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해찬 국무총리가 특유의 고압적이고 꼿꼿한 답변 태도로 또다시 한나라당과 부딪혔다. 이 총리는 국회 대정부질문 마지막 날인 28일 대여 저격수로 이름을 날렸던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과 감정 섞인 설전을 주고받으며 충돌했다.

    홍 의원은 이날 국회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이 총리가 브로커 윤상림씨로부터 받은 정치후원금 등을 집중 추궁하는 것과 동시에 여당 소속인 이 총리가 5·31지방선거를 공정하게 관리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며 ‘총리직 사퇴’를 요구했다.

    홍 의원은 이 총리가 브로커 윤씨로부터 받은 후원금에 대해 “후원금이 바로 정치자금이다. 개인한테 받을 수 있는 상한선이 2000만원인데 그 상한선을 넘느냐”며 액수 공개를 요구했다. 이에 이 총리는 “의혹을 만들려고 안간힘을 쓰시는데, 상한선보다 훨씬 적은 금액이고 당시 선거법상 후원금 제공자의 의사에 반해 밝힐 수 없도록 돼 있다”고 답했다.

    홍 의원은 이어 이 총리가 여당 소속임을 지적하며 “선거를 총괄하는 사람이 여당 당원이면서 국회의원이라면 국민들이 지방선거를 공정하게 관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겠느냐”고 이 총리의 ‘사퇴’를 요구했다.

    이 총리는 즉각 “홍 의원은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박탈당한 적이 있지 않느냐”며 ‘적반하장격’이라고 불쾌함을 드러냈다. 이에 홍 의원은 “(이 총리도) 15대 때 상대방으로부터 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된 적 있지 않느냐”고 맞받아 친 뒤 “나는 총리처럼 브로커하고 놀아나지는 않았다”고 쏘아붙였다.

    그러자 이 총리의 감정이 폭발했다. 이 총리는 “인신모욕하지 말라, 누가 브로커하고 놀아났느냐”며 “사실을 가지고 말하라. 홍 의원은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박탈당한 적 있지만 나는 5번 선거에서 한 번도 선거법을 위반한 적 없다”고 핏대를 세웠다. 홍 의원도 이에 질세라 “사실을 갖고 이야기 했다. 브로커와 같이 골프 친 적 있지 않느냐. 또 정치자금도 받았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목청을 높였다.

    홍 의원이 다시 “실세 총리에게 정치자금을 주고 함께 골프를 친 윤씨를 검찰이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 희대의 브로커 윤씨와 골프까지 친 총리가 5·31 지방선거를 제대로 관리할 수 있겠느냐”며 ‘총리직 사퇴’를 촉구하자 이 총리는 “정치적으로 무엇을 얻으려는지 모르겠지만 도덕적으로나 법률적으로 하나도 거리낄 게 없다”고 일축했다.

    다소 흥분을 가라앉힌 홍 의원이 선거법 위반 지적을 받고 있는 이재용 환경부 장관과 오거돈 해양수산부 장관에 대해 “중앙선관위의 조사결과 위반 여부가 드러나면 파면할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지만 이 총리는 노기를 지우지 않은 채 “파면할 생각 없다. 선관위 조사 결과에 대해서도 예단할 생각 없다”고 짧게 대답했다. 이 총리는 홍 의원의 추궁이 계속되자 “정책 질의를 하라”고 꾸짖기도 했다.

    “김대업·설훈과 공범인 천정배가 선거관리할 수 있나”

    이 총리와 한바탕 설전을 벌인 홍 의원은 다음 타깃을 천정배 법무부 장관으로 돌렸다. 한나라당은 5·31지방선거에 대한 중립내각 구성을 위해 이 총리와 천 장관의 사퇴를 요구한 바 있다. 홍 의원은 천 장관이 2002년 7월 국회 대정부질문 당시 한나라당이 ‘3대 정치공작 사건’으로 규정하고 있는 ‘김대업의 병풍 사건, 기양건설, 설훈 20만달러 수수 의혹’에 대한 허위 사실을 유포했다고 몰아붙였다.
    홍 의원은 “김대업은 허위 사실 유포로 구속됐고 설훈의 폭로도 허위로 판명되는 등 당시 천 장관이 대정부질문에서 제기한 의혹들이 대부분 허위로 밝혀졌다”며 “천 장관이 당시 국회에서 한 발언이 허무맹랑한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기준으로 보면 허위사실 폭로이며 선거법 위반”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천 장관은 이 사람들과 공범이다. 선거 주무 장관을 할 수 있겠느냐”고 사퇴를 촉구했다.

    그는 “선거 주무 장관이 열린당 의원이고 당원이다. 또한 2002년 대선 때 허위 사실을 유포한 전력이 있던 사람이다”며 “이런 사람이 어떻게 지방선거를 관리하겠느냐. 천 장관 전력으로 봐서 신뢰할 수 없으니 그만두라”고 일갈했다.

    이에 천 장관은 “국회 대정부질문 발언이라면 국회의원으로서 그 당시 제기된 여러 의혹에 대해 나름대로 정당한 근거를 가지고 발언한 것”이라며 “다른 기회에 장관이 아닌 국회의원으로서 해명할 기회가 있다면 그때 근거를 댈 수 있다”고 반박했다. 그는 “당시에는 합리적 근거에 의해 발언한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는 이어 “법무장관이 지휘하는 검찰이 선거 사범에 대한 수사를 할 수는 있지만 여당이라고 봐주고 야당이라고 해서 탄압할 만큼의 수준은 아니다”며 “법무장관으로서 여당이든 야당이든 지위가 높든 낮든 최선을 다해 지휘해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거칠게 항의하며 본회의장 나갔지만 '빈손'으로 다시 돌아온 한나라

    홍 의원의 질의가 끝나자 김원기 국회의장은 “상대방을 존중하는 태도를 가져야 하고 어떤 경우에도 감정이 표출돼 선을 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좀 전에 있었던 질문과 답변은 정상 궤도를 이탈했다”고 질타하며 어수선한 분위기를 정리하려 했지만 한나라당 의원들은 이 총리의 답변 태도에 대해 거칠게 항의했다. 

    한나라당은 이어 대정부질문을 20분간 중단시키면서까지 이 총리 답변 태도에 대한 대응 방안 마련을 위한 긴급 의원총회를 소집했지만 별다른 대책 없이 대정부 질의를 남겨 둔 이군현·박재완 의원이 직접 문제 삼기로 하고 본회의장으로 돌아왔다. 

    질의에 나선 이군현 의원은 “여러 차례 (윤씨와 함께) 운동하고 후원금을 받은 것이 놀아난 것이 아니고 뭐냐. 마치 춤이라도 춰야 놀아난 것이냐”며 “말마다 토를 달아서 문제를 만드느냐. 총리의 처신이 적절치 않았다는 게 국민 정서 아니냐”고 이 총리를 강하게 질타했다.

    하지만 이 총리는 한 치의 물러섬도 없었다. 이 총리는 즉각 “비속적으로 말하지 말라. 사실적 관계 다 끝난 것 아니냐. 나는 도덕적으로 흠이 있어 본적이 없다”며 “적절치 않은 행동한 적 없다. 사실을 갖고 잘못한 게 있으면 밝히면 되는데 당시 사건에 조사를 받던 사람도 아닌데 사건에 연루된 것처럼 의혹을 부풀리고 있다”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