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19일자 오피니언면 '노트북을 열며'란에 이 신문 김종혁 정책사회데스크가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방송사에 다니는 40대의 이모씨가 18일 편집국에 전화를 걸어 왔다. 장혜옥 전교조 위원장 인터뷰(17일자 29면)를 읽고서다.

    그는 "장 위원장이 교사 평가를 끝까지 반대하고, 교사의 특정 가치관을 아이들에게 계속 가르치겠다고 한 게 맞느냐"고 물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는 "그렇다면 우리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싶지 않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1970년대 말 고교에 다닌 이씨는 자신의 학교가 소문난 비리 사학이었다고 했다. 대학에 들어가 쉽게 운동권이 된 것도 그 영향이 컸다고 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전교조를 열렬히 지지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는 지금 그는 반(反)전교조다.

    한번은 전교조 교사의 휴가 문제를 납득할 수 없어 다른 학부모들과 함께 항의했다고 한다. 그러다 '묵사발'이 됐다.

    "부모들이 개별적으로 선생님을 찾아가 싹싹 빌고 끝났습니다. 아이를 맡긴 죄인인 걸 어쩝니까."

    전교조에 대한 환상이 사라질 때까지 그는 비슷한 경험을 몇 번 더 했다고 말했다.

    그는 차라리 비전교조 선생님들이 더 솔직한 것 같았고 그래서 왜 학년 초만 되면 부모들이 슬그머니 "혹시 너희 선생님 전교조 아니니"라고 묻는지도 알게 됐다고 말했다.

    89년 전교조가 출범할 때는 시대적 명분이 있었다.

    70~80년대 중.고교에선 무지막지한 일이 많았다. 교사들이 몽둥이로 아이들을 때리는 '빳다'가 비일비재했고, 여학생들은 슬리퍼로 뺨을 맞기도 했다. 교사들의 촌지도 심각했다. 사학 비리도 많았다.

    그래서 전교조가 '참교육'을 들고 나왔을 때 신선했다. 일부 보수적인 인사들도 "교육은 달라져야 해"라고 했었다.

    전교조는 이제 조합원 9만 명의 거대 조직이 됐다. 합법화도 됐다. 전교조의 '참교육' 실천은 어느새 15년을 넘어섰다. 하지만 2000년대의 지금, '참교육'을 믿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교실은 죽었고 공교육은 붕괴됐다'는 건 더 이상 비밀도 아니다.

    친분 있는 교사나 아이들로부터 '교실 얘기'를 들으면 황당하다.

    수업시간에 "이거 학원에서 배웠지?"라면서 넘어가는 교사가 적지 않다고 한다. 잠자는 아이들에겐 "그냥 놔두는 게 너희 도와주는 거야"라는 말도 한단다.

    학교는 이제 졸업장을 따려고 억지로 다니는 장소가 됐다. 아이들은 학교가 파하면 곧바로 학원으로 가 밤늦게까지 학교에서 배우는 똑같은 과목들을 미리 배운다. 지독한 아동학대다.

    과거엔 가난하지만 똑똑한 아이들이 명문 중·고교에 입학하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었다. 학원 안 가도 선생님과 친구들한테 배웠다. 이젠 아무리 똑똑해도 학원에 못 가면 대학 가기 어렵다. 학교가 죽었기 때문이다.

    전교조가 진짜 '참교육'을 외치려면 이런 교육현실에 대한 양심고백이 먼저 있어야 한다. 학원 갈 형편이 안 되는 아이들을 방과 후에 가르치는 전교조 교사 얘기는 들어 보지 못했다. 대신 전교조가 "방과 후 학교는 학교의 학원화다"라며 반대한다는 건 안다.

    교실에선 못 배우고, 학원 갈 형편은 안 되는 아이들은 어쩌라는 말인가. "성적순으로 학생을 뽑지 말라" "교사 평가하지 말라"고 머리띠 두르는 게 문제 해결 방법인가.

    '아이 가진 죄인'인 학부모로서 전교조 선생님들께 간곡히 부탁드린다.

    교사의 일방적 가치관을 주입하는 건 참교육이 아니다. "경쟁은 죄악이다"라고 수업시간에 슬쩍슬쩍 암시하는 것도 비겁하다. 차라리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라. 하지만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손을 내밀어라"고 가르쳐 달라. 선생님들도 열심히 공부해 수업을 살려 달라. 학원에 안 가도 되게 만들어 달라. 그것이 진짜 참교육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