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1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김대중 고문이 쓴 '평택 논두렁에서 뒹군 사람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평택의 논두렁 진흙 속에서 ‘반미(反美)’를 외치며 발버둥치는 사람들을 보면서 우리 한국인은 왜 수십 년에 걸쳐 ‘미국’으로부터 헤어나지 못하는가 하는 장탄식을 하게 된다. 미국과의 FTA 협상을 ‘배신’과 ‘대패착(大敗着)’으로 몰아가는 전직 청와대 측근 비서관의 고발을 보면서 우리는 언제까지 ‘미국의 덫’에 갇혀 있어야 하는가 하는 자괴감을 느낀다.

    대한민국의 반세기 역사는 미국과의 명암(明暗)으로 점철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에 대한 애정과 미국에 대한 증오가 교차하면서 우리를 끝없이 어떤 함정으로 몰아가고 있는 이 21세기 시대착오적 현상의 본질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미국’을 극복하지 못하고 ‘미국’ 안에서 맴돌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 우리 앞에 전개되고 있는 세계의 흐름은 각 민족과 국가의 존폐를 가르는 일련의 ‘전쟁’을 시사하고 있다. 하나는 자원전쟁이다. 미국, EU, 러시아, 중국, 일본 등 강국과 대국들은 에너지와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사활을 건 합종연횡에 나서고 있다. 과거 냉전이 있었던 자리에 다원화된 핵(核)들의 에너지전쟁이 대신 들어서고 있다. 에너지를 위해서는 어제의 적(敵)도 없고 오늘의 친구도 없다.
    이런 자원전쟁은 종교적 충돌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인류의 종국적 문명충돌이라고도 할 수 있는 종교전쟁은 바야흐로 기독교권(圈)과 이슬람권의 일대 회전으로 치닫고 있다. 우리는 종교전쟁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섭고 얼마나 무자비하고 얼마나 파괴적인가를 인류의 역사에서 수없이 보아 왔다. 이제 그 종교전쟁과 인종전쟁의 결승이라고 할 수 있는 두 거대 종교의 세기적 싸움이 중동을 발화점으로 번지고 있다. 우리의 절체절명의 과제는 바로 이런 세기적, 세계적 전쟁에서 살아남고 번영을 유지하는 일이다.

    우리는 자원이 없거나 부족한 나라다. 에너지는 100% 외국에 의존해야 한다. 그런 측면에선 우리는 자원 쪽에 서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전적으로 기독교권에 속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슬람권은 분명히 아니다. 그런 측면에선 기독교권과 등질 수 없다. 솔직히 말해, 우리나라는 기름은 없고 기독교인은 많다. 그렇다고 ‘제3세계’라는 중립의 그림자 뒤에 숨을 수 있는 처지도 아니다. 이런 우리의 형편과 위치는 우리가 대단히 정교하고 계산된 외교로 대립과 충돌을 피해 가며 전쟁의 와중에 휩쓸리지 않는 지혜를 발휘할 것을 요구한다.

    오늘날 우리가 ‘미국’을 어떻게 다루어 나갈 것인가는 바로 이런 생존의 기술에 의거해서다. 감정적 반미도, 이념적 반미도, 정략적 반미도 우리에게 이로울 것이 없다. 마찬가지로 맹목적 친미나 냉전 유물로서의 친미도 해로울 뿐이다. 미국을 필요로 하는 부분에서는 조금 양보해서라도 실리를 취할 것이고, 불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우리의 이해관계에 따라 자를 것은 냉철하게 자르면 된다는 기본 자세를 가져야 한다.

    반미론자 또는 미군 철수론자들은 미국이 있음으로 해서 한반도에서 평화가 멀어지고 전쟁 위험이 커진다고 선동하지만, 그렇다면 미군이 이 땅에 기승하던 과거에 이미 한반도의 평화는 깨지고 한국은 벌써 결딴났어야 옳다. 미국(같은 논리로 미군)은 지금 한국에서 물러가는 과정에 있다. 거기에 대고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으로 악을 써대는 일부 한국인들의 과잉대응은 설득력이 없다. 그러지 않아도 한국이 싫어져서 돌아서는 그들의 뒤통수에 돌을 던지는 사람들은 무슨 한풀이가 남아서 그러는 것일까? 분명 다른 이유가 있어서일 것이다.

    대한민국이 이 세계를 살아가는 데 있어 이제 미국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우리가 활용하면 그만이다. 없으면 곧 죽을 것 같은 호들갑도 문제지만 미국 때문에 세상에 종말이 온 것처럼 떠드는 ‘저주’도 큰 병이다. 우리에게 미국은 이제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다. 우리가 선택을 잘하면 된다.

    우리 모두 ‘미국이라는 마법(魔法)’에서 풀려날 때가 됐다. 반미만 외치면 자동적으로 진보가 되고 좌파가 되는 세상, 실리를 따지자고 하면 자동적으로 친미가 되는 세상, 입으로는 반미하고 뒤로는 미국화에 급급한 이중적인 세상―이 모두 우리가 미국이라는 마법에 걸려 있는 탓이다. 그 많은 한국의 젊은 열정들이 세계의 전선에 나가서 싸워도 모자랄 판에 ‘미국’이라는 변수에 매달려 평택의 진흙구덩이에 뒹굴고 있기에는 우리 대한민국이 너무 바쁘고 아깝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