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장에서 신입사원들이 잘 알아야 할 것 가운데 하나가 비판을 할 때 비판을 받는 이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도록 하는 기술이다. 그러나 그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구나 비판을 받거나 반론을 듣게 되면 불쾌하기 마련이다. 특히 인간의 속성은 자신보다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 비판을 받으면 비웃음을 듣는 것 같이 느껴져 더욱 화가 나게 된다.

    그러나 우리네 글쓰는 사람들은 그래도 비판을 해야 한다. 비판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나 그 주변의 세력에게 항의를 들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입을 다물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오늘 우선 이야기할 내용은 김영선 의원과 강금실 전 장관의 비교이다. 이런 비교를 통해 김영선 의원을 비판한 뒤, 김영선 의원과 강금실 전 장관의 비교가 마치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을 연상시킨다는 이야기를 할 것이다. 적어도 내가 생각할 때는 내가 지금부터 적을 간단한 내용은 김영선 의원의 정치인생과 한나라당의 운명에 있어 매우 중요한 내용이다.

    김영선 의원과 강금실 전 장관의 공통점과 차이점

    김영선 의원과 강금실 전 장관은 공통점과 차이점을 고루 가지고 있다. 공통점은 다음과 같다.

    ① 나이가 비슷하고(김 의원 60년생, 강 전 장관 57년생), 미인이다.
    ② 서울법대 출신으로 수재형이다.

    반면 차이점은 이렇다.

    ① 강 전 장관의 경우 대중적 인기가 높고 김영선 의원은 낮다.
    ② 김 의원은 경남 거창 출신이고 강 전 장관은 제주 출신이다.

    이제부터 주의깊게 봐야 할 대목이다. 왜 강씨는 대중적 인기가 높고 김씨는 대중적 인기가 낮을까. 아니 더 노골적으로 이야기하면 강씨의 인지도는 높고 김씨의 인지도는 왜 낮을까.

    대중들이 말하는 대로 단순히 강씨가 미인이기 때문일까? 그런데 미인인 것으로 치면 강씨도 미인이고 나경원 의원도 미인이다. 그런데 무슨 이유로 강씨는 언론의 많은 조명을 받고 김씨나 나씨는 강씨만큼 조명을 받지 못하는 것일까.

    개성없는 ‘김’과 개성있는 ‘강’

    물론 인물의 무게도 차이가 있기는 하다. 나 의원은 초선의원이고 강씨는 그래도 법무장관을 역임하고 서울시장 후보로 오르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김씨의 경우에는 3선의원이다. 그리고 경기지사 예비후보로 김문수 의원 등과 경합중이다. 이러니 단순히 인물의 무게가 차이가 있어서 강씨가 김씨에 비해 더 언론의 조명을 받는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왜 강씨는 김씨보다 언론의 조명을 더 받고 있을까?

    ‘개성’때문이다. 강씨의 미모가 김씨보다 낫다 한들 얼마나 더 낫겠는가. 중요한 것은 ‘개성’이고 그 ‘개성’에 따라오는 ‘매력’이다. 그 매력은 정의를 대변하는 것 같은 인상도 포함한다. 김씨의 참모들은 이 점을 직시해야 한다. 김씨가 경기도 지사 경선전에서 선전을 하고, 그리고 앞으로의 정치 인생을 멋지게 해 나가려면 개성이 필요하다. 당연히 개성이 있어야 매력이 있다.

    또한 김씨와 강씨의 비교는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의 비교와도 같다. 사실 대중들이 강씨에게 열광하는 것은 어차피 강씨의 능력 때문만은 아니다. 강씨의 이력-미모나, 심지어 사생활까지도 너무나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대중들은 강씨의 능력에 대해서는 명확히 알지 못하거나 큰 관심이 없을 수 있다.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도 마찬가지다. 요즘은 경제난 등의 문제로 인해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이 낮지만 이제 앞으로 대선정국으로 가면 열린우리당 혹은 열린우리당과 정체성이 유사한 중도-진보진영을 대표하는 정당은 또다시 많은 대중의 지지를 얻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정당이 많은 대중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뚜렷한 개성과 정의를 대변할 것 같은 신뢰 때문이다. 그리고 열린우리당 내 구성원들이나 지지자들은 국민들에게 재미를 준다. 그런 특성 때문에 중도-진보 정당은 대중들과 살갑게 지내고 풀뿌리 같은 자생적 조직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한나라당은 ‘당나귀 귀 임금님’

    반면 한나라당은 어떤가. 외모로 보면 번듯하다. 어디로 봐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대중들과 살갑게 지내지 못한다. 대중들을 재미있게 해주지도 못한다. 대중들이 거리감을 갖거나 거부감을 갖는다. 뚜렷한 개성이나 매력도 없고 정의를 대변하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당장 한나라당을 생각하면 50대 장년의 배 나오고 머리 벗겨진 아저씨가 떠오른다. 반면 열린우리당을 생각하면 30대 젊은이가 떠오른다. 내가 볼 때는 30대 젊은이가 보다 참신해 보이고 정의를 대변하는 것처럼 보인다.

    대중들 입장에서 강씨는 일을 좀 못해도 동정심이 가고 뭔가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다. 반면 김씨는 일을 잘해도 관심이 안 가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을 수 있다. 이런 것은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도 마찬가지다.

    가진 것 많은 보수인, 보수신문, 보수정당을 위해 지갑을 열고 싶지 않을 것이다. 지갑을 열고 싶지 않다면 당연히 동정심이나 관심도 없을 것이다. 보수성향의 국민들 조차도 지갑을 열지 않고, 보수운동에 관심을 두지 않는 판에 일반 시민들이 무슨 관심이 있으랴.

    열린우리당의 지지율이 20%이고, 한나라당의 지지율은 35% 정도 된다고 한다. 국민 10명 가운데 2명은 열린우리당을 지지하고 3-4명이 한나라당을 지지한다는 이야기이다. 많은 보수인들은 반노정서가 팽배해 있고 노대통령이 나라 다 말아먹었다고 불평을 해대지만 그래도 아직 한나라당에 국민 서 너명만 지지를 보낸다. 물론 이것마저도 대선 때는 어떻게 변할는지 모른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옛날 어느 나라에 실력있는 재봉사가 한 명 살았다. 어느 날 그는 왕궁의 호출을 받고 급히 왕궁에 갔다. 그러자 왕궁의 신하들이 그를 임금님 앞으로 데려갔다. 그런데 임금님의 귀가 당나귀 귀였다.

    왕궁의 신하들은 재봉사에게 임금님 귀를 가릴 모자를 만들어 내라고 재촉했다. 그래서 허둥지둥 재봉사는 임금님 귀를 가릴 모자를 만들어 바쳤다. 재봉사가 집에 가려하자 왕궁의 신하들이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란 사실을 누설하면 죽일 것이라고 협박했다.

    재봉사는 겁이 나서 절대 입을 다물겠노라고 약속하고 떠났다. 그러나 재봉사는 입이 간지러워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재봉사는 인적없는 갈대숲에 들어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쳤다. 그런데 그 일이 있은 후 많은 이들이 갈대숲에서 이상한 소리가 계속 나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나라 전체에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라는 괴상한 소문이 널리 퍼져 버리고 말았다고 한다.

    한편 나는 뉴데일리에 와서 불이익을 감수하고 외친다.

    ‘한나라당의 귀는 당나귀 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