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1일자 사설 '정부의 무분별한 기사(記事)시비에 제동(制動) 건 대법원'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대법원은 10일 김대중 정부 때 국정홍보처가 동아일보를 상대로 낸 반론보도 청구 소송에서 “언론 보도가 전체적 인상이나 맥락에서 의견 표명이나 비평이 핵심이라면 반론보도 대상이 되지 않는다”며 동아일보의 손을 들어주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 보냈다. 동아일보는 홍보처가 2001년 “언론사 세무조사에 관한 언론 보도가 편향·왜곡 보도이고 정부 음해”라는 성명을 잇달아 내자 이를 비판하는 사설과 해설기사를 실었고 이에 홍보처는 동아일보에 소송을 냈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반론보도 대상이 되는 단순 사실보도와 반론보도 대상이 되지 않는 의견 표명의 구체적 구별 기준과 방법을 처음 제시하면서, 의견 기사의 영역을 사설·칼럼은 물론 일반 해설기사로까지 폭넓게 인정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논평은 의견과 주장을 담아 권력 감시와 비판, 여론형성 기능을 해내는 언론자유의 요체다. 그래서 세계 민주국가의 사법부는 논평에 대해선 단순 보도기사보다 훨씬 큰 표현의 자유와 면책 특권을 주고 있다. 미국 대법원도 1974년 “틀린 의견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며 모든 논평이 명예훼손 제소로부터 면책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번 판결은 전 정권 때의 사건에 관한 것이긴 하지만 현 정권에 던지는 의미가 더욱 각별하다. 이 정권은 출범 초기 신문의 사설·칼럼 같은 논평기사에 대해서조차 정부 기관들의 강력한 법적 대응을 독려하는 행태도 서슴지 않았다. 전 정권 시절엔 한 해 40~80건이던 국가기관과 공공단체의 반론·정정보도 신청은 이 정권 들어 200~250건씩으로 폭증했다. 더욱이 이 정권은 ‘신문법’과 함께 언론의 목줄을 죄려고 만든 ‘언론피해구제법’에서 정정·반론 보도 청구요건을 크게 완화해 놓았다.

    따라서 이번 판결은 권력의 무분별한 반론권 남용에 대법원이 제동을 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달 서울중앙지법이 ‘언론피해구제법’에 대해 “언론사에 정정보도를 지나치게 강요함으로써 언론자유와 국민의 알 권리를 제한한다”며 위헌 심판을 제청한 것과 더불어 언론사에 대한 무리한 이의 제기에 경고를 하고 나선 것이다. 국민의 인격권을 보호하는 데 필요한 반론권을 악용해 언론 재갈 물리기에 몰두하고 있는 이 정권 사람들의 일대 전환을 사법부가 명령한 것이나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