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10일자 오피니언면 '동아광장'란에 김태효 성균관대 정외과 교수(국제정치학 전공)이 쓴 칼럼 '불법 반미운동 이대로 놔둘건가'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소수에 의한 조직화된 반미운동이 한미 관계를 서서히 위기 국면으로 몰아가고 있다. 지난달 30일 한미 연합군사훈련이 실시된 충남 태안군 만리포해수욕장에서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및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의 기습 시위로 훈련이 일시 중단되는가 하면 2008년 말까지 주한미군 용산기지가 옮겨 갈 경기 평택시의 기지 터 일부는 ‘평택미군기지 확장 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가 점거해 왔다.

    그간 이들이 보여 온 행동은 명백한 불법이라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나라의 군사훈련을 방해하는 행위는 특수공무집행방해죄에 해당한다. 또 국방부의 소유가 된 땅에 들어와 영농행위를 하고 한미 공동 측량을 방해하는 대목에 가서는 아예 할 말을 잃게 된다. 5cm가량만 농작물이 자라면 농지를 소유하지 않은 농민이라도 일정한 권리를 인정하는 대법원의 판례를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의 불법 행위보다도 더 큰 걱정을 자아내게 하는 것은 우리 정부의 소극적인 대응 태도다. 2002년 이후 한미 연합군사훈련은 매번 뛰어드는 시위대의 방해에 홍역을 치러 왔는데도 공권력은 솜방망이 대응으로 일관하였다. 지난해 7월 민주노동당, 민주노총,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재야인사 등 7000여 명이 미군기지(캠프 험프리)의 철조망을 57m가량 훼손하며 벌인 시위에 대한 경찰의 조치는 고작 불구속기소 7명, 출석 요구 14명이었다. 미군은 관할 구역 내의 장갑차에 뛰어드는 행위를 저지하게 되어 있지만 한국인들에게서 ‘억울한’ 여론 재판을 받을까 염려하여 손놓고 지켜보기로 한 지 오래다.

    이러한 가운데 7일 국방부가 기지가 들어설 평택시 팽성읍 일대에서 농지 폐쇄 작업에 들어간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사생결단을 하고 저지하려는 시위대의 기세를 감안할 때 결코 수월한 일은 아닐 것이다. 정부는 ‘평택지원특별법’에 따라 주민의 이주와 생계 보장을 위한 대책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는데도 외부의 운동가들이 들어와 저항을 부추기고 있다. 평택시민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기지 이전을 무산시키고 한미 관계를 파국으로 몰려 한다면, 이들은 대한민국 전체의 안보정책을 뒤흔드는 위험한 게임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군과 경찰의 일선 담당자들이 이제까지 똑 부러진 태도를 취하지 않은 것은 윗사람들의 뜻을 헤아려 짐작하는 습성 때문이다. 애국한답시고 잡아들이고 밀어붙여 보아야 ‘소신만 있고 눈치는 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히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정부가 동맹인 미국에 노골적인 반미정책을 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한미 군사협력의 장래, 통일 문제, 북한의 핵 및 위조지폐와 인권 문제 등 어느 것 하나 미국과 긴밀하게 협력하는 내용도 찾아보기 힘들다. 정부의 어정쩡한 친미 노선은 화끈한 반미주의자들의 활동 공간과 파괴력을 한층 북돋우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 초기에는 강성 반미주의 실세들의 입김에 휘둘려 한미 관계가 휘청거렸다. 시간이 지나면서 냉엄한 국제환경을 거슬러 한미 관계를 그르치는 것이 간단하지 않은 일임을 깨닫게 되자 청와대의 대미 외교는 다시 정석(定石)으로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미 관계의 중요성을 말로만 되뇌고 정책 공조를 펴지 못한다면 한미 관계가 올바로 작동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의 외교가 원칙과 언행일치의 차원에서 미국의 신망과 존경을 확보해야만 한국의 입지가 강화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정권의 임기는 짧지만 대외 관계는 긴 호흡을 두고 진행된다. 계획된 대로 치밀하게 추진되어도 2008년 말에 마무리될 미군기지 이전 문제는 결국 차기 정권의 책임이기도 하다. 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내년 3월까지 타결된다 하더라도 이의 국회 비준을 둘러싸고 진행될 치열한 정치 공방은 곧 차기 주자들이 나눠 가져야 할 몫과 책임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의 앞날을 진정으로 걱정하는 논쟁과 토론은 간데없고, 남의 치부만 찾아 들추고 확대하여 무조건 끌어내리려는 싸움만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치밀하고 영리한 반미운동가들의 동맹 훼손 노력은 식을 줄 모르고 있다. 현상을 제대로 읽어 내어 국가 정책의 집단 실패를 막는 일에 이제 국민이 눈을 부릅떠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