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기성세대는 영-호남을 가리지 않고 공통점이 있는 듯 하다. 그 공통점이란 전반적으로 노무현 대통령을 얕잡아 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체로 한국의 5060 기성세대들은 영남과 호남에 관계없이 보수적이며 가부장적인 경향을 가진다. 물론 보수성향의 정도는 약간 다르지만 그것도 영남과 호남의 이해관계 때문에 그럴 뿐일 가능성이 높다.

    원래 호남의 기성세대들은 그다지 진보적이지 않다. 그러나 호남고속철도나 DJ 대북정책 등의 이야기만 나오면 강력하게 옹호하고 나선다. 가령 호남고속철도의 경우 경제성 문제를 지적하고 나오면 ‘왜 호남은 개발하면 안되냐’고 반론을 한다. 그러니까 시장원리보다 지역균형개발이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이다.

    참여정부의 이념적 정체

    이런 식의 특이한 행보는 참여정부도 마찬가지다. 당장 한-미 FTA문제 등과 같은 사안을 보면 참여정부는 마치 보수정권인 듯 보인다. 그러나 사학법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공공성을 강조하는 모습이나 은근히 미국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내는 모습을 보면 마치 진보좌파 정권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보수사회에서는 열린우리당을 좌파정권으로 지목하고 있으나 정작 민주노동당과 같은 진보좌파 집단에서는 열린우리당을 보수정권으로 지목하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참여정부는 진보정권일까? 보수정권일까? 내가 결론을 내리면 참여정부는 중도정권이다. 한마디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편을 찾아 오락가락하는 정권인 셈이다.

    한국 보수사회의 저변이 쉽게 넓어지지 않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젊은이들에게 ‘참여정부가 좌파정권’이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강조하는 것이다. 현재 한국 사회를 사는 젊은이들에게 참여정부가 좌파정권이라고 이야기하면 대부분 이해를 못한다. 나 역시도 참여정부가 좌파정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참여정부는 좌파정권이라고 하기에는 이미 오른편으로 많이 나와 있다. 아무리 보수사회 주류의 입장을 고려해서 참여정부를 ‘좌파정권’이라고 하려고 해도 엄격한 학문상의 잣대를 들이대 보면 참여정부를 좌파정권이라고 부를 수 없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갈릴레오라는 천문학자가 있었다. 이 학자는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를 포함한 태양계의 별들이 돌고 있다는 지동설을 신봉하는 학자였다. 그러나 당시 교회는 신앙의 가르침에 따라 천동설이 옳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천동설이란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을 포함한 별들이 돌고 있다고 믿는 가르침이다. 결국 갈릴레오는 교회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지동설을 포기했지만 재판정을 나서며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중얼거렸다고 했다는 설이 있다.

    훗날 지동설은 천동설을 누르고 과학적 사실로 밝혀졌다. 지동설이 옳다는 결정적인 근거는 바로 별의 시차였다. 별의 시차라는 것은 같은 별이라도 지구의 움직임에 따라 별의 위치가 다르게 보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동설로는 천동설보다 훨씬 쉽게 행성들의 시운동을 설명할 수 있다고 한다.

    갈릴레오가 종교재판소에서 탄압을 받던 시기는 유럽 사회에서 종교의 권위 때문에 과학이 기를 못 펴고 살던 시대였다. 나는 마찬가지로 우리 보수사회 내부에 잠재해 있는 기존의 광신적 반공주의나 지나치게 교조적인 반노-반 좌파 시각이 보수진영 내부의 사회과학 발전에 저해요소가 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많은 보수인들이 의외로 한국 보수진영 내부에서는 읽을만한 사회과학 서적이 출판되지 않는다고 개탄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사회과학 서적을 경제성 때문에 출판할 수도 없거니와 다른 사고방식을 좀처럼 용납하기 꺼려하는 보수사회 풍토가 보수사회의 사회과학 발전을 가로막는다는 점이 있다고 본다.

    한국 보수는 ‘그 밥에 그 나물’

    흔히 보수진영에서는 열린우리당-민주노동당을 싸잡아 ‘좌파’라고 지칭하는 경우가 많으나 실제로 그 안을 들여다 보면 엄청나게 다양한 세력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당장 열린우리당의 예를 들어보자. 열린우리당에는 중도좌파와 중도우파가 공존하고 있다. 정치에 관심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열린우리당 내 친노 직계와 김근태 의원을 대표주자로 하는 이른바 ‘재야파’는 엄연히 다른 노선을 가진 조직이다.

    뿐만 아니다. 민주노동당도 마찬가지다. 민주노동당 내 NL과 PD의 대립은 이미 우리 보수사회에도 잘 알려져 있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좌파도 구좌파와 신좌파로 갈린다. 진보진영에서 말하는 구좌파란 쉽게 이야기하면 권위적이고 권력을 집중화하려는 경향을 띄는 좌파집단이다. 그러니까 동구권 공산주의가 구좌파에 가깝다면 신좌파는 탈 권위주의적이고 권력을 분산하려 했다. 또한 구좌파가 보다 집단주의적이라면 신좌파는 보다 개인주의적인 느낌을 준다.

    그리고 진보진영에는 보다 원리적인 사회주의 그룹과 현실 타협을 위해 온건한 입장을 견지하자는 사민주의 그룹으로 나눠지기도 한다. 한마디로 이런 식으로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 그리고 기타 진보세력들은 복잡하게 분파가 되어 있는데 한국 보수진영은 몽땅 싸잡아 ‘좌파’로 뭉뚱그려 버리니 소위 ‘가방 끈’ 긴 젊은이들은 한국 보수인사들이 하는 이야기가 하나같이 ‘촌스럽게’ 느껴지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많은 젊은이들은 한국 보수사회를 전부 ‘그 밥에 그 나물’로 생각한다. 하는 이야기가 거의 비슷비슷하다는 거다.

    이런 식으로 보수사회를 하찮게 생각하는 한국의 진보좌파 젊은이들은 사회주의 노선을 채용해 사회를 경영하면 사회 전체가 가난해진다는 말도 귀담아 듣지 않으려 한다. 한마디로 고리타분한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불평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젊은이들이 날로 늘어간다는 것이 문제다.

    무섭게 자라나는 좌파들

    나는 얼마전에 ‘고등학생 좌파’를 만나 본 일이 있다. 고등학생임에도 민주노동당을 지지하고 주변에 진보좌파 논리를 전파하고 있었다. 우리는 지난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무려 227만표나 정당득표에서 얻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더군다나 민주노동당 핵심 지지계층은 젊은 세대들이기 때문에 이들의 동생이나 친구들이 앞으로 가세할 경우 민주노동당의 세력은 앞으로 500만표, 아니 1000만표에 가까운 수준까지 자랄 지도 모른다.

    나는 당장 눈앞에 있는 열린우리당이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무섭게 자라는 민주노동당이 더욱 큰 문제라고 본다. 민주노동당이 자라면 자랄 수록 우리 사회의 좌경화 현상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열린우리당은 대통령선거나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지지자들의 반 한나라 정서에 따른 전략적 열린우리당 지지에 많이 의존하므로 그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진보좌파 정책을 꾸준히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내가 더욱 우려하는 것은 이런 열린우리당이 다음 대선에서 다시 집권하고 성장에 보다 무게를 두는 경제운영이 아닌 성장과 분배의 양쪽에서 오락가락하는 경제운영을 펼쳤을 때 우리 사회는 더욱 가난해 질 것이란 점이다. 그렇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더욱 가난해진 우리 사회는 좌파를 키우는 좋은 배양기가 될 것이다.

    어차피 신분상승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리고 당장 먹고 살 것이 없기 때문에 좌경화되는 젊은이들이 크게 늘어날 것이다. 당장 어제까지만 해도 같이 경쟁하던 젊은이 가운데 한 명은 대기업에 입사하고 자신은 낙오했다면 누구라도 잘 나가는 젊은이의 발목을 잡고 싶어할 것이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지금의 양극화 추세 속에서 자생좌파가 점점 늘어가는데 참여정부는 한-미 FTA와 같은 보수정책을 내놓고 있다는 점이다. 그럼 도대체 참여정부는 뭘 원하는 것일까? 미국의 압력에 못 이겨 손을 든 것일까? 아니면 참여정부가 진실로 우경화되어 가고 있는 것일까?

    또 재미있는 것은 이해찬 총리와 일부 상공인들의 골프다. 이해찬 총리가 보수진영과의 화해를 위해서 부유한 상공인들과 어울려 골프를 치며 즐긴 것일까?

    참여정부의 희한한 좌파(?)들

    참여정부 집권 초기 사회 일각에서 보수층과 참여정부 세력의 화해를 종용한 바 있다. 흔히 보수사회에서 잘 쓰는 말로 과거사를 캐고 서로 싸워 봐야 소용없으니 서로 편 가르지 말고 ‘화합’해보자는 메시지였다. 그런데 아무리봐도 참여정부와 보수 부유층들은 이미 화해해 버린 것이나 마찬가지 형국이 되었다.

    세상 다 뒤집어 버릴 듯 나섰던 노무현 대통령은 요즘 조용하고, 이해찬 총리는 부유한 기업인들과 어울려 골프를 쳤다가 세인들의 비난을 받고 있다. 특히 ‘서민 위한 정부’를 위해 노무현 후보를 선택했다는 진보성향의 열린우리당 지지자들은 이 총리를 향해 엄청난 독설과 원망을 퍼붓고 있다.

    그리고 참으로 알 수 없는 미스터리 가운데는 이것도 있다. 양극화 때문에 나라가 다 망해간다고 아우성이고, 한국 보수진영의 미래가 암담하며 보수운동하는 이들이 패가망신할 상황에 놓였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마당에 룸살롱 보수, 해외골프 보수는 왜 그리 많다고 소문이 나는지 모를 일이다. 더군다나 요즘 그동안 착실하게 돈을 벌어 둔 보수시민들은 원래 갖고 있던 중형차를 처분해 대형차로 차를 바꾸고 있다고 한다.

    한마디로 오히려 보수사회는 현재 외형상 태평성대인 셈이다. 어이없게도 나라의 위기를 외치고 있는 것은 어떻게 보면 보수운동하는 이들 뿐이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진보좌파 세력도 포함된다. 진보좌파 세력은 한나라당과 노무현 정부 등 반 진보세력들이 결탁해 나라를 다 말아먹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므로.

    보수운동을 하는 이들은 너도 나도 입 모아 보수시민들이 돈도 내려고 들지 않고 나서려고 들지도 않는다고 개탄한다. 그런데 내가 볼 때는 당연히 그럴 수 밖에 없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 같은 이가 나서서 노무현 대통령 칭찬을 해주고 있다. 그리고 진대제 전 장관 같은 인물이 열린우리당의 경기도 지사 후보로 나서고 있다. 또한 재미있는 것은 강금실 전 법무장관의 행보다. 강 전 장관이 화사하게 차려입고 미소를 싹 흘리며 나타나면 국민들은 ‘경탄’을 하고 보수운동하는 이들은 ‘혼비백산’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