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기업, 1~9월 구조조정 95만명…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최대트럼프 관세-AI 도입 여파 본격화…소매-물류-사무직 등 직격탄"기업들, AI 도입 시점을 구조조정 기회 간주…일자리 위기 현실화"
  • ▲ AI, 일자리 대체. 일러스트=연합뉴스. 250123 ⓒ연합뉴스
    ▲ AI, 일자리 대체. 일러스트=연합뉴스. 250123 ⓒ연합뉴스
    올해 미국에서 해고된 인원이 100만명에 육박했다. 경기둔화 우려가 완화했음에도 기업들의 AI 효율화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보호무역 정책이 맞물려 '고용 없는 성장'이 본격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4일 니혼게이자이(닛케이)신문, 블룸버그통신, 연합뉴스 등에 따르면 미국의 재취업 컨설팅 및 인력 구조조정 전문기업 챌린저, 그레이앤드크리스마스(CG&C)는 올 들어 9월까지 미국 기업·기관의 인력감축 발표를 취합한 결과 해고 인원은 모두 94만6000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는 전년동기대비 55% 급증한 것으로,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최대 규모다. 올해 초 정부효율부(DOGE)의 대규모 구조조정을 제외하더라도 1년 전과 비교해 해고 인원이 10%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지표나 공식 고용통계는 아직 둔화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지만, 대기업들이 앞다퉈 인력 효율화에 나서면서 '고용 없는 성장(jobless growth)'이 가속하고 있다고 닛케이는 짚었다.

    감원 사유 가운데 '시장 및 경제 상황'이 약 20%로 최대 비중을 차지했다. 특히 '트럼프 관세' 여파로 소비산업이 직격타를 입었다. 소매업종 해고 인원은 전년동기대비 3배, 물류부문은 2배 각각 증가했다.

    물류업체 UPS는 지난달 말 미국 직원 4만8000명을 감원했고, 생필품업체 프록터앤드갬블(P&G)도 관세 상승에 따른 소비심리 위축으로 전세계에서 7000명을 줄였다. 대형 유통업체 타깃은 기업부문 일자리 1800개를 없앴고, 스타벅스도 9월 본사 직원 약 900명을 해고했다.

    관세와 함께 AI 도입도 올해 대규모 감원의 한 축을 담당하면서 노동시장에 압박을 더했다.

    CC&C에 따르면 'AI를 직접적인 감원 이유'로 제시한 기업은 4%에 불과하지만, 많은 기업이 AI를 염두에 두고, 효율화를 명분으로 내세운 인적 구조조정은 지속 확산 중이다. 특히 AI가 대체하기 쉬운 사무직과 전문직 중심의 화이트칼라 직종에서 해고가 잇따르고 있다.

    컨설팅업체 액센추어는 전세계적으로 약 1300억원 규모의 구조조정에 착수하고, AI 도입에 따른 재교육과 사업 재편을 병행 중이다. PwC도 미국 내 직원 1500명에 대한 인력감축을 결정했다.

    빅테크도 예외가 아니다. AI 자동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빅테크 기업도 대규모 감원에 나섰다.

    로이터통신 등은 아마존이 3만명가량 해고 작업에 들어갔다고 보도했다. 본사 전체 직원(35만명)의 10%에 가까운 규모다. 앤디 제시 CEO는 6월 "생성형 AI 도입 증가로 인력이 감소할 것"이라고 예고한 바 있다.

    MS는 5월과 7월 총 1만5000명을 감축했고, 페이스북 모회사 메타도 수만명 규모의 해고를 단행했다. 오라클, 구글, 세일즈포스 등도 감원에 나섰다.

    특히 기술컨설팅기업 액센추어는 AI 관련 재교육을 받지 못한 직원을 먼저 정리하겠다고 밝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노동자가 직접적인 해고 위험에 놓여 있음을 보여줬다.

    한때 '최고의 일자리'를 상징하던 기업들조차 비용 절감과 효율화를 위한 인력 축소에 속도를 내는 것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의 2025년 미래 직업 보고서를 보면 전세계 고용주 중 41%가 향후 5년 내 AI 자동화로 인한 감원을 계획하고 있다.

    기업 심리 반영 리서치기관 컨퍼런스보드의 로빈 에릭슨 연구원도 "광범위한 업종의 기업들이 'AI 도입을 명분으로 한 구조조정의 적기'라고 보고 있다"며 "지금이라면 인력을 줄여도 저항 없이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실제 앤디 제시 아마존 CEO는 6월 사내 메모에서 "AI가 일자리를 대체할 수 있으며 직원들은 받아들여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그는 지난달 30일 실적 발표 후 콘퍼런스콜에서는 여론 비판을 의식한 듯 "재정적 이유도 아니고, AI 때문도 아니다. 조직 문화 때문"이라고 말을 바꿨다.
  • ▲ 미국 워싱턴 D.C. 국무부 청사 로비에서 국무부 직원들이 해고돼 떠나는 동료와 작별 인사를 하고 있다. AP/뉴시스. 250711 ⓒ뉴시스
    ▲ 미국 워싱턴 D.C. 국무부 청사 로비에서 국무부 직원들이 해고돼 떠나는 동료와 작별 인사를 하고 있다. AP/뉴시스. 250711 ⓒ뉴시스
    대규모 감원이 잇따르며 실업률 상승 등 고용시장 악화 우려가 제기된다.

    미시간대학의 지난달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64%가 향후 12개월 동안 실업률이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1년 전 32%와 비교하면 곱절로 늘어난 것이다.

    댄 노스 얼라이언츠 트레이드 아메리카스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지금은 잘 자리 잡은 기업들조차 상당한 규모의 감원을 단행하고 있다"며 "이런 감원들이 단순히 우연한 사례가 아닐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우린 더 이상 '저고용·저해고' 환경에 있지 않다. 이제 우린 해고 중"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공식 통계에서는 아직 뚜렷한 악화 조짐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미국 노동부가 중소기업 포함 2만1000곳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고용동향조사(JOLTS)에서 해고율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베로니카 클라크 시티그룹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신규 실업수당 청구건수가 22만~24만건대를 유지하는 한 심각한 징후는 아니다"라며 "26만건 이상으로 지속하면 그때가 걱정스러운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 연준) 의장도 지난달 말 기자회견에서 "신규 실업수당 청구가 늘지 않았다. 고용시장이 급격히 위축되는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며 "아직 AI가 고용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기업들의 신규채용 축소와 인력재편 움직임이 향후 고용 창출을 상당히 위축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주목할만한 점은 대다수 기업이 인원 감축을 발표한 뒤 주가가 올랐다는 것이다. 감원 발표 당일 아마존 주가는 1%, UPS는 8% 상승했다. 시장은 감원을 '효율성 제고'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시장 참가자들은 감원을 '효율화 제고'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노동시장에서는 무리한 감원이 조직 내 사기 저하와 고객 신뢰 약화를 일으켜 장기 성장을 해칠 수 있다는 위험요인으로 보고 있다.

    닛케이는 "미국 경제가 'AI 발 구조조정'이라는 새로운 변곡점을 맞고 있다"며 "기술혁신이 수익을 높여주지만, 그 대가로 일자리의 지속가능성이 점점 더 위협을 받고 있다"고 진단했다.