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일보 23일자 오피니언면 백화종 칼럼'란에 이 신문 백화종 주필이 쓴 '큰 꿈을 꾸는 이들에게'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 30년 안팎 직업 구경꾼으로서 정치판을 들여다보면서 김영삼,김대중 씨와 그의 추종자들은 운이 좋은 편이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민주화 투쟁을 하면서 사선을 넘나드는 고초를 다 겪었으나 꿈에도 그리던 집권에 성공함으로써 고초에 대해 넉넉한 보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물론 두 김씨 외에도 2차 대전 이후 정치 후진국에서 반독재 민주화 투쟁 등을 통해 집권한 경우는 허다하다. 또 그러한 현상은 세계 곳곳에서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나 민주화 투쟁이나 전쟁 등에서 혁혁한 성과를 올려 그 공적을 인정받고서도 정치적으로는 보상받지 못한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심지어 구국적 희생을 했음에도 보상은커녕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스러져간 넋들은 또 얼마나 많겠는가. 

    윈스턴 처칠은 국민에게 손가락으로 승리의 V자를 그려 보이면서 피와 땀과 눈물을 호소하여 2차 대전에서 독일에 승리함으로써 백척간두에 놓였던 조국 영국을 구했다. 그러나 그의 보수당은 전쟁이 끝난 뒤 실시된 총선에서 패배함으로써 그는 실각했다. 변화를 원했던 영국 국민은 전쟁은 전쟁이고 정치는 정치라는 식으로 구국의 영웅이지만 보수였던 처칠을 외면했다. 

    영국 헌정사상 첫 여성 총리로 ‘철의 여인’으로 불렸던 마거릿 대처는 인플레,저성장,노조파업,지나친 복지 등 놀고 먹자는 식의 이른바 영국병에 철퇴를 가했다. 영국병이 치유될 무렵 당과 국민은 대처에 싫증을 내게 됐고 그는 제 발로 권좌에서 떠나야 했다. 

    프랑스가 나치 독일에 함락되자 해외에서 임시정부를 이끌고 위대한 프랑스를 외침으로써 국민의 자존심을 회복시킨 드골은 프랑스의 자랑이자 카리스마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그 역시 프랑스에 평화와 안정이 정착되자 국민으로부터 외면당해 국민투표에서 패한 뒤 낙향해야 했다. 

    열린우리당의 전당대회를 앞두고 집권당의 차기 대선 주자 자리를 겨냥한 김근태,정동영 씨 등 지도급 인사들의 전초전이 뜨겁다. 그들의 공격 대상이 당내 상대 후보를 넘어서 한나라당 인사들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공방의 범위가 넓어지는 건 자연스런 일이고 후보들의 거시적 안목을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측면도 있다. 다만 멋진 승부를 기대하는 기자가 우려하는 바는 공방이 자칫 과거 지향으로 흐를까하는 점이다. 예컨대 나는 민주화 세력이고 깨끗한데 당신은 독재 기득권 세력이고 부패했다는 식으로 말이다. 

    전혀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곤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이 같은 캠페인은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 노무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3탕을 우려먹었기 때문에 더 이상 약효가 없지 않을까 싶다. 기자도 직선제 개헌 투쟁 등을 취재하느라 최루가스깨나 마셨지만 그 때의 민주화 세력도 이제는 레퍼토리를 바꿀 때가 된 것 같다. 개발 독재 운운하는 투의 공격이 현실 정치에 대한 불만과 겹쳐 오히려 ‘그 시대’에 대한 향수를 자극할 수도 있다. 

    정치 지도자는 시대의 흐름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2차 대전에서 나치로부터 나라를 지킨 처칠도,모두가 포기한 영국병을 고친 대처도,위대한 프랑스의 자존심을 찾아준 드골도 과거의 영광과 공로만으로는 정상의 자리를 유지하지 못했다. 정치 지도자의 등장과 퇴장,그리고 부침을 한두 가지 잣대로 재단하는 건 무리이고 위험한 일이다. 그렇더라도 시대가 바뀌는 걸 국민의 눈높이에서 알아차려야 하는건 지도자의 필수적 자질로서 지도자로서의 성패를 가늠해 볼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한국 국민도 과거의 민주화 투쟁 경력 등을 흉될 거야 없지만 빛바랜 양반 족보 이상으로는 여기지 않는 것 같다. 양반 뼈다귀 우려먹는 시대가 아니어서 장차 어떤 사람이 될 것이냐를 지도자 선택의 기준으로 삼을 게 분명하다. 지도자로서 출사표를 던지는 사람들은 빛바랜 족보 대신 앞으로 일할 청사진,비전을 제시하고 능력을 입증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