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미 대중들은 열린우리당을 생각하면 강금실 전 장관이나 진대제 전 장관 같은 인물을 생각하기 때문에 도무지 열린우리당이 아무리 좌파라고 공격을 해도 먹히지 않는다. 당연히 좌경화 운운하는 이야기도 소용이 없다. 당장 강남을 보라. 참여정부가 들어서고 난 뒤 집값이 얼마나 많이 올랐는가.

    대중의 눈높이에 서서 생각해 보면 어이없는 대목이다. ‘좌파정권’에서도 강남아파트 가격이 그렇게 올랐는데 ‘우파정권’이 들어서면 강남 아파트 가격은 얼마나 오를 것인가. 못 가진 대중들 입장에서는 도저히 배가 아파서 한나라당을 선택할 수 없을 수도 있다.

    이제 독자들도 눈치를 챘겠지만 내가 우려하는 바는 지금 이런 상황이 노무현 대통령의 함정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쉽게 말하면 적당히 중도적 스탠스로 정치를 펴면서 한나라당으로 가기에는 싫고 민주노동당은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하는 군중을 잡아둔 뒤 그들을 일종의 정치적 인질로 삼아 열린우리당 주변세력의 장기 집권을 꾀하려는 의도가 아니겠냐는 것이다.

    이 ‘중도정권’은 야금야금 대중들에게 돈을 나눠준다. 그리고는 보수세력들이 이를 비난하도록 만든다. 보수세력들이 ‘포퓰리즘’이 어떻고 하며 비난을 퍼부으면 잽싸게 진보좌파들이 출동해 한국 보수세력에게 몰인정한 악질 기득권세력의 딱지를 찰싹 붙인다.

    그렇다고 해서 진보좌파들이 ‘중도정권’을 비판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경화를 막아야 한다며 더욱 비판한다. 하지만 이들 ‘중도정권’ 덕택에 진보좌파들은 살 만할 것이다. 적어도 그들은 한나라당이 집권한 것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 뻔하다. 중도정권은 결국 한나라당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진보좌파들에게 약점잡힌 신세이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게 되면 한국 보수진영의 처지는 그야말로 ‘닭 좇던 개 지붕쳐다보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정작 자본주의의 최대 수혜계층인 부유층은 중도좌파 사회가 되더라도 계층 고착화 때문에 자신들의 위치는 계속 유지될 것이고 정 사회가 문제가 있으면 결국 대중들이 일어나 보수적인 방향으로 세상 바꿔 줄 것이라고 안심하고 보수운동에 무관심하다. 그리고 일부 보수인들은 중도-진보진영에 선을 대고 유력 권력자와 골프를 치러 간다. 그러나 정작 보수운동 진영은 골프는 고사하고 걱정 때문에 주말에 편안하게 잠도 못 잔다.

    한편 중산층들은 우물쭈물 눈치를 보고 있다. 지갑을 열어 보수운동을 후원하자니 공연히 권력자에게 찍혀 ‘불이익’을 볼 것 같고 남의 ‘권력’을 키워주는 일에 공연히 돈 댈 이유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무리 봐도 세상 이럭저럭 제대로 굴러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굳이 지갑을 열고 싶지도 않고 보수운동에 관심을 두고 싶지도 않다.

    노 대통령과 허유엄살(虛誘掩殺) 계책

    이런 와중에 빈곤계층은 계속 비참하게 죽어가고 있다. 시중의 경제난은 아직 완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그런데 이것도 앞으로 다가올 2007년의 대선에서 시중에 돈이 많이 풀리면 반짝 나아질 지도 모른다. 이렇게 되면 보수사회의 경각심은 다시금 해이해 질 것이다.

    한편 이런 상황에서도 서민층은 ‘죽자 살자 노무현’이다. ‘노무현’이 아니면 대안이 없다. 한나라당은 싫고 민주노동당은 비현실적이다. 그리고 민주노동당은 지지세가 지금은 아직 적은 편이어서 열린우리당이나 노무현 대통령이 아니면 한나라당을 막을 수 없다.

    그러니 ‘죽자 살자 노무현’이고, ‘죽자 살자 열린우리당’이다. 내가 볼 때 열린우리당과 노 대통령의 지지율 20-30%는 이런 이유에서 붙어 있는 것이다. 대략 이런 반 한나라 세력 30% 내외와 한나라 세력 30% 내외가 아옹다옹하고 있는 형국이 지금의 정국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제 정리하면 나는 노무현 대통령이 삼국지에 나오는 허유엄살(虛誘掩殺) 계책을 쓰고 있다고 본다. 허유엄살 계책이란 삼국지에 나오는 조조가 완성에 있는 장수-가후 군을 칠 때 나오는 이야기이다. 조조는 완성의 동문이 수리중이라 허약하다는 것을 알고 서문에 장수-가후군을 집중시킨 뒤 동문을 기습하려고 서문을 집중공략한다. 그런데 장수군의 책사 가후는 이런 조조의 심산을 정확히 읽었다. 그래서 가후는 허유엄살이란 계책을 써서 동문에 매복군을 배치했다. 조조는 그 사실을 모른 채 병력을 빼돌려 동문을 쳤고 결국 가후의 매복군에 걸려 참패했다.

    마찬가지다. 노무현 대통령과 중도-진보진영의 목표가 무엇이든 간에 이미 그들은 더 이상 좌파가 아니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오직 ‘권력’이다. 그들은 권력을 위해 좌와 우를 마음대로 오간다. 그러나 한국 보수진영은 아직도 그들을 좌파라고 죽어라고 공격해 댄다. 그런 뒤 반노정서를 이용해 정권을 차지하려 한다. 그런데 이런 전략은 이미 노무현 대통령에게 모두 간파당한 상태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은 마치 축구에서 나오는 오프사이드 트랩처럼 능수능란하게 좌와 우를 오가며 보수를 농락한다. 한-미 FTA를 해서 농민이나 서비스업 종사자들이 피해를 보면 그들이 오히려 진보좌경화 될 수 있다.

    왜냐?

    먹고 살기 힘들기 때문에. 그렇지만 FTA 자체를 하게 되면 노 대통령은 이득을 본다. 일단 우파색을 갖게 되어 ‘좌파’란 공격을 피해가고 떨떠름한 동맹을 지속하고 있는 미국에게 선물을 안겨 줄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장기적으로 안정적 지지기반인 ‘좌파’들이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을 계산하면 노 대통령은 ‘일거삼득’을 올리고 있는 셈이다.

    한국 보수 중산층 서둘러 정신차려야

    삼국지에 보면 이런 내용도 나온다. 위나라의 명장 사마의 중달은 제갈공명을 추격하다가 자신이 촉나라 근방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을 알아낸다. 바로 제갈공명은 자신이 가장 잘 아는 곳으로 적을 유인해 적을 격멸한다는 것.

    다시 말하면 사마의는 자신이 위나라 주변에서 점차 촉나라 주변으로 자신도 모르게 끌려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간파한 것이다. 마찬가지다. 지금 우리 사회는 서서히 노무현 대통령과 중도-진보진영의 손아귀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당장 우리는 불과 얼마 전에 목청을 높였던 사학법과 같은 이슈를 점차 잊어가고 있지 않은가.

    개구리의 예를 들어보자. 개구리는 처음부터 뜨거운 물에 집어 넣으면 팔짝 팔짝 뛰면서 살기 위해 발버둥친다고 한다. 하지만 개구리를 찬물이 든 냄비에 넣고 천천히 가열하면 서서히 죽어간다고 한다. 나는 우리 보수사회가 이런 개구리처럼 되어 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다. 어느덧 긴장을 풀고 ‘설마 세상 뒤집어 지겠거니’하고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불안하다.

    이제 그나마 부유층은 사실상 보수진영을 떠났다. 빈곤층은 비명 지를 기력도 없다. 보수 중산층들은 우물쭈물 눈치만 보는 중이다. 이런 와중에 보수사회의 젊은이들은 자꾸만 줄어든다. 한나라당은 50대 이상의 장년층이나 찍는 ‘장년당’으로 전락해가고 있다. 아마 머지 않아 한나라당은 이대로 가면 ‘노년당’으로 무너져 내릴 것이다.

    한국 보수진영에는 그나마 중산층 기성세대들이 남아있다. 중산층 기성세대 보수인들은 제발 냉정히 현실을 보기 바란다. 기성세대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비웃을 때 젊은이들이나 해외골프 보수, 룸살롱 보수들은 뒤에서 보수 기성세대들을 비웃는다. 노무현 대통령이 고립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 보수진영이 고립되고 있는 것이고, 한국 기성세대 보수 중산층들이 대중과 괴리되어 고립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보수사회는 지금 수많은 국민들에게 ‘왜 보수여야 하는가?’하는 질문에 대한 뚜렷한 감동적인 답을 못 주고 있다. 지금 우리 보수사회는 이것을 먼저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다. 그리고 제발 우리 보수인사들은 현실을 냉정히 보기 바란다.

    나는 배 부른 보수 돼지보다는 차라리 배 고픈 갈릴레오가 낫다고 본다. 제 2의 갈릴레오가 많이 나와서 세상 안 뒤집어졌다고 쿨쿨 잠들어 있는 ‘보수 돼지’들을 좀 깨워 주길 바란다.

    세상은 보수를 중심으로 돌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