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9일자 오피니언면에 이두아 변호사가 쓴 시론 <유시민과 '너나 잘하세요'>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내정자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와 ‘항소이유서’는 1980~90년대에 청춘을 보낸 사람들에게는 큰 울림이었다. ‘1980년대 청년 지식인의 지적 반항’을 대표한 이 저작들은 꾸준히 팔리고 회자됐다. 그의 글 세례를 받은 세대들은 이번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유 내정자를 단연 주목했다.

    청문회장의 그는 얼마 전과 확연히 달랐다. 분장을 하고 가르마도 탔다. 같은 당 386의원에게마저 “옳은 말을 저렇게 싸가지 없이 하는 법을 어디서 배웠냐”고 타박받던 그의 화법에는 불현듯 ‘싸가지’와 겸손이 배어들어 있었다. 유 내정자는 “잡티가 많다”는 언론 지적이 정확한 것이라고 자인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결코 ‘잡티’라고만 치부할 수 없는 ‘큰 티’들이 있다.

    우선 유례없는 ‘여야 공조 반발’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고집스럽게 감싸 안았던 이 ‘국민연금 개혁의 적임자’가 지금 ‘국민연금법 제19조 위반자’가 됐다. 유 내정자가 건강보험료는 꼬박꼬박 내면서도 당장 혜택을 볼 수 없는 국민연금 보험료는 내지 않은 것은 명백한 도덕적 해이다. 유 내정자는 이에 대해 ‘(사소한) 과태료 처분 행위’라고 말한다. 하지만 과태료가 형법상 형벌이 아니라 행정상 제재여서 더 큰 문제다. 국민연금법상 이 ‘과태료’를 매기고 걷는 주체는 보건복지부 장관이다. 본인이 본인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징수하는, 웃을 수 없는 희극을 한국 관료사에 남기고 싶은가? 

    병역 기피자가 국방부 장관이 돼 국방의 의무를 외치고, 형법 위반자가 법무부 장관에 올라 법치를 말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유 내정자는 또 국민연금 지역가입자의 소득 미신고가 많은 것은 ‘제도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1999년 한 신문 칼럼을 쓰면서는 ‘국민연금 지역가입자들이 소득을 자진 신고하지 않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주장했건만, 입장이 확 바뀐 것이다. 

    의견 번복도 씁쓸하지만 그 칼럼을 쓰던 바로 그 시점을 즈음해 1999년 7월부터 13개월 동안 유 내정자가 국민연금을 내지 않은 것은 민망하기까지 하다.

    스스로의 이런저런 ‘잡티’에 대해 유 내정자는 줄기차고도 구차스럽게 변명하고 있다. 박학다식하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운 유 내정자라면, 일본에서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와 거대 야당 대표가 국민연금 보험료 미납 사실이 밝혀져 자진 사퇴한 2004년의 ‘연금 스캔들’을 모를 리 없다. 미국의 법무부 장관 지명자와 국토안보부 장관 지명자가 불법 체류자를 가사 도우미 등으로 고용한 ‘가벼운 흠’이 밝혀져 지명을 철회 당했다는 것도, 유 내정자는 물론 잘 알 것이다.

    유 내정자가 장관에 올라 각종 개혁안을 내놓는다면, 국민들은 시쳇말로 “너나 잘하세요”라는 냉소를 보낼 것이라는 데 이미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유감스럽게도 이 냉소야말로 현 시점의 대한민국 보건복지부 장관에게는 가장 큰 흠결이다. 

    1980년대 중반 청년 수감자 유시민은 편지지 수십 장의 ‘항소이유서’를 쓰면서 “나는 법이 아닌 양심의 명령에 따른다”고 말했다. 유 내정자는 또 이번 청문회 준비 과정에서 “지난 시기 내 삶에 많은 허물이 있었음을 알게 됐다”고 했다.

    그가 이제 할 일은 자명하다. 얼굴과 말에 가르마를 타고 분칠을 하고 ‘싸가지’를 입히는 게 아니다. 그 ‘양심의 명령’으로 ‘많은 허물’을 돌이켜보고 스스로 어떻게 할지 판단하라. 사소하더라도 도덕적 과오가 있으면 장관은 물론 차관급에도 절대 못 오르게 한다고 자랑하는, 유 내정자가 그렇게 사랑하는 이 정권과도 논리를 맞추라. 

    유 내정자 저서의 애독자이던 필자는 이번 청문회를 통해 그에게서 ‘구체적 남루함’을 확인하며 서글펐다. 이 서글픔도 좀 덜어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