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이익 200조, 한순간에 1000조 손실될 수도전례 없는 호황 뒤 이어진 하락 사이클 대비 시급정부 앞장서 외부 변수 최소화 … 총력전 나서야
  • ▲ 최태원 SK회장이 지난 20일 미국 워싱턴DC 샐러맨더 호텔에서 열린 ‘TPD 2026’ 행사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SK그룹 제공
    ▲ 최태원 SK회장이 지난 20일 미국 워싱턴DC 샐러맨더 호텔에서 열린 ‘TPD 2026’ 행사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SK그룹 제공
    영원한 것은 없다지만,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를 보면 끝없는 독주를 이어갈 것이란 기대감을 지우기 어려울 정도다. 20만전자·100만닉스가 현실화됐고, 두 회사의 시가총액은 2000조원을 넘어섰다. 대한민국 1년 GDP가 단 두 회사에 집중된 셈이다. 이따금 들려오는 AI 버블론에 흠칫 놀랐다가도, 영업이익 200조원 전망을 담은 증권사 리포트와 밀어올리는 주가 차트를 보면 걱정보단 희망 가득한 낙관론에 마음 가기 마련이다.

    동 트기 직전이 가장 어둡고, 일몰 전이 가장 붉게 타는 것처럼 전례 없는 호황 뒤에는 지독한 하락 사이클이 뒤따랐다. 지금 승승장구하는 SK하이닉스도 2001년 닷컴 버블 붕괴 뒤 이어진 반도체 부진에 채권단 관리하에 들어가는 수모를 겪었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뒤에 찾아온 반도체 쇼크는 삼성전자조차 흔들리게 했다. 역대급 영업이익과 시가총액의 폭발적 성장은 아이러니하게도 축배보다 경고음에 가깝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최근 미국 워싱턴 연설에서 "SK하이닉스의 올해 영업이익이 1000억달러를 넘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지만 (반대로) 1000억달러 손실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특히 고대역폭메모리(HBM)의 이익률이 범융 D램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꼬집으며 "AI 시대 시장왜곡 현상도 심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장 변동성이 커지며 사업 계획이 의미가 없어지고 있고, 그에 따른 경영 불확실성이 크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특히 "변화의 속도가 빠른 것이 뉴노멀이 된 시대를 지나면서 가장 강한 존재가 아니라 잘 적응하는 존재가 살아남는다"는 최 회장의 말은 흘려들을 수 없는 얘기다.

    한국 반도체 기업들은 2013년~2014년 스마트폰의 폭발적 수요와 2017년 데이터센터 증설 열풍에 등떠밀려 막대한 설비투자에 나섰다가 2019년 미중 무역 분쟁 이후 역대급 부진을 겪은 바 있다. 그때보다 훨씬 많은 투자금이 필요한 AI 열풍 속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고민은 깊어질 수 밖에 없다. 최 회장도 "데이터센터 하나 짓는데 거의 500억달러가 들기 때문에 에너지 비용을 제외하더라도 인프라 구축에 5조달러가 필요하다"며 "우리가 해법을 갖고 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다"고 했다.

    더 엄중한 문제는 기술력 밖의 영역에서 불거지고 있다. 기업 의사결정으로 해결할 수 없는 외교·정치·사회 영역에서 벌어지는 변수다. AI 반도체 생산에는 막대한 전력과 용수가 필요한데 현재 국내 에너지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하다. 송전망 확충은 지역 갈등과 정치적 이해관계에 막혀 표류 중이고, 탈탄소를 위한 신재생 에너지 전환은 거북이걸음이다.

    뒤늦게 추격에 나선 일본은 파격적인 보조금을 앞세워 우리 기업들을 유혹하고 있고, 중국은 천문학적 지원을 앞세워 추격 고삐를 당기고 있다. 착공을 시작한 반도체 클러스터를 특정 지역으로 옮겨야 한다는 얘기가 쉼없이 흘러나오는 우리 정치권과 딴판이다. 한국이 주저하는 사이 K-메모리 독과점 체제는 무너지고 경쟁국들의 후발 주자들이 그 자리를 꿰찰 가능성이 농후하다.

    반도체 하락 사이클을 대비하는 것은 개별 기업의 몫이 아니라, 국가 명운을 건 총력전이어야 한다. 대한민국 반도체는 지금 '승자의 저주'를 걱정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다. 여기에 반도체는 단순히 기업의 성적표를 넘어 국가 경제 안보의 최후 보루로 자리매김했다. 기업은 기술과 인프라를 통합하는 혁신에 매진하고 정부는 이를 뒷받침하는 사령탑을 꾸려야 할 때다. 영원한 독주는 없지만,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축배보다 다음 사이클을 한발 먼저 준비하는 곳이 주인공이 됨은 분명하다. 대한민국 반도체의 시간은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