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일자 오피니언면에 실린 이 신문 강천석 논설주간이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대통령이 양극화 마이크를 잡을 때마다 궁금한 게 있다. 양극화 구호 하나면 만사가 풀릴 거라는 묘방(妙方) 아닌 묘방을 내놓은 경제 브레인이 누굴까 하는 궁금증이다.

    미국 트루먼 대통령 시절의 이야기다. 하루는 대통령이 화난 얼굴로 어떻게 해서든 손이 하나뿐인 경제학자를 찾아오라고 지시했다. 트루먼은 경제불황으로 골머리를 썩이고 있었다. 그래서 이 경제학자 저 경제학자를 만나 처방을 수소문하는 게 일과였다. 대통령을 화나게 한 것은 그들의 알쏭달쏭한 말투였다. 왼손바닥을 펴면서 ‘돈을 좀 풀어야 합니다’라고 해놓고선, 곧장 오른손을 들어올리며 ‘반면에(on the other hand) 돈을 풀면 인플레이션의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라고 앞말을 뒤집어버리는 것이다. 여기에 정나미가 떨어진 대통령이 손이 하나뿐인 경제학자는 없나 하고 찾아나선 것이다. 트루먼에겐 불행이지만 미국엔 다행스럽게도 손이 하나뿐인 외팔 경제학자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뭔가를 얻으려면 다른 뭔가를 포기해야 하는 게 경제의 세계다. 물가를 잡으려면 어느 정도 경기가 식는 것은 감수해야만 한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경제에는 이 방 저 방의 문을 모두 딸 수 있는 호텔의 ‘마스터 키(master key)’ 같은 게 없다. 그러나 요즘 이 나라는 이런 간단한 원리조차 모르는 사람도 아무렇지 않게 경제학자 행세를 하는 세상이다 ‘마스터 키’ 하나면, 저투자, 저소비, 고실업, 불황은 물론이고, 공교육 질의 향상, 사회평화 구현의 문을 모두 딸 수 있고, 선거에서 수백만 표를 거둬들일 수 있을 만큼 부수입도 쏠쏠하다고 속삭이던 이 정권의 외팔 경제학자가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그러면서 이들은 이게 그 ‘마스터 키’라며 ‘양극화’란 구호를 슬쩍 손에 쥐여준 듯하다. 수십조원을 들여 허허벌판에 정부 청사를 지으면 나라의 미래가 활짝 열리고, 자주 국방을 위해 수백조원을 퍼부어도 수출 상품의 가격 경쟁력과 품질 경쟁력을 한꺼번에 올릴 방안은 따로 마련돼 있다는 독창적 ‘뱃장 이론’도 이런 외팔 브레인들 작품이다.

    경제 지식이 얕고 귀 얇은 정치인으로선 솔깃할 만도 하다. 그래서 선거철은 바른말하는 두 손 온전한 진짜 경제학자에겐 시련의 시간이고, 단방약(單方藥) 하나면 만병이 모두 떨어진다고 외쳐대는 얼치기 외팔 경제학자에겐 한 몫 단단히 잡을 수 있는 대목 장터가 되는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10·29’ ‘8·31’ ‘3·30’ 하는 무슨 암호 같은 숫자를 달고 쏟아지는 요즘의 부동산대책 시리즈에도 이런 외팔 경제학자들 냄새가 물씬하다.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자주 들먹이는 우스갯소리에 ‘바보들의 샤워 법’이란 게 있다. 물 꼭지가 중립에 놓인 샤워기를 틀더라도 처음에는 찬물이 쏟아지게 돼있다. 조금 기다리면 따뜻한 물이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도 바보는 그걸 못 참고 뜨거운 물이 나오는 쪽으로 꼭지를 홱 틀어버린다. 금방 화상을 입을 정도의 뜨거운 물이 쏟아진다. 바보는 그럼 다시 급하게 반대쪽으로 꼭지를 틀고 이번에는 찬물벼락을 맞게 된다는 것이다. 프리드먼 이야기 속의 이 ‘샤워하는 바보’는 이랬다 저랬다 하며 정책의 일관성을 지키지 못하는 정부를 가리킨다.

    그러나 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는 그때만 해도 한국의 ‘신종 바보’ 출현 소식을 접하지 못했던 게 분명하다. 물론 샤워 꼭지를 틀고 나서 처음 한동안은 찬물이 쏟아지더라도 참아야 한다. 그러나 5, 10분이 지나도 계속 찬물이면 샤워기에 고장이 난 게 아닌가 살펴보는 것이 정상이다. 수리공을 부르든가 아니면 꼭지를 반대 방향으로 틀어봐야 한다. 그런데도 바보처럼 정책의 일관성을 지켜야 한다며 어금니를 물고 달달 떨며 찬물벼락을 견디다간 감기에 걸리기 십상이다. 뱃살에 기름이 낀 바보야 감기 정도로 그치겠지만, 3년 불황에 시달린 허약 체질들은 몸살을 앓게 된다. 세금을 퍼붓다가 그 다음엔 규제를 쏟아내고, 그것도 소용이 없자 팔지도 않은 집값에서 개발 이익을 떼가겠다는 걸 정책이라고 내놓고 있는 이 정부와 그 정부 아래서 혼나고 있는 우리국민이 딱 이 짝인 셈이다.

    청와대는 지금이라도 얼치기 외팔 경제학자들을 몰아내고 두 손 온전한 경제학자를 찾아나서야 한다. 그리고 찬물이 계속 쏟아지면 샤워기가 고장이 난 게 아닌가 하고 한번 의심해 볼 정도의 눈치는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