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3일 사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인터넷매체 오마이뉴스가 작년 6월 한미 정상회담의 대화록을 입수해 보도했다. 오마이뉴스는 부시 미국 대통령이 회담에서 “북한은 100달러 위조지폐를 잘 만들며 미국에서는 위조지폐를 만들면 감옥에 보낸다”고 말했다고 하는 등 부시 대통령이 사용한 단어까지 상세하게 보도했다. 오마이뉴스는 이 정상회담 내용을 작년 11월에도 두 차례 보도했었다.

    얼마 전 퇴임한 리언 러포트 전 주한미군 사령관은 재임 중 가장 힘들었던 일에 대해 “한국 정부나 관련 인사들이 한미동맹 협상 현안을 여러 차례 언론에 흘린 것이다. 작전계획 5029 협상, 주한미군 재배치 협상 등 세기 힘들 정도로 많았다. 그 결과 워싱턴에서 ‘도대체 한국에 신의가 있느냐’며 우려하는 상황까지 갔다”고 했었다.

    외교협상은 협상이 종료된 뒤 그 결과를 공개할 뿐 협상과정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말이 오갔는지는 비밀에 부치는 것이 외교의 기초 중 기초에 해당한다. 협상 테이블에서 했던 말이 상대 국가 언론에 그대로 보도된다면 다음부터 그런 나라와 마음을 털어놓고 대화를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모든 나라가 외교문서는 일정 시간이 지난 후에만 공개하도록 시한규정을 두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물며 국가 정상끼리 마주앉아 주고받은 대화가 고스란히 까발려진다는 것은 제대로 된 나라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정상회담 대화록이 통째로 언론에 흘러갔다면 외교 안보의 핵심 라인에 있는 사람이 개입됐음이 분명하다. 그동안 각종 비밀 외교문서가 친여 인터넷매체를 통해 보도된 과정과 비슷할 것이다.

    청와대 대변인은 오마이뉴스 보도에 대해 “이미 보도했던 내용을 다시 짜깁기한 것이라 대응할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 정권이 정직한 정권이라면 “정권이 좋아하는 매체이니 문제 삼지 않겠다”고 말했을 것이다. 하긴 5개월이 넘도록 정상회담 대화록이 어떻게 흘러나갔는지 경위조차 파악 못했다는 정권 아닌가. 사실은 파악을 못한 게 아니라 안 했다는 것이 맞는 말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