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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최종배의 목소리가 산등성이를 타고 울려 퍼졌다.
"휴식!"
수용자들은 모두가 의아해했다. 보위원들의 손목시계는 제각각이었지만 수용자들의 생체 시계는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점심시간이 되면 그걸 알리는 구령보다 먼저 위장에서 종소리가 들렸다. 누군가의 배가 먼저 끓으면 곧이어 옆 사람의 배도 불협화음처럼 따라 울렸다. 그건 단순한 허기가 아니었다. 강요가 체질이 되고, 질서로 닮아가며, 공동으로 묶어지는 생존 약속인 것이다.
휴식시간은 더 정확히 맞출 수 있었다. 시간이 되면 말보다 먼저 어깨가 처졌다. 허벅지 근육이 한계를 알리며 떨기 시작했다. 손끝이 둔해지고 눈꺼풀이 천천히 아래로 밀려 내려왔다. 1분만 늦어도 더워서라기보다는 신체가 녹아내리는 양 식은땀이 흘렀다. 그게 두 줄로 흘러내리면 기합이고, 세 줄이면 연장 작업이었다. 잔등 전체를 적시면 기절이요, 그 모든 감각은 혁명화의 동일한 명령 속에 체질이 체계로 묶이는 생존의 기계화였다.
15호는 이유 없이 멈출 때가 제일 불안했다. 휴식의 이유를 묻고 답하던 사람들은 다소 안도했다. 멀리서 런닝셔츠 차림으로 혼자 앉아 있는 소장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의 뒤에 총 든 병사들이 없다면 그는 개인이다. 그런 소장이라면 15호의 시간도 멈추든가 거꾸로 돌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수용자들은 남자도 여자도 온통 소장 이야기를 입에 물고 모여들었다.
"늙어서 정신 좀 돌아오니 다행이지."
"저놈도 젊었을 땐 최종배보다 더했을 거야."
"늙은 말이 길을 안다더니, 저런 여유도 있어야지."
"소장 오늘 생일인가? 왜 좋은 일 해?"
쌓여가는 통나무 더미 앞, 소장은 홀로 앉아 존재감을 뿜어내며 소리쳤다.
"야야. 붙어 앉지 말고 널찍널찍들 앉아. 냄새나니까."
그때 누군가 입을 열었다.
"주둥이 만담 한 대. 소장이 시켰대."
그 말 한마디에 무게 중심이 옮겨졌다. 수용자들의 시선은 소장을 지나쳐 점점 주둥이 쪽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생체 시계만 같은 게 아니었다. 한데 모이면 생각도, 말도, 감정도 금방 하나로 합쳐졌다. 이런 군중의 입과 귀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소장이었다. 그래서 그는 일부러 그 시간, 그 자리에 휴식을 들고 온 것이다. 사람들의 심리 리듬을 자기 손바닥 안에서 굴릴 줄 아는 자였다. 그는 조용히 수용자들을 둘러보았다. 곧 만담이 터지고 이자들은 웃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시작을 만든 자기 이름도 곧 소문 속에서 함께 흘러갈 것이다. 그 끝엔— 서련화도 혼자 웃고 있을 것이다. 드디어 박수와 함성이 터졌다. 9분조원들은 완전히 들떠 있었다. 이미 건빵을 한 봉지씩 받은 얼굴들이었다.
"이 안에선, 기대가 제일 큰 죄야. 없던 죄를 스스로 만드는 꼴이지."
검은손이 그렇게 말했지만, 도성진은 주둥이를 믿었다. 건빵도 웃음도 작은 기적도 함께 올 거라고 확신했다. 도련님도 마찬가지였다. 박해순에게 사회 맛을 보여줄 생각에 들떠 있었다. 그 맛이 얼마나 짧고 허망한지 알면서도 소장의 빽을 보여줄 기회였다.
통나무 더미 위에 높이 올라선 주둥이가 민유정을 향해 웃었다. 그녀는 얼굴이 빨개졌다. 그러면서도 살짝 떨리는 손으로 손거울을 꺼내 들었다. 이 안에서도 이런 일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기적 같았다. 그래서 사진 찍듯 이 순간을 눈에 담고 싶었다. 그 옆에서 박해순은 더 큰 기적을 고대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도련님에게 있었다. 그가 두 손을 들어 네모난 모양을 만들고 신이 난 얼굴로 활짝 웃었기 때문이었다. 박해순은 그 순간 숨이 차올랐다. 그래서 소리 없이 입 모양만으로 말했다.
"전달?"
도련님은 별생각 없이 엄지손가락을 흔들어 보였다. 그 손짓은 그녀의 가슴 한가운데 커다란 구멍을 냈다. 눈물이 왈칵 고이면서 동시에 넘쳐버렸다. 그 옆에서 김상미는 도성진의 바쁜 등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은 매서웠다.
"저 새낀 오로지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자야. 어떻게 사람이 한 번도 뒤를 안 돌아보고 사냐?"
그녀의 눈동자에 작고 단단한 분노가 맺혀 있었다. 사람들의 박수와 함성이 쏟아졌다. 주둥이는 손을 들어 그 웃음을 잠시 눌렀다. 모두가 숨을 고르는 그 틈에서 그가 입을 열었다.
"오늘 만담 제목은…"
조금 뜸을 들이다가 그가 소리쳤다.
"요덕의 똥개."
사람들은 일순간 조용해졌다. 요덕인데 똥개라니 혁명화 구역에 똥이라니 그 말 자체가 금기어처럼 울렸다. 수용자들은 주둥이와 소장의 눈치를 번갈아 살폈다. 소장은 별말 없이 담배를 꺼내 물었다. '똥개든 뭐든, 웃기기만 해라'는 얼굴이었다. 드디어 만담이 시작되었다. 주둥이가 네 발로 땅에 엎드리며 크게 짖었다.
"멍멍멍! 나는 요덕 개야! 이름도 그냥 개야!"
그러고는 슬그머니 두 발로 일어서 하늘을 향해 삿대질을 했다.
"아무리 성의 없이 지어도, 주인 양반아! 개한테 어떻게 이름을그냥 '개'라고 지어!"
첫 외침에 터진 건 웃음만이 아니었다. 입을 막고 고개를 숙이는 수용자가 있는가 하면 그대로 박수하는 이도 있었다. 금기가 웃음으로 바뀌는 그 짧은 전환의 순간에 사람들은 안도와 쾌감을 동시에 느꼈다. 주둥이가 이번엔 아줌마 흉내를 냈다.
"전에는 새벽에 네편네가 막 야단치는 거야. '너 개야? 개냐고!' 밥 주는 줄 알고 냄비 물고 달려갔더니— 지 남편 보고 그러는 거야! 동네 창피하다면서!"
이번에는 웃음을 참는 사람이 없었다. 손뼉이 터졌다. 장찌엔은 옆사람의 어깨를 치며 웃었다. 치고 보니 다른 분조 여자였다. 그 소리들이 진정될 때까지 주둥이는 입을 다물고 기다렸다. 그리고 바로 그 타이밍에—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니, 동네 창피랑 나랑 뭔 상관인데? 바람은 지 남편이 피웠는데, 왜 '개새끼야' 하며 내 밥그릇까지 집어 던지냐고!"
주둥이의 외침이 작업장 전체를 가르며 울려 퍼졌다. 소장은 웃는 척했다. 담배 연기 너머로 입꼬리를 얇게 그었다. 그래. 잘 웃겨라. 소문만 잘 나게 해라...
"마당에 앉아 이것들 대화 가만히 엿듣자니 어이없더라니까. 지들 병신 짓 하는 것도 전부 내 탓이야. 머리 나쁘면 개대가리래, 눈이 나빠도 개 눈깔이래, 방귀 냄새 난다니까 개코 같대. 이것들 말대로면 '난 개도 아냐'!"
순간, 작업장이 폭발했다. 웃음이었다. 참던 자도, 참는 척하던 자도 목젖 깊은 데서부터 쏟아져 나왔다. 심지어 최종배의 옆에 선 경비대 군인들 사이에서도 피식피식 웃음이 번졌다. 소장도 고개를 돌려 그 뒤에서 '껄껄' 웃었다. 도성진이 두 팔을 크게 휘두르며 과장된 몸짓으로 웃었다. 김상미는 한번 웃고 한번은 그 녀석을 노려보았다.
도련님은 다시 한번 박해순을 향해 두 주먹을 흔들었다. 그걸 본 박해순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전체 수용자들이 다 웃고 있었지만 유일하게 박해순만 울고 있었다. 민유정은 놀라움과 존경, 감탄 등 그 모든 감정이 뒤섞인 눈으로 주둥이를 바라보았다.
"더 기막힌 게 뭔 줄 알아? 저들끼리 날 놓고 속담까지 만들어 돌리더라. 뭐? '저 먹자니 싫고, 개 주자니 아깝다?' 밥 먹다가 열 받아서, 멍! 멍!"
순간, 수용자들 속에서도 똑같은 소리가 터져 나왔다.
"멍! 멍!"
"그래, 너희도 잘 짖네!"
그러자 수용자들은 다음에도 짖어댈 준비에 들떠 있었다. 주둥이가 아줌마처럼 고개를 까닥이며 외쳤다.
"그렇게 짖었더니 주인 녀편네가 이러는 거야. '짖는 개는 물지 않는다고!' 어라? 문다! 으르렁거리다가, 다시 목 빼들고—"
"멍! 멍!"
다시 군중이 외쳤다. 이젠 흉내가 아니었다. 그건 하나의 합창, 하나의 해방이었다. 주둥이가 막대기를 집어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바닥을 내리쳤다.
"그러자 주인놈이 뭐라는 줄 알아? '개도 먹을 때는 안 때린대!' 제 입으로 그러고도 몽둥이 들고 이러는 거야! '개도 나갈 구멍 보고 쫓으랬다!'"
그 말에 웃음이 폭발했다. 다시 중심으로 돌아온 주둥이는 슬픔 섞인 외침으로 입을 열었다.
"하다 하다 나를 아예 똥통에 집어넣더라! '개가 제 방귀에 놀란다'로 시작하더니 기막혀서, '개도 부지런해야 더운 똥을 얻어먹는대!'"
그는 막대기를 쥔 손을 하늘로 치켜들며 울분처럼 터뜨렸다.
"'야! 나도 싸면 더운 똥 나오는 생명이야! 내가 부지런하면 쥐라도 잡아먹지, 왜 네 똥을 먹냐고!'"
주둥이는 또다시 하늘의 태양을 향해 막대기를 마구 흔들었다.
"하니까 이런다. '개가 똥을 마다하랴. 개 눈엔 똥만 보인대! 그래, 내 눈엔— 네 놈이 똥이다! 네 놈보다 나은 나는, 똥개다!'"
마지막으로 그는 태양을 향해 고개를 쳐들었다. "퉤!"
그 침 한 방울은 단순한 타액이 아니었다. 그건 웃음으로 다 씹어 삼켜야 했던 가슴 속의 무엇이었다. 상처에서 흐르는 피는 빨간색이다. 그러나 주둥이가 뱉은 그것은 감정과 정서에서 터진 하얀 핏덩이었다. 주둥이가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하자 수용자들은 일제히 박수를 쳤다. 터지는 손뼉 사이로 그들은 입을 벌려 외쳤다.
"멍! 멍!"
손바닥이, 입이, 서로를 향한 공명처럼 오랫동안 부딪히고 소리를 냈다.
그날 작업장은 진짜 짖는 자들이 이긴 공간이 되었다. 15호의 하늘 아래서 누구는 웃으며 짖었고, 누구는 울면서 짖었다. 그것은 인간이면서 개가 되어 짖어야 했던 멍! 멍! 이었다.
그 메아리를 들으니 소장은 뭔가 뒤끝이 개운하지 못했다. 그래도 자기가 벌인 일이니 웃으며 일어섰다. 그 옆에서 최종배도 마냥 다 웃을 수 없는 표정을 씹고 있었다. 그때, 도성진이 소장 앞으로 달려왔다. 그에게 허리를 깊이 숙였다. 최종배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뭐야, 네놈은? 왜 왔어?"
도성진은 불쌍한 얼굴로 말했다.
"선생님... 건빵..."
소장은 그를 슬쩍 지나쳐 아무 말 없이 걸어갔다. 그러자 최종배가 때릴 듯이 주먹을 쳐들었다. 허탈한 건 도성진만이 아니었다. 만담이 끝나자마자 박해순이 도련님 앞에 달려왔다. 그녀의 얼굴은 흠뻑 젖어 있었다. 도련님은 적반하장으로 되물었다.
"왜 그래? 뭔 일 있었어?"
박해순의 입에서 숨 섞인 한마디가 흘렀다.
"전달됐다면서요?"
도련님이 오히려 반대로 물었다.
"무슨 전달?"
그 말에 박해순은 굳어졌다. 불길하고 두려운 표정으로 도련님이 했던 것처럼 두 손을 들어 똑같은 모양을 그렸다. 그리고 마지막 희망에 매달린 음성으로 물었다.
“손으로 이랬잖아요. 전달했냐고 내 물었잖아요.”
도련님은 오해를 주고도 빈손인 자의 민망함에 억지 웃음을 지으며 변명했다.
"아, 그거... 소장한테 건빵 달라고... 줄 수 있다고... 그 신호였는데..."
말이 끝나자 박해순의 입에서 한마디가 터져나왔다.
"뭐냐구요!"
그러고는 그 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풀썩 주저앉았다. 무뚝뚝해 보였던 여자의 눈물은 울음덩어리였다. 그 소리는 작아서 더 깊어 보였다. 그래서 크게 흔들리는 어깨는 세상에서 제일 큰 슬픔 같았다. 도련님은 그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눈물이 긁히는 숨소리가 매질 같았다. 도련님의 눈에도 물기가 번득였다. 그게 이 여자의 전부였던 걸. 그 하나였던 걸. 그마저도 순간으로 쪼개며 버티던 세월이었던 걸... 박해순은 더 이상 '희망'이라는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그 말은 지금 자신의 무릎 위에서 아무것도 아닌 손짓 하나로 산산이 부서지고 있었다.※ 다음 편에 계속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