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대중 전 대통령의 평양행 소동을 바라보면서, 필자는 문득 2차대전의 연합국을 승리로 이끌었던 미국의 프랭클린 루즈벨트(Franklin D. Roosevelt, 1882-1945) 대통령이 연상된다. 

    레닌의 볼세비키 혁명(1917)이후 미국의 역대 행정부들은 소련정부에 대한 외교적 승인을 거절해왔다. 그러다가 1933년 루즈벨트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비로소 소련정부를 승인했으며, 1945년 4월 루즈벨트가 사망할 때까지 행정부내에서는 수많은 친소, 친공적인 인물들이 핵심부처에 많이 포진하고 있었다. 

    루즈벨트는 미국 역대 대통령 중세서 최초로 소련정부를 승인했으며 소련에 가장 많은 지원을 해준 소련에 가장 우호적인 대통령으로 기록된다는 점에서, 최초로 평양을 방문하여 북한정권을 인정하고 공식적으로 또 비공식적으로 북한에 수많은 원조를 제공하는 물꼬를 튼 한국의 대표적인 친북 대통령 김대중과 비슷한 점이 너무 많다. 두 사람 모두 공산주의 체제에 대해서 낙관주의적 신념을 시종일관 고수했다. 두 사람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체제가 상호 교류를 지속한다면 두 체제는 언젠가는 상호 비슷한 체제로 접근할 것이라는 ‘수렴주의(收斂主義)’ 이론을 철석같이 믿었다. 

    제2차대전의 막바지인 1945년 2월초, 루즈벨트 일행은 추축국에 대항하여 대동맹(미·영·소)으로 연합국을 이끈 두 거두(처칠, 스탈린)와 정상회담을 갖기 위해 러시아의 황제 짜르 휴양지로 알려진 크리미아반도에 있는 얄타(Yalta)로 항해했다. 스탈린이 대 독일전쟁의 독전(督戰)을 구실삼아 유독 러시아내에서 회담장소를 고집했기 때문에, 루즈벨트는 무리를 해서라도 먼 길을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루즈벨트는 얄타회담에서 처칠과 스탈린을 설득하여 전쟁의 신속히 마무리하기 위해서 군사적 전략을 공동으로 숙의하고 또 전후 국제연합을 창설하여 3국이 주도한 국제평화를 항구히 하려는 원대한 구상을 가지고 있었다. 루즈벨트는 그동안 태평양전쟁을 미국이 단독으로 치름에 따라서 수많은 미군의 인명피해가 발생했음을 인식하고 조속한 시일내에 소련의 대 일본전 참전을 유도할 목적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탈린에게 어느 정도 양보할 각오도 가지고 있었다. 

    얄타로 떠나기 전까지 미 의회나 대부분 대통령의 참모들은 얄타행을 극력 반대했었다. 이유는 그의 나빠지는 건강 문제 때문이었고 게다가 루즈벨트는 비행기가 아니라 선박행을 고집했었다. 회담장소로 가기까지 거리도 너무 멀었다. 또 무엇보다 제3국도 아니고 소련영토라는 점에서 보안 유지의 어려움과 외교적 주도권의 상실이 우려되었다. 

    얄타회담에서 루즈벨트는 시종일관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의 환심을 사기 위해 별의별 유화작전을 총동원했다. 소련군 수뇌부에게 미군의 군사작전을 소상히 설명하도록 했으며, 심지어 회담도중 루즈벨트는 스탈린에게 “Uncle Joe”라는 애칭을 붙이면서까지 그의 비위를 상하지 않게 하려고 갖은 애를 다 썼다. 

    동북아시아에 관련된 마지막 비밀회의에서 루즈벨트는 소련의 대 일본전 참전을 설득하기 위해서 스탈린에게 과도한 양보를 하는 치명적 실책을 범하게 된다. 그 결과 미국은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일본에게 상실한 만주일대의 이권을 다시 소련에게 넘길 것을 비밀리에 약속하여, 소련원수 스탈린에게 남만주 철도 지배권과 대련 등 중국의 주요 항만 사용권 등을 허용하는 등 많은 양보를 함으로써 후일 중국공산화의 기원이 되었다. 

    그 이유는 이 양보가 결국 소련이 점령한 만주에서 노획한 일본 관동군 무기와 식량 등의 막대한 보급품을 중공군에게 넘겨주어서 후일 중국대륙의 공산화에 크게 기여했으며, 나아가 소련군이 38선 이북으로 신속하게 진공하여 한반도를 분단시키는데 상당부문 기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1944년 후반기부터 건강이 좋지 않았던 루즈벨트는 얄타회담의 2달 뒤에 4월 13일, 조오지아주의 웜스프링스(Warm Springs) 휴양지에서 뇌일혈로 사망했다. 그때 그의 나이 63세였다. 결국 그의 장거리 얄타외유는 그의 건강을 해치고 말았던 것이다.

    무리하게 추진된 루즈벨트의 얄타회담이 미국이 소련에게 전후 동북아시아에서의 많은 양보를 초래했을 뿐만 아니라 급기야 그 자신의 건강을 해치고 수명을 단축시켰던 것처럼, 김대중의 2차 평양의 남북정상회담도 김정일에게 엉뚱한 양보를 하거나 그 자신의 건강을 해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다가, 보수우익과 시민단체들이 거론하는 김대중의 방북을 반대하는 4가지 중대한 이유가 있다.

    첫째로, 김대중은 방북의 명분이 “남북연방제의 후속조치를 취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것은 대부분의 국민들이 반대하는 긴요한 사안이다. 둘째로, 김대중은 80세의 고령으로 건강이 좋지 않다. 하루에 한두 차례씩 투석을 실시해야하는 형편이다. 세 번째로, 그의 열악한 건강상태는 불건전한 판단력과 불완전한 기억력을 초래하고 이로 인해 국익에 손상되는 합의서를 서명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네 번째로, 김정일의 성격상 김대중이 빈손으로 평양에 갈 수는 없다. 열차에 가뜩 실고 갈 선물 보따리가 도대체 무엇인가? 달러뭉치, 양담배, 양주, 쌀, 기름, 한우소고기, 슈퍼컴퓨터, 슈퍼비아그라, 등등??? 결국 피 땀 흘려 일해서 바친 국민들의 혈세만 낭비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김대중은 이런 여론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요지부동이다. 방북특사 임채정을 면담하여 지침을 하달했고, 그를 위시한 열린우리당 5인이 평양을 방문하여 김대중 평양행의 물꼬를 트기위한 사전작업에 들어갔다. 

    김대중의 평양행 고집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인데, 첫 번째는 작년 27 : 0이라는 재보선의 완패로 말미암아 재집권 실패에 대한 공포감 때문이다. 그는 오히려 노무현 대통령보다 더 초조감을 보이면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두 번째는 김정일 몰락에 대한 불똥이나 여진이 자신에게 튀지 않을까에 대한 공포증이 겹치고 있다. 자칫하여 좌익세력의 제3차 재집권에 실패하면 의혹투성이인 현대그룹의 정몽헌 회장 자살사건과 현대그룹 비자금 재조사 등을 통해 김정일에게 갖다 바친 현대비자금 내역에 대해 재조사가 착수될 것이고, 자칫하면 전두환과 노태우에 이어서 세 번째로 구속되는 대통령이 될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이런 망신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결사적으로 피해야한다. 말년을 편안하게 여생을 마치려면, 친북좌익세력의 재집권 밖에 없다. 

    유일한 타개 수단은 남북한 언론과 세계 언론의 관심을 총동원시킬 수 있는 2박3일간의 서울-도라산-개성-평양으로 향하는 북행열차를 타고 남북연합이라는 통일 이벤트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아직도 남한에서는 자신(김대중)의 말씀이라면 ‘예수의 산상설교(山上 說敎)’처럼 하늘같이 떠받들고 숭배하는 분위기가 엄존하는 데 이런 현실을 잘만 활용할 수 있다면, 민심의 이반을 틀어막아서 정국의 반전을 노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다.

    2000년 6월, 김대중이 평양 방문시에 60만명의 평양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인파에 묻혀서 너무 감격한 나머지 어쩔 줄 몰라 했던 필자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운명의 그날 6월 13일, 필자가 NHK 생방송을 틀어보았을 때 깜짝 놀랐다. 평양시민들은 발을 동동 구르면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면서 “김대중, 김대중”이 아니라 “김정일, 김정일”을 외쳐대는 것이었다. 충격적인 광경이었지만, 북한의 실상을 잘 알 수 있는 풍경이었다. 

    이번에는 김대중의 방북시 그가 푸짐한 선물보따리를 푼다면 김정일이 동원할 100만명의 평양시민들로부터 열화와 같은 대환영을 받을 지도 모른다. 방문날짜는 6.15 공동선언의 6주년 바로 그날쯤에 평양에 도착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미국이 압박을 가한 김정일 해외 비자금 동결 조치로 인해 벌어진 초유의 북한식 IMP, 달러 부족사태 때문에 2월 16일 자신의 생일날 잔치에 추운 겨울 날씨에 평양길거리에 강제 동원된 평양시민들에게 먹고 입을 것을 제대로 선사하지 못했던 김정일의 쓰라린 마음은 어떠했을까? 이런 난감한 상황에서 김대중이 공산당 간부들과 평양시민들에게 줄 선물보따리를 김정일에게 화끈하게 전달한다면, 김대중은 김정일을 감동시키면서 ‘남한의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의 역할을 하게 되어서 2000년 10월 노벨평화상의 단독 수상에 대한 빚을 어느 정도 갚게 되지 않을까? 

    김대중은 그 여세를 몰아서 김정일에게 남측이 주장하는 ‘남북연합’과 북측이 주장하는 ‘낮은 단계의 고려연방제’의 절충 및 타협을 위한 신속한 후속조치의 실천을 촉구하고 이와 함께 노무현-김정일 남북 정상회담의 개최를 강력하게 권고하면서 김정일이 즉석에서 이를 수락하는 연설을 하게 하여 그 두 안건을 합의문으로 마련하게 된다면, 김대중의 2차 방북은 성공의 대미를 장식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벌써부터 김정일을 알현하려고 기차표를 암표라도 사고 싶어서 안달하는 약 100여명의 남한 친북인사들 정치인, 언론인, 교수, 문인, 예술가, 연예인 등을 대동하면서 방북쇼를 연출해야 직성이 풀리겠다는 그의 조급한 마음이 약간은 이해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라도 김대중은 결코 빈손으로 갈 수 없다. 이들이 먹을 식량은 가지고 가야한다. 이미 김대중은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정부차원의 지원 약속을 받아놓은 상태이므로 두려울 것이 없다.

    대다수 국민들의 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김대중이 2차 방북을 강행하려는 것은 퇴임한 미국 대통령으로서 김일성을 만나고 노벨평화상을 타는 등 대외적으로 명성을 떨친 지미 카터를 벤치 마킹한 퇴임 대통령의 한국형 모델을 탄생시키려고 몸부림치는 ‘DJ식 애국충정(愛國忠情)’으로 보아야 할 것인가? 만약 국민여론이 김대중이 원하는 대로 덩실덩실 춤을 추게 된다면, 2007년의 친북좌파세력의 3차 집권은 힘들지만, 간신히 달성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자신의 재임시절 야당에 대한 도청사건으로 국정원장이 검찰에 구속된 얼룩진 자신의 부도덕성에 대해서 어느 정도 국민적 면죄부가 주어질 것이 아닌가? 무사히 귀국한다면, 김대중은 친북좌익세력에게 '결코 죽지 않는 노영웅'의 대접을 받게 될 것이다.

    김대중이 처한 방북플랜의 가장 큰 딜레마는 김정일의 알현(謁見)에는 공짜가 없다는 점에 있다. 이 점을 그는 너무 잘 알고 있다. 과거 국내의 유수 기업체 회장들과 정치인들마다 김정일을 면담할 때 엄청난 선물 보따리와 달러현찰을 싸들고 갔지 않았던가? 김대중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는 노벨평화상을 염두에 두고 2000년 6월 평양회담 직전에 현대그룹에게 압박을 가해서 5억달러를 김정일에 상납했었지 않았나? 국민들 몰래 김정일에게 국가예산을 상납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또 대기업체의 희생밖에 없는가? 대우그룹과 현대그룹은 이미 대북사업의 부작용으로 공중 분해되었고, 남은 대기업은 삼성과 LG이다. 이건희 삼성그룹회장의 갑작스런 출국과 돌연한 귀국, 또 그의 갑작스런 ‘8,000억원의 사회환원’ 선언은 또 무슨 정경유착의 흑막이 있는 것인가? 이 돈들이 친북좌익단체들의 먹을거리가 되지 않도록, 감시할 필요가 있다. 벌써 노무현 대통령은 정부가 이 돈을 관리해야한다고 나섰다. 이중 일부가 김대중의 평양행 열차 편으로 북송되지 않도록 양심적인 시민단체들과 보수언론들이 부단히 감시해야 할 것이다.

    이번 김대중이 평양방문을 굳이 철도행으로 고집하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북한의 철도보수사업에 돈 많은 남측이 지원, 협력해 주라는 뜻이 함축되어있다. 북한측 철도는 이미 낡아서 40킬로 이상을 달릴 수가 없다. 과연 건강이 좋지 않은 김대중이 그런 거북이 열차를 타고 평양을 가는 일이 바람직한가? 이미 2월 3일에 이철 철도공사 사장이 북한을 다녀왔는데, 인터뷰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열차를 통해 방북하는 것은 불가능할 이유가 없다”면서 “그래서 그 가능성을 열어두고 철도를 이용하는데 전혀 불편하지 않도록 만반의 준비를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대중의 철도행 방북의 숨은 의도는 김정일에게 달러 현찰을 주는 것은 국민적 저항을 받을 가능성이 커지므로 북한의 기간산업을 지원하는 방식에 개통식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남한이 도라산역에서 개성을 거쳐서 평양, 신의주까지의 철도선, 침목, 전기배선, 철도차량 등을 새로 교체해주고 김정일이 그 보수된 철도를 통해서 편안한 상태에서 서울을 방문하도록 배려해 주라는 뜻이 담겨져 있다. 

    김대중이 평양에서 김정일을 면담했을 때, 남한의 남북연합과 북한이 주장한 낮은 단계의 연방제를 논의할 개연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개성을 방문하고 돌아온 열린우리당의 친북 핵심파 김원웅 의원은 “김대중이 방북한다면, 연방제 논의가 있을 것”이라고 언급한 것은 예사롭게 볼 사안이 아니다. 만약 김정일이 연방제 논의의 전제조건으로 주한미군철수, 국가보안법 폐지, 평화협정과 불가침조약 등을 언급한다면, 김대중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만약 김대중이 김정일의 이런 전제조건에 대한 충분한 대책도 없이 “차후 긍정적 차원에서 재검토하자”는 식으로 2차 남북한 김대중-김정일 공동합의문에 서명한다면, 그로 인해 남한에서는 엄청난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게 될 것이다. 

    그러면 김정일이 김대중에게 선사하여 한국인들의 불만을 잠재울만한 선물보따리는 무엇인가? 

    첫째로, 상징적 의미에서 북한에 있으면 전혀 이용가치가 없는 고령의 국군포로들과 납북어부나 납북승무원들의 일부를 철도편으로 귀환하게 하거나, 아니면 금강산에서 납북된 남북한 이산가족들의 면회를 추진하거나, 아니면 북한의 이산가족들의 1주일간 서울 방문을 허용함으로써 김정일 위원장의 ‘통 큰 양보정신’을 남북한 사회에 언론을 통해 크게 부각시킨다. 그리하여 남한사회가 김정일 위원장의 ‘대해(大海)와 같은 위대한 포용력’에 감동하도록 하여 그들 이산가족이 상봉할 때마다 기쁨의 눈물바다를 만들게 하는 것이다. 

    둘째로, 김대중이 제안하는 형식을 통해서 전격적으로 김정일이 노무현과의 남북정상회담을 수락하는 제스처로 김대중의 방북은 감동의 절정을 이룰 것이다. 이미 남한의 이해찬 전 국무총리를 비롯한 집권고위층은 “만약 김정일 위원장이 만나주겠다고만 약속한다면,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달려가겠다”고 애걸했었다. 그렇다면 마땅한 회담 장소는 어디인가? 암살을 두려워하여 철통같은 경호로 해외 나들이하는 김정일이 과연 남한을 방문할 배짱이 있을까? 아마도 개성, 금강산, 도라산역, 서울, 제주도 등이 거론될 것이다. 

    세 번째로, 김정일은 김대중과의 합의문에서 대외에 자신의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서 개성과 신의주 특구를 지목하여 개혁개방을 위한 추가적 조치를 립서비스 차원에서 선언할 가능성이 있다. 

    네 번째로, 김정일은 위조지폐와 양담배 위조에 대한 책임을 ‘아래 것들’에게 전가시키면서, 미국에게 화해의 제스처를 보낼 것이다. 이런 방식은 지난번 일본인 납치문제가 불거지면서 사용했던 상용수법이다.

    김대중의 철도를 통한 평양행은 향후 정치풍향도와 2007년도 대선에 커다란 폭풍우를 몰고 올 가변성이 농후한 사안이다. 노무현 정권은 이 여세를 몰아서 남북연합식 통일무드를 조성하면서 재집권을 향한 여론몰이를 시작할 것이다. 남북연합을 거부하거나 반대하는 세력들을 친위 언론방송사를 내세워서 반 통일세력으로 몰아갈 수도 있다. 

    남북한 친선 무드를 잡아가기 위한 이벤트로서 북한 서커스단을 초청하고 축구, 농구, 아이스하키 등을 포함한 남북한 체육대회를 교대로 유치하는 것이다. 또 남북응원팀으로 남북한 유명가수들을 총집합시킨 ‘남북미남미녀응원단’을 조직하도록 한다. 응원팀은 태극기를 배제하고 한반도 국기를 흔들 것이다. 

    북한팀은 비행기편이 아니라 김대중이 깔아놓은 ‘통일열차’를 타고 보무당당하게 도라산역을 통해 서울에 도착할 것이고 그 때 환영인파들도 역시 태극기가 아닌 한반도 국기를 들고 길거리로 나올 것이다. 또 월드컵 축구예선이 남과 북에서 열릴 때, 남과 북측의 ‘월드컵응원단’이 열차로 오고 가면서 남과 북은 축구 등 스포츠열기, 6.15공동선언을 조속히 실천하자는 연방제 통일열기로 뜨겁게 달아올라, 잠시나마 남과 북은 하나가 될 것이다. 

    그런 의도의 낌새를 챈 야당인 한나라당은 김대중의 평양행을 “정치공작”(이재오 의원)이나 “광대놀이”(이규택 의원)의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신북풍’으로 규정하면서 현 사태를 비상시국으로 인식하고 있다. 야당은 김대중의 방북이 가져올 ‘신북풍’을 잠재우기 위한 묘수를 찾는데 혈안이 되어있고, 우익성향의 시민단체들은 벌써 김대중의 방북 반대운동에 들어섰다. 어떤 단체는 김대중이 “이번에 또 가면 돌아오지 말고 아예 평양에 살라”고 간청한다. 어쨌든 병술년은 그의 방북을 둘러싸고 한바탕 큰 소용돌이가 일어날 전망이다. 

    김대중은 여론의 반발에 밀려 마지못해 방북을 6월로 연기했다. 김대중의 방북에 대한 한나라당의 공세가 강화되는 가운데 한나라당은 대변인 전여옥은 그만 실언을 하고 말았다. 2월 22일, 한나라당 대전시당 행사에서 전여옥은 분노와 흥분상태에 사로잡힌 나머지 본의 아니게 그만 김대중을 ‘치매환자’로 몰아버린 것이다. “김정일이 공항에서 껴안아주니까 (DJ는) 치매든 노인처럼 얼어서 서 있다가 합의한 게 6·15선언 아니냐?” 이것은 중대한 오판으로, 야당의 친북좌익세력과 김대중에 대한 연구가 그만큼 피상적이며 즉흥적이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김대중이 기를 쓰고 방북하겠다는 것은 그의 정신상태가 비정상이기 때문일까? 결코 아니다. 김대중이 여론의 반대가 극심함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평양행을 고집하는 이유는 그만큼 북한의 김정일 수령독재체제와 남한의 친북좌익정권에게 다가오는 위기가 코앞에 닥쳤다는 냉철한 현실인식에서 출발한 점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김대중의 방북 기도는 치매상태에서 나온 동키오테식 결단이 아니라, 오히려 치밀하게 종합적으로 검토된 뒤에 나온 정치 9단의 승부수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치매상태에서건 정상상태에서건 김대중이 추진하는 방북이 실행된다면 이것은 남한사회에 미칠 파장이 엄청날 것이다. 이것은, 한나라당 김문수 의원의 지적대로, 김정일이 이미 남한정치의 안방에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음을 말해주는 좋은 사례이다. 대북전문가, 남주홍 교수는 '자유대한수호국민운동'의 초청강연회에서 “김대중의 방북시 추진될 남북연합은 좌우(左右)합작논리, 국공(國共)합작논리로서 예맨(Yemen)식 내란을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과연 야당으로부터 최후의 정치도박(last political gamble) 혹은 정치공작으로 따가운 비판을 받고 있는 소위 DJ의 ‘신북풍’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야당과 보수우익세력의 대응력이 시험대에 올라와 있다.

    <객원 칼럼니스트의 칼럼은 뉴데일리의 편집방향고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