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7일자에 실린 사설 '"제일 해보고 싶은 게 야당"이라는 대통령'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대통령은 최근 수석 보좌관들과 만나 “요즘 제일 해보고 싶은 것이 야당”이라고 말했다. 조기숙 홍보수석은 이 말을 받아 “저도요. 비판 좀 한번 해봤으면 좋겠어요”라고 했다. 15일 퇴임한 조 전 수석은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글에서 이런 일화를 소개하면서 “참여정부는 오르막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있다. 기득권 세력이 권력을 잡고 있어 게임 룰이 불리하기 짝이 없다. 대통령이 불도저도 없이 삽으로 상처를 입으며 경기장을 평평하게 고르는 중”이라고 했다.

    현 정권은 2002년 대선 승리로 행정 권력을 차지했고 2004년 총선 승리로 입법 권력도 장악했다. 올해 안에 대법원, 헌법재판소는 한두 명씩을 빼곤 이 정부 들어 임명되는 사람들로 채워진다. 언론은 몇몇 신문만 비판매체로 꼽힌다. 시민단체 역시 “권력감시라는 본연의 기능에 소홀했다”는 자기비판이 나올 정도로 친여 일색이다. 이 정권은 ‘민주주의 권력’의 1, 2, 3, 4, 5부를 모두 손에 쥐고 있는 셈이다. 역대 어느 정권에서도 없던 일이다. 정권이 골을 못 넣는 것은 힘이 없거나 규칙이 불리해서가 아니다. 전략도 없이 우왕좌왕하고 자기 편끼리 태클을 걸기 때문이다.

    대통령도 수석도 “야당이 해보고 싶다”지만 사실 현 정권은 오래전부터 국정 무대에서 내려와 야당 흉내, 언론 흉내를 내고 있다. 대통령은 신년연설에서 “나라를 이렇게 이끌 테니 따라 달라”고 하지 않고 “나는 관중석에 있을 테니 국민들끼리 토론해 정책방향을 정해 달라”고 했다. 청와대 홈페이지는 ‘양극화 시한폭탄 이렇게 둘 것인가’라는 10회짜리 시리즈 보도를 시작했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집권이 꿈이고, 집권하고 나면 “국가 운영 비전을 펼쳐 보기에 임기가 너무 짧다”고 아쉬워한다. 그런데 이 정권은 임기 반환점을 돌자 벌써 국정을 책임지기가 부담스러운지 ‘야당 해보고 싶다’느니 ‘남을 비판해 보고 싶다’느니 하는 퇴행성 투정을 부리고 있다. 남이 할 때는 만만해 보이더니 막상 내가 맡고 보니 되는 일은 없고 어찌 할 바를 모르겠다는 심정인 모양이다. 그렇다면 준비 없이 국정을 맡은 데 대해 국민에게 미안해할 일이지, 있지도 않은 ‘기득권 세력’을 들먹이며 남의 탓, 남의 핑계를 대서야 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