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특사 파견 논의 없어" … 신중 기조박지원 "평양 조문 의향" … 대북 특사 자처3대 세습 거치며 '체제의 얼굴'로 생존한 70년자유민주주의 흔든 '정제된 선전가'의 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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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 조선중앙TV는 김영남 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3일 사망했다고 4일 보도했다. 사인은 암성중독에 의한 다장기 부전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이날 오전 1시 당과 정부의 주요 간부들과 함께 김 전 상임위원장의 시신이 안치된 평양시 보통강구역 서장회관. ⓒ북한 조선중앙TV/뉴시스
북한의 대외 외교를 대표하며 체제 선전의 얼굴로 군림해온 김영남 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지난 3일 97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북한이 남북관계를 '교전 중인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하고 있는 만큼, 정부는 대북 특사 파견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대통령실 김남준 대변인은 4일 브리핑에서 관련 질문에 "북한 측의 특사와 관련해 오늘 국무회의를 포함한 어떤 회의에서도 아직 논의된 적이 없다"며 "정부의 공식 입장은 통일부 장관 명의의 조의문 발표로 갈음해 달라"고 답했다.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이날 조의문을 내고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과 북측 관계자 여러분께도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고 밝혔다.정 장관은 김영남에 대해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북측 대표단을 이끌고 방남해 남북대화의 물꼬를 트는 데 기여한 바 있다"며 "2005년 6월과 2018년 9월 두 차례에 걸쳐 평양에서 김영남 전 위원장을 만나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발전을위해 의미있는 대화를 나눴던 기억이 난다"고 회고했다.문재인 정부에서 국정원장을 지낸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페이스을 통해 "유족들과 북한 주민들께 심심한 위로를 드리며 여건이 허락한다면 제가 조문 사절로 평양을 방문하겠다"며 대북 특사 파견을 자청했다.북한 대외 관영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우리 당과 국가의 강화발전사에 특출한 공적을 남긴 노세대 혁명가 김영남 동지가 97살을 일기로 고귀한 생을 마쳤다"며 사인은 암성중독에 의한 다장기부전이라고 전했다.김정은은 주요 간부들과 함께 이날 오전 1시 평양 보통강구역 서장회관에 마련된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조문은 4일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이뤄지며 발인은 5일 오전 9시로 예정됐다.장의위원회에는 김정은을 비롯해 박태성 내각 총리,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 고위 간부들이 포함됐다. 반면 대남 공작 라인의 핵심이던 김영철·리선권은 명단에서 빠져, 내부 권력 구도 변화를 시사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
- ▲ 2018년 2월 11일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서울 중구 국립중앙극장에서 삼지연 관현악단을 비롯한 북한 예술단의 공연을 관람을 마친 후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인사하고 있다. 가운데는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 ⓒ뉴시스
1928년 평양에서 태어난 김영남은 김일성종합대학 재직 중 모스크바 유학을 다녀온 엘리트 외교관 출신이다. 1952년 귀국해 중앙당학교(김일성고급당학교) 교수를 지낸 그는 노동당 국제부에서 경력을 시작해 1983년 정무원 부총리 겸 외교부장(현 외무상)을 맡았으며, 1998년부터 2019년까지 21년간 대외적 국가수반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지냈다.그는 김정일을 대신해 각국 정상과의 회담·의전 행사를 도맡아 사실상 북한의 대외적 국가수반 역할을 수행했다. 이러한 역할은 김정은 체제에서도 계속됐다. 그는 고령에도 외빈 영접과 국제행사 참석을 이어가다 2019년 91세를 끝으로 공식 석상에서 물러났다.김영남은 직접 대남공작을 지휘하지는 않았으나, 북한의 대남 선전·심리전의 공식 대변자이자 상징적 인물로 기능했다. 그는 체제의 '온건한 얼굴'을 맡아 국제사회에서 북한의 인권탄압, 핵개발, 대남공작 문제를 희석시키며 체제 정당성을 강화하는 선전전을 펼쳐왔다.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김영남은 고위급 대표단 단장으로 방남해 문재인 대통령을 면담했는데, 그는 공연장에서는 눈물을 보이며 '온화한 외교관' 이미지를 연출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국내 안보 전문가들은 김영남이 '대화의 상징'이기보다는, 남북 화해무드를 활용해 대남 심리전을 강화한 체제 홍보전의 전위였다고 평가한다.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 세습 정권이 유지되는 동안 단 한 번도 숙청이나 혁명화를 겪지 않은 사실은 그가 체제의 논리에 철저히 복무하며 전체주의 선전의 도구로 살아왔음을 방증한다.김영남은 국제무대에서 북한의 정당성을 포장하며 체제의 폭력적 본질을 은폐해온 '정제된 선전가'로 평가된다. 그의 온화한 어조와 절제된 태도는 북한 외교의 인간적 외피를 만들어내는 수단이었고, 결과적으로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인식 혼선을 초래했다.특히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은 '대외적 국가 수반' 김영남이 상징하는 체제 선전 구조 아래 전개된 대표적 대남 심리전 사례다. 북한은 천안함을 폭침한 직후, 한국 정부의 조사 결과에 대해 광범위한 의혹과 음모론을 조장하는 선전을 펼쳤다. 남한 내 일부 집단과 언론을 부추겨 정부 신뢰를 떨어뜨리고 사회적 분열을 격화함으로써 한국 내 안보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북한의 군사적 도발을 정당화하는 심리적 기반을 마련했다.그의 사망은 통일전선에 기반한 북한 체제 선전의 시대를 마감하는 동시에, 권위주의·전체주의의 생명력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음을 되새기게 하는 사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