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 근대문명 자유민주주의 vs 동방 중화-전체주의동과 서, 어느 편이 올바른 편?중국 정신뮨화엔 오직 위-아래 계급질서 뿐상호존중-호혜평등-공동번영(共同繁榮) 관념 없어역사의 올바른(right) 편은 자유-공화-민주의 가치
  • ▲ 루신의 《아Q정전》표지. ⓒ 문학동네
    ▲ 루신의 《아Q정전》표지. ⓒ 문학동네
    [편집자 주] 
    한국 학계-출판계-언론계 등 지식인 사회는 지나치게 좌파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좌파 지식인들이 담론을 장악, 한국 사회 전반을 좌경화시키고 있다.

    그런 좌경화에 맞서 싸우는 우파 인터넷신문 뉴데일리는《자유의 파숫꾼》임을 자임하고 있다. ① 자유민주주의 ② 자유시장경제 ③ 자유통일 이라는 사시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창간 20주년을 맞은 뉴데일리는기업이 대한민국이다라는 새로운 비전을 선포하고, 그 슬로건에 걸맞는 기획 시리즈를 준비했다.

    《책을 보다》연재가 그것. 매주 한 권의 책을 골라 소개-분석-비평하는 기획이다. 단순 서평 차원을 넘어 반(反)대한민국-반자유민주주의 세력과《담론 투쟁 / 이론투쟁》을 벌여나갈 생각이다.

    열한번째 책으로 루신(魯迅)《아Q정전》이 선정됐다. 필자는 김용철 한국전략포럼 연구위원.《박정희가 옳았다 : 5.16과 10월유신의 정치경제학》의 저자. 이강호란 필명을 사용한다.

    필자는 서울대 사회학과 82학번으로 서울대 총학생회장을 지냈고 한차례 복역도 한 운동권 출신. 한때 마르크스-레닌주의자를 자처하며 이른바《사회변혁》이란 이름의 혁명운동에 몸을 담갔던 인물이다. 그는 "박정희야말로 근대화를 이룬 진정한 진보 정치가"라고 그의 저술에서 평했다. 박정희로 상징 되는 독재체제를 뒤집어 엎겠다는 이른바《민주화 운동가》의 진솔하고 용기있는 자기 고백서로 주목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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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서방과 동방의 정신문화와 가치체계 중 어느 편에 서야하나? 중국에서 자유-공화-민주란 가치의 실현은 가능할까? 수천년 켜켜히 쌓여온 전제정-전체주의 정치문화 DNA가 중국인 뼈와 살 속에 너무 깊숙히 박혀 있기에 요원해 보인다. 작가 루신은《아Q정전》에서 이런 문제점을 지적했다. 
시진핑의 중국공산당(중공)은 이른바《툭색 있는 사회주의》운운하며 공산당 일당독재정을 지속하고 있다. 외양만 바뀌었지 본질은 수천년 지속된 황제 통치 제정과 똑같다. ⓒ 챗GPT
    ▲ 서방과 동방의 정신문화와 가치체계 중 어느 편에 서야하나? 중국에서 자유-공화-민주란 가치의 실현은 가능할까? 수천년 켜켜히 쌓여온 전제정-전체주의 정치문화 DNA가 중국인 뼈와 살 속에 너무 깊숙히 박혀 있기에 요원해 보인다. 작가 루신은《아Q정전》에서 이런 문제점을 지적했다. 시진핑의 중국공산당(중공)은 이른바《툭색 있는 사회주의》운운하며 공산당 일당독재정을 지속하고 있다. 외양만 바뀌었지 본질은 수천년 지속된 황제 통치 제정과 똑같다. ⓒ 챗GPT
    《아Q정전》을 다시 본다 

     ■ 중국 정신승리 문화의 기원

    이재명 이 중국을 다녀왔다. 
    시진핑 은 1월 5일 이재명 을 만난 자리에서한국은 역사의 올바른 편에 굳건히 서서 정확한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한다” 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재명 은 1월 7일 저는 그 말씀을 공자 말씀으로 들었다. ‘착하게 잘 살자’ 그런 의미로 이해했다 고 말했다. 

    훈계의 말씀을차카게 살자로 들었다는 것인가? 
    이재명 으로선 자신이 말해왔던 대로셰셰를 하고 온 셈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 정도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인가? 
     
    중국은 한동안 경제의 고도성장을 구가했다. 
    미국에 맞서는 G2가 될 것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지금 중국은 심상찮은 상태라는 진단이 많다. 
    물론 그래도 중국은 여전히 꿋꿋한 모습을 보인다. 
    역대급 수출과 함께 높은 경제성장률을 달성했다고 자랑한다. 
    미국이 온갖 견제를 하고 있지만, 첨단 산업 분야에서도 큰 성과를 낼 것이라며 열을 올린다.  
     
    앞날을 알 수는 없다. 
    중국이 나름 더한층의 성과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중국의 모습에선《정신승리》의 분위기가 좀 보인다. 
    너무 통속적인 SNS용어를 통해 본 시각인가? 

    그런데 아이러니가 있다. 
    이 용어는 본래는 한국의 것이 아니다. 
    유래는 중국이다. 

    고대로부터의 사자성어는 아니다. 
    근대 중국의《아Q정전(阿Q正傳)》이라는 소설이 기원이다.  

     
    ■《아Q정전》의 정신승리법 
     
    《아Q정전(阿Q正傳)》은 중국의 루신(魯迅, 1881~1936)의 소설이다. 
    루신은 20대초 일본으로 건너가 의대에 진학했다. 
    그러다 글로 중국민을 각성시키겠다고 결심하고 문학으로 방향을 바꿨다. 
    그 대표작이《아Q정전(阿Q正傳)》이다. 
    베이징의 신문《신보(晨报)》의 부록인《신보부간(晨报副刊)》에 1921년부터 이듬해까지 연재되었다. 

    중국 근대소설의 출발이며 세계적으로도 명작으로 평가된다. 
    중국 청조 말부터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나던 당시까지의 근대 격동기가 배경이다. 
    루신아Q 라는 인물을 통해 중국의 문제점을 통렬하게 짚는다.  
     
    주인공 아Q 는 날품팔이로 하루하루를 먹고사는 무지렁이다. 
    《아Q》는 정식 이름이 아니다. 
    아무도 그의 이름이나 내력에는 관심이 없다. 
    그냥 《아퀘이》라고 불렀는데 이를《아Q》라 명명했다 한다. 
    Q 는 청조시대의 변발을 연상케 한다고도 한다. 
    비루함이 집약된 호칭 이다.  
     
    그렇게 보잘것없는 만큼 아Q 는 사람들의 멸시에 시달린다. 
    힘 있는 자들에게 맨날 얻어터진다. 
    그럼에도 아Q 는 강한《자존심》을 갖고 있다. 
    그럴 만한 자신만의 방법이 있었다. 
    바로 정신승리법(精神勝利法) 이다. 

    아Q 는 자신이 “옛날에는 잘 살았고” “견식이 높았으며” “대단한 사람” 이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런 마음으로 자신을 멸시하는 이들을 “노려보면서” 자부심을 다진다. 

    물론 덤비지는 못한다. 
    누군가에게 얻어터져도 “자식에게 맞은 셈 치자” “요즘은 세상이 개판이야” 라며 정신승리 를 한다.  

     
    ■ 정신승리의 짝 강약약강 
     
    아Q 의 이러한 정신승리법 과 짝을 이루는 게 있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강약약강(强弱弱强) 이다. 
    아Q자신이 당한 것을 정신승리위안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약자에게 행패를 부리는 화풀이보상 구한다. 

    아Q 는 마을의 유력자 아들에게 얻어터진 후 정신승리 를 하며 돌아가다 마주친 젊은 비구니에게 행패를 부린다. 
    자신보다 약자여서다. 
    루신그는 감히 강자에게는 분노하지 못하고, 약자에게서만 위안을 찾았다고 묘사한다.  
     
    그러다가 아Q 는 마을 유력자 집에서 일하는 젊은 처자에게 치근덕거리다 혼이 난다. 
    이후 일도 잃어 결국 마을을 떠난다. 

    그런데 그렇게 사라졌던 아Q 가 거들먹거리며 마을에 다시 나타난다. 
    아Q 는 마치 성(城) 안에서 장사를 해 돈을 벌었던 듯이 행세를 한다. 
    그러나 아Q 는 사실은 도둑패거리의 똘마니 짓으로 약간의 돈을 갖게 된 것일 뿐이었다. 
    아Q 는 그 사실을 스스로 자랑스럽게 떠벌인다. 
    아Q 는 다시 왕따가 된다.  
     
    1911년 혁명이 일어난다. 
    신해혁명이다. 
    마을 사람들은 혁명당에 놀라 떤다. 

    그것을 보고 아Q 는 혁명당이 자신의 편이라 생각하고 자신도 혁명당원인 마냥 정신승리 를 하며 돌아다녔다. 
    그러다 혁명당에 가담하러 찾아간다. 
    그러나 무시당한다. 

    한때 그를 두들겨 팼던 마을 지주집안의 아들이 혁명당의 일원이었다. 
    마을의 부잣집 자식들은 가입비를 내고 혁명군에 가담해 있었다. 
    아Q 는 그들이 누리는 것을 함께 할 수 없다는 사실에 분개한다. 
     
    그런데 마을 유력자의 집이 혁명군(인지 그를 사칭한 무리인지)에게 약탈당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아Q 와는 관계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습격의 범인으로 몰려 체포된다. 
    아Q 는 취조를 당하고 진술서에 서명을 하게 된다. 
    그러나 글을 몰랐다. 

    취조자는 그냥 동그라미를 그리면 된다고 한다. 
    생전 처음 붓을 들게 된 아Q 는 정성을 다해 동그라미를 그린다. 
    그리고 아Q 는 마을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총살형으로 처형된다.  

     
    ■《아Q정전》이후 루신의 예견 
     
    아Q 의 삶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허망했다. 
    이것은 외세의 침탈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면서도 대국의식의 정신승리 에만 젖어있던 당시 중국인에 대한 통렬한 풍자였다. 
    루신중국인의 이 같은 정신상태가 바뀌지 않으면 중국의 미래는 없다고 보았다.  
     
    루신《아Q정전》을 쓴 것은 손문의 신해혁명이 있은 지 10년이 지난 때였다. 
    1919년에는 5.4운동이 일어났다. 
    그리고 1921년 7월 23일 천두슈(陈独秀 진독수) 등에 의해 중국공산당 이 창당됐다. 

    루신은 바로 그해《아Q정전》연재를 시작했다. 
    중국인의 정신적 변화에 대한 갈망에서였다. 
    그런데 어땠을까? 
     
    4년 뒤인 1926년 루신《아Q정전의 유래》(阿Q正傳的成因)라는 아Q정전 해설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민국 원년은 이미 지나갔으므로 뒤쫓을 수 없지만 이후로 만일 다시 개혁이 일어난다면, 여전히 아Q와 같은 혁명당이 출현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1926년 당시는 손문을 이은 장개석의 국민당이 주도권을 갖고 있던 때였다. 
    2년 전인 1924년에는 1차 국공합작이 있었지만, 1927년 합작은 깨졌다. 
    루신은 1930년 결성된 중국좌익작가연맹(中國左翼作家聯盟)에 참여했다. 
    루신장개석의 국민당에 비판적인 입장이었다. 

    그는 공산당 가입을 권유받았다. 
    그러나 루신은 공산당에는 끝내 가입하지 않았다.  
     
    아Q와 같은 혁명당이 출현” 을 경고한 그의 말은 국민당뿐 아니라《미래의 혁명 세력》전체를 향한 우려였다. 
    그런데 그의 경고는 중국공산당 의 미래에 대한 예언이 돼 버렸다.  

     
    ■ 또 다른 아Q 홍위병들 
     
    아Q 는 혁명이 도래하자 즉각《혁명당》을 자처했다. 
    그에게 혁명이란 자신이 이전에 당했던 모욕을 되갚을 수 있는 기회였다. 
    권력을 얻어 똑같이 억압자가 될 꿈을 꾼 것이다. 

    많은 혁명 서사에서 억압받는 자는 언제나 피해자이자 도덕적 주체로 등장 한다. 
    그러나 루쉰의 작품 속 아Q 는 그렇지 않다. 
    아Q권력에 당하면서 똑같이 행세할 권력을 욕망 한다.  
     
    모택동루신을 찬양했다. 
    모택동 이 부추겨 1966년 일어난 문화혁명 당시 새로운 사회주의적 인간형 을 외치는 홍위병 들이 10년을 휩쓸었다. 
    홍위병 들은 어떤 존재였을까?  
     
    “아Q는 죽었다. 
    아Q는 비록 여자가 없었지만, 그러나 비구니가 저주했던 것처럼 자손이 끊기지는 않았다. 
    고증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아Q에게는 후손이 있었다. 
    후손이 있을 뿐만이 아니라 아주 번성해서 지금도 끊이지 않고 있다…….” 
     
    1981년 루쉰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서 만든 영화《아Q정전》의 마지막 내레이션이다. 
    홍위병 들은 다시 나타난 아Q이었다. 

    아Q혁명은 좋구나. 가증스러운 놈들, 모조리 엎어버려야 한다며 혁명당원 마냥 설치려 했다. 
    홍위병 들은 마치 아Q 의 채 이루지 못한 갈망을 이루려는 듯 “혁명무죄 조반유리” 를 외치며 모조리 때려 부수고 다녔다.  

     

  • ▲ 《아Q 근성》의 대폭발. 《아Q》의 후예 홍위병들이 이른바《문화대혁명》중 저지른 패악질. 이런 일이 어디 근대에만 있었을까. 수천년 중국 역사 자체가 온통 이런 가치체계 위에 형성됐다. 이런 역사가 올바른 편? 여기에 줄서라고? 이런 시진핑의 정신승리 발언 역시 기가 차다. 아Q 무리들의 수괴(우두머리)임을 스스로 천명한 셈이다. ⓒ
    ▲ 《아Q 근성》의 대폭발. 《아Q》의 후예 홍위병들이 이른바《문화대혁명》중 저지른 패악질. 이런 일이 어디 근대에만 있었을까. 수천년 중국 역사 자체가 온통 이런 가치체계 위에 형성됐다. 이런 역사가 올바른 편? 여기에 줄서라고? 이런 시진핑의 정신승리 발언 역시 기가 차다. 아Q 무리들의 수괴(우두머리)임을 스스로 천명한 셈이다. ⓒ
    ■ “아Q와 같은 혁명당” 중국공산당 
     
    루쉰이 우려한 대로였다. 
    문혁 의 소동이 가라앉고 모택동 이 죽은 뒤, 등소평 이 등장해 이른바 개혁개방에 들어섰다. 
    등소평 “먼저 부자가 되라” 고 했고 중국은 본격적으로 경제성장을 시작했다. 

    그러더니 공산당 무리들이 어느덧 특권 지배층이 되었다. 
    아Q자신도 힘을 갖고 군림하려던 꿈은 그렇게 공산특권층의 지배로 실현 되었다.  
     
    중국은 평등을 내걸고 공산주의 혁명을 했다. 
    그러나 중국에는 평등이 전혀 없다. 
    중국은 내적으로 극심한 계급사회 신분사회다. 
    공산당은 특권층이 되어 전제정 으로 지배한다. 
    그런데 중국인은 예전 전제왕정 시대에 그랬듯이 그것을 당연한 질서로 받아들인다.  
     
    루신이 포착한《아Q》라는 캐릭터는 소설 속 얘기만이 아니다. 
    전제정의 전횡적 지배 아래 장구한 세월 동안 길들여져 오면서 형성된 중국인의 국민성 이었다. 
    루신은 그 국민성에 변화가 있기를 갈망했다. 

    하지만 공산당 지배가 굳어지면서 위에서 아래에 이르기까지아Q식 강약약강은 완연하게 다시 재현됐다. 
    중국인은 서로 간의 본질적인 가치적 존중이라는 게 없다. 

    힘에 줄을 대는 꽌시(關係) 에 몰두한다. 
    공산당 특권층의 전제정 지배 는 그 위에 서있다.  
     
    중국공산당루신이 우려했던 또 다른《아Q당》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중국과 중국민 자체가 아Q 가 됐으며, 시진핑 은 그 《우두머리 아Q》로 군림하고 있다.  

     

  • ▲ 이재명 대통령의 민주당 대표 시절 취임 첫 공식행사는 주한중국대사 예방(알현)이었다. 일개 국장급 외교관에게 머리 조아려
    ▲ 이재명 대통령의 민주당 대표 시절 취임 첫 공식행사는 주한중국대사 예방(알현)이었다. 일개 국장급 외교관에게 머리 조아려 "셰셰"하는 모습에 많은 국민들이 분노했다. ⓒ 연합뉴스
    ■ 정신승리가 대외적 위세의 행세로 
     
    중국의 그 같은《아Q스러운 면모》는 외적으로도 발현된다. 
    중화주의 대국 이라는 정신승리 가 되살아났다. 

    시진핑 은 위대한 중화민족의 부흥 이라는 중국몽 을 외쳤다. 
    현대판 중화주의 다.  
     
    중화주의 는 정신승리 그 자체다. 
    중화의 화이(華夷)관념은 한족(漢族)이 자신을 우월한 중심으로 두고 주변 모든 민족들을 오랑캐로 멸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중국 역사상 한족 왕조는 한-송-명 셋뿐이다. 
    그 외의 모든 시기는 그들이 멸시한 오랑캐들에게 지배당한 시대였다. 
    그러나 중국은 그 모두를 위대한 중화의 역사라 강변한다. 
     
    만물 중국 기원설 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무조건 중국 기원이다. 
    김치나 한복만이 아니다. 
    모두에 대해 모조리 다. 

    2019년 발족한 중국의 한 역사연구협회는 “서구문명은 중국문명의 하위문명” 이라는 주장을 제기했다. 
    “영어는 중국의 사투리에 불과하다” 고까지 했다. 
    “한국어와 일본어, 러시아어 역시 중국어 사투리의 일종” 이라고도 했다. 
    《환단고기》가 약해 보인다..  
     
    허세에 멈춘 정신승리 는 웃고 넘어갈 수도 있다. 
    문제는 시진핑의 중국몽 은 그에 멈추지 않고 위세의 행세를 한다는 것이다. 

    중국의 한국에 대한 언사가 단적인 경우다. 
    시진핑 은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였다” 고 말했다. 
    그리고 중국 외교부의 부국장이라는 자가 “소국이 대국에 대항해서 되겠느냐” 고 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방자한 언행이 줄을 잇는다.  
     
    중국의 정신문화에는 상호존중(相互尊重) 호혜평등(互惠平等) 공동번영(共同繁榮)의 관념이 없다
    오직 아래 위가 있을 뿐 이다. 

    내적으로는 물론 대외적 국제적으로도 그러하다. 
    중화주의의 화이(華夷)의 관념내적인 위계의 전제정 질서 와 양면의 짝을 이룬다. 

    과거의 얘기가 아니다. 
    지금 공산당의 중국도 그대로다. 
    중국은 내적으로는 전제정 지배를 하면서 외적으로는 도처를 향해 좌충우돌 을 계속하고 있다.  

     
    ■ 중국은 올바르지 않다 
     
    서방은 중국이 개혁개방을 하여 경제성장을 이룩하면 국내적으로는 민주화가 진전되고 국제적으로는 세계 모두가 함께 이익을 누리는 공동번영이 이루어져 갈 것이라는 기대를 했다. 
    순진하기 짝이 없는 착각이었다. 
    서구에는 역사적으로 중국에 대해 늘 그런 안이한 판타지적 믿음이 반복되곤 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다. 
    예전에도 그리고 현대에도 그렇다. 
    기 소르망(Guy Sorman, 1944~)은 20년 전인 2006년 《중국이라는 거짓말》이라는 저서를 통해 중국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파헤치고 서구의 어설픈 지식인들의 허술한 중국관을 비판했다. 
    그리고지금이 중국 공산당에게 압력을 행사하기에 적절한 순간이다고 언명했다. 
    하지만 그 압력은 그때 제대로 행사되지 않은 가운데 지금에 이르렀다.  
     
    중국은 지금 안팎으로 그리고 여러 면에서 아슬아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Q 의 발버둥은 허망하게 끝을 맺는다. 
    현실의 중국은 어떨 것인가? 

    물론 현실은 소설이 아니며 미래는 점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지금 중국이 안팎으로 보여주고 있는 행태는 받아들일 수 있는《올바른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시진핑 의 중국은 지금 전 세계 대부분의 나라로부터의 거부에 직면해 있다. 
    국제정치적으로만이 아니라 중국인 자체가 거부 대상이 되고 있다. 

    미중 갈등 때문이 아니다. 
    한때 꽤 호의적 입장을 가졌던 나라들도 거의 모두 중국에 대해 극심한 거부감을 보인다. 

    그렇다면 중국 외의 그 모두가 잘못된 것인가? 
    시진핑 의 중국은 그렇게 강변할 것이다.  
     
    그러나 중국 편에 서는 것은 “역사의 올바른 편”이 아니다. 
    올바른 즉 옳은(right) 편은 오른편(right)이다. 
    도덕적 본질 차원에서만이 아니다. 
    역사가 이미 증명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