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영해 밖 봉쇄·제3국 선박 나포 불법"해상 봉쇄, '산레모 매뉴얼' 충족시 허용이스라엘, 親팔레스타인 활동가들 석방韓, 호르무즈해협 피격에도 '신중론'통과통항권·항행의 자유 일관성 실종
-
- ▲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1일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발언하는 모습. ⓒ뉴시스
이재명 대통령은 하마스와 교전 중인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해역을 통제하며 한국인 친팔레스타인 활동가들이 탑승한 구호선단을 나포한 것을 비판하며 '국제법에 입각한 원칙론'을 내세웠다. 그러나 이재명 정부는 정작 한국 상선이 피격되고 25척의 자국 선박이 발이 묶인 호르무즈해협 사태에 대해서는 '국제관습법상 통과통항권'이라는 원칙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이란과의 '조용한 외교'에 더 무게를 두고 있다.두 사례 모두 항행의 자유와 해상 봉쇄를 둘러싼 문제이지만 가자지구에서는 '가차 없는 원칙론'을, 호르무즈해협에서는 '선택적 신중론'을 펼치는 모습은 이재명 정부가 내세워 온 '국익 중심 실용주의'의 원칙과 일관성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고 있다. -
- ▲ 가자지구 인근 해역으로 이동 중 이스라엘 군 당국에 체포됐다가 21일 석방된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항해 한국본부(KFFP)' 소속 한국인 활동가 김동현·김아현 씨와 한국계 미국인 조나단 승준 리 씨(왼쪽부터).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항해 한국본부 KFFP' 인스타그램
◆이스라엘, 가자지구로 향하던 한국인 親팔레스타인 활동가들 석방22일 외교가에 따르면 하마스와 교전 상태에 있는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항해'에 참여한 한국인 2명을 가자지구행 구호선박을 나포하는 과정에서 체포했다가 전날 석방했다. 청와대는 이번 석방을 사실상 이 대통령의 전날 국무회의 발언과 '원칙 있는 외교'의 성과로 포장하며 "이스라엘 측이 특별히 한국민 2명을 구금시설을 거치지 않고 바로 추방했다"고 강조했다.강유정 청와대 수석대변인은 전날 브리핑에서 "이재명 정부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행 구호선박 나포 행위를 통해 우리 국민을 체포한 것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한다"면서도 "이스라엘 측이 우리 국민을 즉시 석방한 점을 높이 평가하며 이를 환영한다"고 밝혔다.이어 "이 대통령은 전날(20일) 국무회의에서 체포된 우리 국민의 안전과 권익 보호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하고 국제인도법 등과 관련해 국제규범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며 "이에 정부는 필요한 영사 조력과 외교적 대응에 만전을 기해 그 결과 이스라엘 측이 특별히 한국 국민 2명은 구금시설을 거치지 않고 바로 추방했다"고 설명했다. -
- ▲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0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22회 국무회의 겸 제9차 비상경제점검회의에서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에게 질문하는 모습.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
◆李 대통령 "원칙대로 하자" … 복잡한 국제법적 쟁점 단순화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해상 봉쇄 및 제3국 선박 나포에 대한 이 대통령의 관점은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를 불법적으로 침략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이 대통령은 지난 20일 국무회의에서 "남의 나라를 침략해서 전투 중인 이스라엘이 마음대로 제3국 국적 선박을 마구 나포하고 요즘은 아예 선박 엔진을 폭파해서 침몰시킨다"면서 "그 땅(가자 지구)이 지 땅이냐, 이스라엘 영해냐"고 물었다.외교관 출신인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영해는 아니지만 가자 지역 전체를 이스라엘이 군사적으로 통제하고 있다. 시작은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해서 2000명 가까운 사람을 살상한 것으로부터 촉발됐다"면서 교전 상태와 해상 봉쇄 배경을 설명했다.마찬가지로 외교관 출신인 임웅순 안보 2차장도 "일부에서는 이스라엘의 행위가 항행 자유의 원칙이라는 국제법적 원칙을 위반하고 있으므로 불법이라고 주장하지만 이스라엘은 교전 상태에서 해상 봉쇄 조치는 합법적이라고 반박한다"며 이분법적 해석을 경계했다.그러자 이 대통령은 "법이고 자시고 기본적인 상식이 있는 것 아니냐"면서 복잡한 국제법 쟁점을 '상식'의 문제로 단순화했다. 나아가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국제형사재판소에서) '전범'으로 인정돼 체포영장이 발부돼 있는 것 아니냐면서 유럽 국가들이 네타냐후 입국 시 체포 방침을 밝혔다고 언급했다.이에 위 실장이 "체포영장이 발부된 것은 맞지만 복잡한 문제라서 여기에서 논의하는 것보다는 저희가 검토해서 따로 보고드리겠다"며 선을 그으려 하자 이 대통령은 "최소한의 국제 규범이라는 게 있는데 (이스라엘이) 다 어기고 있다. 원칙대로 하자. 너무 많이 인내했다. 도가 지나쳐도 너무 지나쳤다"면서 강경 대응의 필요성을 강조했다.교전·봉쇄·통과통항권뿐 아니라 국제형사재판소(ICC)의 하마스와 네타냐후 총리에 대한 체포영장까지 얽힌 복합적인 쟁점을 '가자지구 인근 해역이 이스라엘 영해도 아닌데 제3국 선박을 잡아가는 건 상식적으로 불법'이라는 이분법으로 단순화한 것이다. 이스라엘 영해가 아닌 공해에서 제3국 선박을 나포했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불법'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국제법 체계를 사실상 외면한 셈이다. - ◆교전국의 해상봉쇄, 일정 요건 충족 시 국제관습법상 허용전문가들은 이 사안을 둘러싼 국제법 체계가 단순한 '공해 vs 영해' 구도가 아니라고 지적한다. 공해의 자유를 규정한 유엔해양법협약 제87조가 공해상 타국 선박의 임검·나포를 해적 행위나 노예 매매 등으로 엄격히 제한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교전 상태에서의 해상 봉쇄는 해상무력 분쟁법인 '산레모 매뉴얼'(San Remo Manual·1994)이 별도로 다루는 영역이다.교전 상태에 있는 국가가 적국 항만 출입을 차단하고자 공해상에 봉쇄선을 설정하고 제3국 선박을 나포하는 해상 봉쇄 자체는 사전 공표·실효성·비차별성·인도적 예외 인정 등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산레모 매뉴얼이 정리한 국제관습법상 허용되는 수단으로 평가된다.이에 대해 최상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교전 상태에 있는 국가가 해상 봉쇄를 통해 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권리가 자국의 영해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자국의 영해는 원래부터 자국이 통제할 수 있는 것이고 전시 해상 봉쇄의 요체는 적국의 해안이나 항구로 들어가는 길목을 차단하기 위해 적국의 영해 밖, 즉 공해상에 봉쇄선을 설정하는 것에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이어 "이스라엘은 하마스와 교전 상태에 있고, 해상 봉쇄를 미리 공표하고 이를 비차별적으로 집행하는 상황"이라며 "산레모 매뉴얼은 전쟁 상태라는 특수한 맥락에서 봉쇄 요건을 규정한 것이고 일반적인 공해 항행을 다루는 유엔해양법협약 제87조보다 우선하거나 이를 보완하는 해석이 충분히 합리적"이라고 덧붙였다.그럼에도 이 대통령은 가자 해역에서의 이스라엘 해상 통제를 '이스라엘 영토도 영해도 아닌 곳에서 제3국 선박을 잡아가는 행위'로 규정하고 이를 곧바로 국제법 위반과 네타냐후 총리의 ICC 체포영장 이행 문제로 연결했다.해상 봉쇄의 적법성은 봉쇄 선언·실효성·비차별성·인도적 예외 인정 등 복합적인 요건과 앞선 하마스의 공격에 대한 이스라엘의 대응이라는 맥락을 함께 고려해야 하는데 이 대통령이 이를 '영해가 아니면 불법'이라는 이분법으로 정리한 셈이다.주한이스라엘대사관은 전날 입장문을 통해 "플로틸라(선단)는 인도주의적 성격의 것이 아니며 참가 선박에서 어떠한 형태의 인도주의적 지원물자도 발견되지 않았음을 분명히 강조한다"며 "이는 오히려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테러와의 싸움이라는 이스라엘의 임무에서 이탈시키려는 도발"이라고 주장했다.그러면서 "이스라엘은 합법적인 군사 목적에 따라, 그리고 국제법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가자지구에 대한 합법적인 해상 봉쇄를 실시하고 있다"며 "플로틸라의 규모와 크기, 긴장 고조의 위험성 등 특수한 상황을 고려할 때 국제법이 요구하는 바에 따라 합법적인 해상 봉쇄를 효과적으로 집행하기 위해 국제법에 부합하는 조기 조치가 필요했다"고 강조했다.
-
- ▲ 지난 4일 호르무즈해협에서 일어난 한국 선박 화재 사건은 미상 비행체의 타격에서 비롯됐다고 정부가 밝혔다. 외교부는 지난 10일 이러한 내용의 정부 합동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현장 조사단이 기록한 사진을 공개했다. 선체 하단에서 확인된 폭 5m·깊이 7m 파공. ⓒ외교부 제공
◆韓, 호르무즈 해협에선 상선 피격에도 '조용한 외교'이 대통령이 '국제 규범'과 '원칙'을 강조하는 그 시각에도 호르무즈해협에서는 한국 상선들이 국제관습법상 통과통항권, 나아가 '항행의 자유' 원칙을 보장받지 못한 채 발이 묶여 있다. 나무호 피격 이후 호르무즈 안쪽에 갇혀 있던 한국 선박 26척 가운데 1척만이 이란과의 개별 협의를 통해 빠져나왔다.정부는 나머지 25척에 대해서도 '나무호 피격을 선박 탈출 협상용으로 쓸 수 없다', '모든 선박의 자유로운 통항은 협상 수단이 될 수 없다'는 원칙론을 강조하면서 항행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군함 파견은 자제하며 상황 관리에 집중하고 있다. 국제해협에서의 통과통항권은 유엔해양법협약과 관습국제법이 보장하는 강한 규범임에도 호르무즈해협에 대해서는 '원칙'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국제사법재판소(ICJ)는 1949년 '코르푸 해협 사건' 판결을 통해 국제 항행에 이용되는 해협에서 연안국이 평시 군함의 통항조차 막을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 판결은 현대 해양법상 통과통항권 법리의 모태가 됐다.이란은 자국의 유엔해양법협약(UNCLOS) 미비준을 명분으로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하는 선박 전반에 사전 허가·지정 항로·통행료 납부를 요구하는 '사전 통과 허가제'를 도입하고 군함 통항은 연안국 재량에 따른 무해통항 수준으로 제한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코르푸 판결이 확립한 통과통항권은 UNCLOS 비준 여부와 상관없이 호르무즈해협과 같은 모든 국제 해협에 적용되는 국제관습법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이 국제법 학계의 다수 견해다.특히 한국이 핵우산을 의존하고 있는 최우방국인 미국과 연합해 이란과 전쟁을 치르고 있는 이스라엘의 봉쇄 조치에 대해 한국 대통령이 법리적 검토를 생략한 상태에서 최고 지도자의 체포 문제까지 공개 거론하는 것은 외교적 파장을 키울 소지가 있다.이와 관련해 한 전직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이스라엘과 미국이 향후 방산·정보·중동 안보 협력에서 한국을 어떻게 바라볼지에 대한 고민은 물론 이스라엘에 여전히 억류되거나 사법 절차에 연루될 수 있는 우리 국민의 안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결국 가자지구 사태에서는 복잡한 법리를 '상식'의 프레임으로 단순화하며 강경 대응을 주문한 대통령이 정작 자국 상선이 피격된 호르무즈해협에서는 반세기 동안 확립된 국제관습법적 원칙 대신 '선택적 침묵'을 이어가고 있다. 이는 이재명 정부 외교·안보 라인의 정책적 모순과 일관성 결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