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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3일자 오피니언면 '경제초점'란에 이 신문 박정훈 경제부장이 쓴 '우리만 위기가 아니라고?'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작은 단자(短資)회사에서 출발해 4대 은행으로 성장한 하나은행 고위 임원이 이런 말을 한다./ “내가 입사한 이래 지난 30년간 한 번도 위기가 아닌 해는 없었다. 실적이 좋아도 새해 초면 어김없이 ‘위기니까 분발하자’는 경영진의 메시지가 나왔다. 그 말에 다시금 신발끈을 졸라매고, 그렇게 뛰다 보니 대형 은행이 되더라.”
건전한 위기감을 조성해 조직원을 자극한다…. 노무현 대통령과 정부 사람들은 ‘위기’란 말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지만, ‘위기 경영술’은 세계의 초일류기업들이 즐겨 쓰는 공통의 노하우다.
예컨대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회장은 작년 10월 직원들에 이메일을 보내 이렇게 다그쳤다. “우리는 일부 핵심기술에서 이미 후발주자이며, 빠르게 변하지 않으면 위험하다.” 세계 최강의 기업이 ‘후발주자’며 ‘위험하다’는 표현까지 쓰고 있다.
그런가 하면 세계 1위 자동차 메이커로 부상한 일본 도요타는 내놓고 죽는 시늉하는 ‘엄살경영’으로 유명하다. 오쿠다 히로시 회장을 비롯, 역대 경영진은 입만 열면 “아직 멀었다, 위기의식을 늦추지 말라”며 긴장감을 부추겨왔다.
직원을 더 부려먹으려는 얄팍한 경영술이라고?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런데 기업만 그런 게 아니다. 앞서 나가는 선진국 정부들은 새로운 이노베이션(혁신)이 필요할 때 종종 ‘건설적 위기의식’을 활용하곤 했던 것이다.
1960년대 초 소련에 첫 유인(有人) 우주선을 추월당한 미국 정부의 위기감은 상당했던 모양이다. 당시 케네디 정부는 그런 심정을 숨기지 않고 국민들에 호소했다. 그리고 달 정복이라는 야심 찬 비전을 제시, 국가적 에너지를 결집시켰다.
미국이 우주 강국으로 부상하고 소련으로 하여금 군비 경쟁을 포기케 한 것은 이것이 출발점이 됐다. 위기를 비관이나 좌절 아닌, 역전의 기회로 반전시킨 데서 케네디 리더십의 위대함이 읽힌다.
위기 요인은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나 있다. 그것을 ‘비관론’이라고 뭉개버리는 나라는 실패하고,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나라는 성공한다. 유럽연합(EU)은 미국과의 경쟁력 대결에서 뒤지는 초조함을 ‘마드리드 아젠다’라는 미래 전략서로 발전시켰다.
‘한국 쇼크’를 절묘하게 활용한 일본은 또 어떤가. 메모리 반도체와 초고속 통신망에서 한국이 앞서 나가자 일본 정부·재계·언론은 “한국에 추월당했다”고 호들갑 떨었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의지’를 갖고 부풀린 측면이 적지 않았는데, 덕분에 일본은 산·관·학(産官學) 합동으로 반격의 실마리를 만들 수 있었다.
IMF사태쯤 터져야 위기라고 생각하는 한국 정부 사람들로선 이해가 안 갈지도 모른다. 위기 얘기만 나오면 “비관론을 조장한다”고 귀를 틀어막는 사람들이니 또 “참여정부 헐뜯기”라고 흥분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밖을 내다보면 우리가 처한 상황에 오싹해지고, ‘한국은 이미 선진국’ 운운하는 정부의 태평함에 머리가 쭈뼛해진다. 한국 경제가 지난해 4% 성장률에 겨우 턱걸이한 사이 중국은 9.9%의 고속성장을 질주했다. 포스코의 한 임원은 “추격 가능 거리까지 쫓아온 중국을 생각하면 등골이 서늘해진다”고 했다.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인 미국 대통령조차 며칠 전 국정연설에서 특정 국가(중국·인도)를 “경쟁국”이라고 노골적으로 지칭하면서 “자만할 여유가 없다”고 채찍질한다. 이런 세상이니 한국 경제가 지닌 무한한 잠재력을 발휘 못하고 저(低)성장에 빠져있는 작금의 현실이 보통 위기가 아니다.
눈길을 밖으로, 미래로 돌리면 무엇이 필요한지 분명해지는데, 그것은 바로 ‘건설적 위기의식’이다. 미래를 낙관하고, 우리의 잠재력을 확신하기 때문에 더더욱 오늘을 걱정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