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일보 11일자 오피니언면에 송상용 아시아생명윤리학회장 겸 유네스코 세계과학기술윤리위 부위원장이 쓴 시론, '노무현과 황우석'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한국이 세계 언론의 주목을 끈 일이 세 번 있었다. 한국전쟁, 평양 남북 정상회담, 그리고 황우석 스캔들이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세 번째 사건에 대한 세계의 열띤 관심은 앞의 둘보다 훨씬 크고 넓다. 지금 한국은 중대 위기에 처해 있다. 이 사건의 처리가 나라의 장래를 좌우한다고 보는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그런데도 이 문제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의 인식은 안이하기 짝이 없다.

    황우석이 뜨기 시작한 것은 8년 전 김대중 정부 때였지만 온 세계에 알려진 것은 2004년 2월 '사이언스'에 발표된 논문 때문이었다. 이때 한국생명윤리학회는 '치료용 인간배아복제 연구윤리 특별위원회'를 만들어 윤리문제 점검에 나섰다. 황우석은 1년 뒤 서울대 강연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문제점을 시인했지만 공개토론은 끝내 거부했다. 대다수 언론은 이 중요한 문제 제기를 거의 보도하지 않았고 정부도 철저히 무시했다. 이 모든 것이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된 단초였다.

    PD수첩이 방영된 뒤 황우석은 난자를 얻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과오가 있었음을 자백했다. 그의 논문과 관련된 연구윤리 의혹은 모두 사실임이 명백히 드러났다. 국제사회에서 이런 과학자는 살아남을 수 없다. 그렇다면 황우석은 거기서 끝났어야 했다. 연구가 사기였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다. 정부의 첫 반응은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이었고 즉각적인 조치는 전혀 없었다. 문제가 수습의 길로 들어갈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친 것이다. 해를 넘기고 두 달을 끌 일이 아니었다.

    한국생명윤리학회에 황우석의 논문이 가짜라는 제보가 들어온 것은 지난해 6월이었다. 학회는 극비리에 조사를 진행해 허술한 데가 많음을 찾아냈으나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MBC의 끈질긴 추적과 젊은 과학자들의 검증이 밝혀낸 결과는 충격이다. 과학사상 연구 사기가 꽤 있지만 이토록 파문이 큰 사건은 처음이다. 이 엄청난 사기가 정부의 비호 아래 진행되었다는 사실에 세계가 놀라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꿈쩍도 않고 기다려 보자는 얘기만 한다.

    황우석 영웅 만들기를 청와대가 주도한 것은 천하가 알고 있다. 그 주역인 황의 공동저자 박기영 보좌관은 자숙하기는커녕 공석에 버젓이 나타나 빈축을 샀다. 스타 과학자 띄우기를 집행한 과학기술부와 생명공학을 감시해야 할 보건복지부도 아무 반성이 없다. 황우석에게 연구를 독려했고 들통이 난 뒤 문병까지 간 오명 부총리는 명예 제대했으며 새 복지부 장관에는 '황빠'로 알려진 유시민 의원이 임명되었다. 이런 가운데 계속 일이 터지고 있다. 제대로 교육받은 윤리학자가 하나도 없는 국가생명윤리심의위의 위원장은 탄핵소추 때 노 대통령의 변호사였는데 황우석을 도운 것이 문제되어 물러났다. 국정원 관련설도 관심거리다. 

    모든 책임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이 너무나 느긋하다. 과학기술인 신년인사회에서 노 대통령의 한가한 연설을 들으며 큰일 났다는 생각을 했다. 지난 10월 세계줄기세포허브 개소식에서 "생명윤리 논란이 과학 연구를 막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이 정치인들의 몫"이라는 기막힌 말을 했던 그는 윤리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다. 책임을 묻겠다고 했으나 물러나는 과기부 장관에게 최고의 찬사를 보냈으니 누가 책임져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적당히 덮고 넘어가겠다는 뜻이라면 아직도 문제의 심각성을 전혀 모른다고 볼 수밖에 없다. 과거사 청산에 그토록 집착해 온 그가 직전 과거는 어물쩍 넘기려는 모순을 어떻게 볼 것인가? 

    국제 생명윤리학계는 황우석 스캔들을 주시하고 있다. 곧 있을 국제회의들에서 이 문제를 다룰 움직임도 보인다. 젊은 과학자들의 진실 규명과 서울대 조사위의 신속한 활동으로 한국의 위신은 다소 회복되었다. 노 대통령의 진지한 사과와 엄한 문책, 그리고 생명공학 개발정책의 전면 재검토가 뒤따른다면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 윤리의 뒷받침을 받은 생명공학은 세계의 지지를 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