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세상은 무대이고,
    모든 남자와 여자는 단지 배우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이 세상에 등장했다가 퇴장한다.
    그리고 개개인은 일생 동안 여러 가지 역할을 한다.
    그의 연기는 일곱 시기로 나누어진다.
    (세익스피어, 『마음가는 대로』)


    우리 모두는 역사의 무대에 등장해서 잠깐 살다가 사라진다. 장구한 우주의 역사, 덜 장구한 지구의 역사, 더 덜 장구한 인류의 역사에 비추어보면 한 인간의 삶은 지극히 짧다. 길어야 80평생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러나 짧은 삶은 절대적이다. 그 삶은 다른 무엇으로 대치될 수도 없고 다른 사람이 대신 살아줄 수도 없는 절대적인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삶은 시간 속에서 시간의 제약만 받는 것이 아니라 공간 속에서 공간의 제약도 받는다.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공간 이동이 자유로워졌다고 하지만 우리는 공간을 초월하여 살 수는 없다. 세계화 시대에도 국경은 엄존한다. 

    우리는 자신의 선택과 관계없이 시간적으로 20세기와 21세기, 공간적으로 한반도에 살고 있다. 같은 시간대에 같은 공간에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대단한 인연이다. 이러한 질긴 인연이 없다면 같은 모양으로 같은 언어를 사용하면서 같은 음식을 먹으며 같은 땅에서 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렇게 소중한 인연을 이해, 사랑, 관용이 아니라 갈등, 증오, 대립의 장으로 삼고 있다.  

    인간의 삶에서 가장 근본적인 갈등은 이기적인 개인과 이타성을 요구하는 공동체 사이의 갈등이다. 개인의 욕망은 공동체의 공익과 끊임없이 갈등을 일으킨다. 개인의 욕망 앞에서는 멸사봉공(滅私奉公), 선공후사(先公後私), 극기복례(克己復禮)와 같은 공동체의 덕목도 무력하다.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이기심, 사적인 성공을 추구하는 욕망은 너무나 자연스러워 인위적인 노력으로 없앨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욕망은 자연이 준 것이기 때문이다. 이기심이 없다면 우리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자연은 우리에게 사적인 이기심만 준 것이 아니라 여러 형태의 사랑도 주었다. 물리학자 프리먼 다이슨의 지적처럼 가족 사이의 사랑은 우리가 가족 차원에서 생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친구간의 사랑은 우리가 부족 차원에서 생존하는 데 도움을 주고, 대화에 대한 사랑은 우리가 문화 차원에서 생존하는데 도움을 준다. 인간 일반에 대한 사랑에 힘입어 우리는 인류적 차원에서 생존할 수 있고, 자연에 대한 사랑으로 지구적인 차원에서 생존할 수 있다. 인간은 이기심과 사랑을 풍부하게 갖지 않으면 인간이 될 수 없다. 

    사적인 이기심을 부정하고 사랑만을 강조하거나, 사적인 이기심을 추구하고 사랑할 줄 모른다면 우리는 개인적인 차원, 또는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 공동체의 차원에서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공동체적인 사랑만 내세워 개인의 이기심을  부정하거나 개인적인 이기심만 추구하면서 더 큰 사랑을 망각할 때 우리는 개인적인 차원이나 공동체적인 차원에서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인간 속에 내재한 이기심과 사랑이라는 두 가지 능력이 함께 잘 발현될 때 개인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 의미 있는 삶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한 해가 지나가고 새로운 해가 시작되고 있다. 광복 60년, 분단 60년이었던 2005년도 저물고 2006년이 시작되고 있다. 사랑보다는 증오, 희망보다는 절망, 화합보다는 갈등, 미래보다는 과거에 집중한 2005년을 뒤로 하고 2006년 첫날 하루만이라도 사랑과 희망, 화합에 대해 생각해보자. 오늘 하루만이라도 나를 버리지 않으면서 우리도 생각해보자. 다른 사람의 이기심을 인정할 수 있는 공감, 나를 넘어 존재하는 것에 대한 사랑이 없다면 나의 삶조차 의미가 없을 수 있다는 상상력을 발휘해보자.
    [신중섭 객원칼럼니스트/강원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 철학 전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