다가 더 싼 중국과 인도로 일자리를 뺏기고 있다. 그리고는 이제 와서 신자유주의가, NAFTA가 잘못됐다며 다음 정권을 좌파 대통령으로 갈아 버릴 태세다.

    스스로 신자유주의자라는 노 대통령이 진짜 신자유주의 개혁은 않고 FTA만 체결한다면, 다음 정권을 어느 쪽이 잡든 일자리만 뺏기다 멕시코처럼 다시 좌파정권이 집권할 공산이 크다. FTA 협상 과정에서 반미감정이 폭발해 좌파 재집권의 길을 열 수도 있다. FTA 체결이 되든 안 되든 좌파엔 꽃놀이패인 셈이다. 홍보만 요란한 FTA가 정치쇼처럼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도약하려면 한미 FTA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정부가 시장을 들었다 놨다 하는 시대착오적 정책을 버리면 설령 FTA가 안 되더라도 우리 경쟁력은 펄펄 날 수 있다. 정부가 아직도 이 사실을 모른다면 정부부터 외국에 개방해야 살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